위대할까?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

by 가랑비가람


Q. 개츠비를 위대하다 볼 수 있는가?



질문에 앞서 정의해보자.

‘위대함’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누구를 보며 위대함을 말하는가. 어떤 이에게, 어떤 행적에 압도되는가.


개인이 압도당하는 감정. 위대함. 그것은, 사회적 체면 혹은 시선을 신경 써 흔쾌히 할 수 없는 일을, 노골적이리만치 본인 욕망에 충실히 이행하는 타인을 관찰할 때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오직 스스로 행한 일이, 자신에 한정되어, 자신을 목적으로 한 일에 대해, 본인이 그 모든 과정을 긍정할 때 나타난다. 추종자들을 만들고 사람을 불러 모아 나에게 이득이 되도록 그들을 조종할 때 그 빛은 나타나지 못한다. 구성원들이 서로를 설득하고 편을 가르고 우리의 이익을 대변한다며 개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흐름을 돌릴 때, 그 상황 속 ‘나’는 매혹되고, 이끌리고, 따라가며 어떤 거대하고 의미 있는 일을 행하고 있다 자부심에 가득 차지만(이 또한 비대한 자아의 거울상일뿐이다), 멀리서 보면 어항에 같인 물고기들이 서로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하겠다며 아우성치는 모습에 불과하다.


집단은 개인보다 쉬이 극단으로 향한다. 개인이 어렴풋하게 발목 잡혀 머뭇거리는 순간에, 집단은 선동자와 그를 따르는 서로에 취해 극점을 향해 나아간다.

집단이 꿈을 좇는다는 것. 시선을 멀리할수록 그 원대함은 사라진다. 인간은 집단보다, 개인에 몰입한다. 시선을 좁혀 한 사람을 바라볼 때 거대하고 압도적인 존재감. 위대함을 느낀다.


위대함은 개인에 할당된 것이다.




여기, 위대한 개인이 있다.

그는 감히 허황하다 여겨질 어떤 꿈을 꾼다. 농촌마을 작은 밭을 일구는 농부의 자식이다. 그러나 결코 바뀔 수 없는, 이루지 못할 계급에 꿈을 꾸고 손을 뻗는다.


그들이 가진 것들. 역사를 가진 휘황찬란한 장식들과 전통을 대변한 예법. 그리고 그들조차 노력하에 가질 수 있는 것들. 다정한 듯 매력적인 웃음, 분위기를 조성하는 화술, 마음껏 방탕할 자격을 부여하는 물질 및 시간의 여유.

그는 반대편 세계를 본다. 그 세계에 매혹된다. 언젠가 그들 세계에 속하리라. 그는 지난 경험, 공간을 바탕으로 아주 구체적인 형상의 꿈을 만든다.


시간이 흐른다.

삶의 다양한 순간을 지나, 언뜻 그가 서 있는 곳은 목표한 세상 그 중심까지 다다른 듯하다. 그들조차 이루지 못한, 꿈꾸지 못할 나태한 황홀경의 주인이 되어 나타난 자. 여기, 그가 있다. 허황된 꿈을 세우고, 노골적으로 욕망한 그가 있다. 꿈을 현실에 끌어오되, 그 뒤에 우연한 행운이나 막대한 유산은 없고 오롯한 선택과 손짓만 있었으니. 그는 자신의 지난 삶과 현재 행위를 긍정한다.


"노력에 보답받은 자여! 만인의 귀감이여! 그린듯한 성공담, 매력적인 그대여!"

다시 한번, 우리는 이런 개인에 압도된다. 하여 그를 가로되, ‘위대하다’ 말한다.




눈을 바꾸자.

위대함을 바라보는 시선의 주체를 달리 해보자.


사회의 시선에서 그를 본다. 다수의 눈으로 그의 삶을 하나 둘 되짚어간다. 그는 '꿈꾸는 자'. '꿈을 현실로 만드는 자'. '언제나 꿈속에 사는 자'.

지금과 다른 세상에 나를 예속하길 바랐다. 그 세상에 어울리는 형태를 갖추고서도 확신이 없어, 세상의 모습을 한 어느 대리자에게 인정을 갈구했다. 그의 이상, 환상, 세계를 그녀의 눈에 비추고 상대를 바라본다. 그녀가 자신을 보는 한, 그는 원하던 세상에 한 뼘 공간을 빌려 서 있을 자격을 얻는다.

그녀의 눈이 자신을 비춰줄 수만 있다면. 언제까지고 그는 꿈과 같은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기에. 그의 목적은 언제나 그녀의 모습으로 "뚜렷하다". 이루고자 나아가는 발걸음에는 주저가 없다. 욕망에 솔직하고, 그런 자신에 당당하다.


하지만 위대한 자여. 만인의 이름으로 묻건대, 그대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가?


목적한 그곳에 다다라 칭송받는 개인이 되어

인정과 전통, 여유와 낭만을 한 여인에 빗대어 그녀를 쟁취하려는 그대는

당신을 둘러싼 이들에게, 그리고 다시 이들을 지탱하는 수많은 자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언가, 이루고자 한 것이 있던가?


집단의 눈에서 본 그는 비참하다. 한낱 개인에 갇혀 있으며, 당신을 둘러싼 주변에 이루고자 함이 없고, 당신이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에 대한 자각조차 없다. 오직 ‘자신’에게 열렬할 뿐.




“사람이 사람을 좋아해서 세상이 다 좋아진 이야기”


이름난 글에서 온 저명한 문장은 말한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타인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그리하여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타인까지 사랑하게 된다고. 사랑할 수 있다고.


다시, 위대한 그를 돌아본다. 열렬하고 찬란하게 빛나 산화한 그의 순애를 본다.

그것은 자기를 남에 투영한 피상적 사랑이었다. 위대한 자. 그는 자신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었기에. 타인도, 세상도 사랑할 수 없었다.

그를 ‘위대하다’ 말한다면,

오롯한 개인이 노력 끝에 이룬 성취, 부, 태도, 목적을 향하며 보인 한결같은 자세. 누구나 원하지만 가질 수 없고, 하루가 아닌 만 일의 지속을 요하는 것들에 대한 질투, 혹은 찬양의 마음. 개인이 개인을 보며 느끼는 감정에 한정된 것.


그는 개인에게 위대할 수 있지만

개인의 집합 안에서 결코 위대할 수 없다.

그가 타인을, 사회를 사랑한 적 없기에.







<후기>


지난 독서모임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모임장님이 추려주신 나눔 주제에 '작가는 개츠비가 위대하다고 믿었을까요?'라는 질문이 있었는데요

현장에서 두둥실 흔적만 떠올라 어물거렸던 것을

돌아가는 길, 이대로 흘려보내기 아쉬워 간단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저장해 둔 글이 몇 있습니다만..

주제가 다양해 어떤 방향으로 브런치를 이끌어야 할지 고민이 되네요.

먼저, 소소한 독서 감상문으로 문을 열어보려 합니다.


제습기가 제 주인보다 일이 많은 요즘입니다.

하루 종일 돌아가는 녀석이 기가 막히고.. 기특하기도 하고.. 벌써부터 이래서야 장마철은 어찌하나...


건조한 하루 보내십시오. 시원한 것 챙겨 드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