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 곳

영화 <Midnight in Paris>

by 정주원

많은 대학생들이 20대를 보내면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지나가는 20대 중 아무나 붙잡고 그의 버킷리스트에 대해 물으면, 열에 아홉 사람의 노트에는 '유럽 배낭 여행'이 적혀 있을 것이다. 교환 학생이던, 배낭 여행이던 많은 젊은이들은 성인이 되면 아름다운 중세의 유럽 도시 한 가운데에 서 있는 본인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파리'는 우리의 마음 속에 더 특별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센느 강, 샹젤리제, 에펠탑, 개선문과 같은 랜드마크부터 이름 모를 어느 골목의 작은 노천 카페까지 파리는 그 곳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우아함과 고상함을 뽐낸다. 물론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워너비와 같은 곳이기에 여행을 통해'나만 아는 도시'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그 매력이 떨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누구라도 낭만과 사랑에 흠뻑 빠질 수 밖에 없는 곳이라는 것에는 공감할 것이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도 아름다운 파리의 면면을 담은 영상들로부터 시작된다. 'Si Tu Vois Ma Mere'의 클라리넷 선율과 함께 등장하는 파리의 모습은 누구라도 한 쪽에 바게트 빵을 끼고 센느 강변을 걷고 싶게 하는 욕구를 자극한다. 아직 영화는 시작도 하지 않았고, 인물조차도 아직 아무도 소개되지 않았지만 관객은 이미 파리의 낭만과 아름다움에 몰입한다. 우디 앨런 감독은 아마 이 아름다운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관객들이 이야기보다는 먼저 파리라는 도시에 취해 영화를 감상해 주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그리고 관객들 만큼이나 파리에 흠뻑 빠져있는 헐리웃 시나리오 작가인 우리의 주인공, '길 펜더'가 등장한다. 길은 모네가 거닐며 연꽃을 그리던 정원에서 파리의 아름다움, 특히 예술가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1920년대의 파리에 대해 예찬하지만, 그의 약혼녀 '이녜즈'의 생각은 조금 달라 보인다. 낭만에 취해 베버리 힐즈의 집을 팔고 파리의 작은 다락방에서 소설을 쓰며 살고 싶다는 길의 말에, 이녜즈는 미국을 떠나서 살 수 없다며 펄쩍 뛴다. 그녀에게 파리는 그저 아름다운 관광지일 뿐, 살고 싶은 곳은 아니며 그 이상도 그 이하의 감동도 그녀에게 전해주지 못한다. 이녜즈의 부모님도 파리의 교통 체증, 미국의 우방이 아닌 프랑스의 정치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녜즈의 대학 동창인 폴은 잘난척 으스대며 와인, 건축물, 예술품에 관한 지식만 뽐내며 늘어놓을 뿐이다. 영화의 초반을 보면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파리의 아름다움을 대하며, 그 속에 흠뻑 취해있는 사람은 길 뿐이다. 이 점은 갑자기 길과 이녜즈와 그녀의 엄마가 함께 가구 쇼핑을 하던 중 갑작스런 비를 만나게 되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낭만 있게 비를 맞으며 걷자고 제안하는 길과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는 이녜즈와 이녜즈의 엄마의 모습에서도 그들의 극명한 차이를 엿볼 수 있다.

길이 다른 현대의 주변 인물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부분은 그가 쓰고 있는 소설에서도 나타난다. 길 커플이 폴 내외와 함께 베르사유를 돌아보던 중 이녜즈는 폴에게 길이 쓰고 있는 소설 이야기를 꺼낸다. '노스탤지어 샵' 즉, '추억을 파는 가게'에 대한 소설을 통해 폴은 현재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과거의 낭만에 얽매여 있는 듯한 길의 모습을 비난한다. 감성이 메말라 점점 회색빛으로 변하는 우리 모습을 보는 듯 하다.

길은 혼자 거리를 산책하다 길을 잃은 채로 이 영화의 제목과도 같은 파리에서의 자정을 맞는다. 갑자기 길 앞에 나타난 클래식 푸조 한 대는 길을 태우고 그가 사랑해 마지 않는 1920년의 파리로 그를 데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스캇 피츠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거트루드 스타인,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을 만난다.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들과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는 점은 이 영화가 주는 주된 재미 중 하나다. 연기를 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실제 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매우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그 중에서도 재미있는 것은, 1920년대의 파리지앵들은 길을 한낱 감상에 빠진 사람으로 치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준 것이 길이 살바도르 달리와 만 레이, 부뉘엘을 만나는 장면이다. 길은 세 사람에게 자기가 2000년대에서 왔다며, 자정에 차를 타면 192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만약 우리가 술집에서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다면 아마 그 사람을 취객 취급하거나 미친 사람 쯤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달리와 동료들은 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한다. 물론 워낙 4차원적인 사람들이므로 길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간과 예술에 대해 고뇌하는 1920년대 파리 예술가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 장면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길이 무엇보다도 이 시간의 파리에 빠지게 된 것은 '아드리아나' 때문일 것이다. 길이 아드리아나라는 여자에게 빠지게 된 이유는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길이 다른 2000년대의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 외톨이 같은 존재였던 것처럼, 아드리아나도 1920년대에 어울리지 못한 채, 자신은 과거에 태어났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드리아나가 길에게 끌리게 된 이유도 같은 지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된 메세지가 드러난다. 아름다운 과거를 사랑하고, 그 시절을 그리워할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살아가고 내가 나일 수 있는 건 현재의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에 대한 환상과 사랑을 버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1920년대에서의 일들을 통해 길은 오히려 현재를 살아갈 자신감과 현재를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그리고 폴과 바람을 피웠고 자신과도 잘 맞지 않는 약혼녀 이녜즈를 떠난다. 바람을 피운 이녜즈에게 화가 나거나 실망했기 때문이 아니다. 본인의 인생에서 주도권을 찾은 모습이라고나 할까. 물론 아드리아나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은 길도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본인과 맞지 않는 약혼녀를 떠날 수 있을 정도로 길의 모습은 더 당당해졌다. 과거에 대한 환상에만 안주하고 그 속에 취해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현재 자신의 삶을 더 풍요롭고 가치있게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길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파리에 남기로 한다. 그리고 자신만큼이나 과거의 것들을 사랑하고 파리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아마 누구라도 한 번 쯤 내가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아름다워 보이는 과거의 시대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을 비롯해 그 어느 곳에서도 그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은 없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도로가 바뀌고, 건물이 바뀌고, 그 안에 사는 사람과 그 정서도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리'는 그 과거 속에 살아보는 것이 가능한 도시다. 파리는 몇 백 년의 역사 속에서 과거의 아름다운 모습 속에 현재의 건물, 지역, 사람들도 어디까지나 그 틀 안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우디 앨런 감독이 이 이야기를 펼칠 최적의 장소로 파리를 선택한 이유일 것이고 그 점이 바로 파리, 유럽을 여행하고 싶은 우리의 마음에 불을 당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파리는, 그 누구라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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