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Birdman>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주목받은 주제는 아마도 '사랑'이라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사랑'이 인간의 곁에서 오랫동안 회자된 이유는, 영속적이고 무한한 듯 하지만, 그 안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희소성 때문이 아닐까. 원초적으로는 부모님의 사랑부터 가족들의 사랑, 친구와 애인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쉬운 듯해도, 그 어디에도 쉬운 사랑은 없다. 쉬운 사랑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도 그 사랑은 본인의 좋은 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
이 말에 크게 동조라도 하듯, 영화 <버드맨>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구절로 시작한다. 인생에서 갈망했던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내가 지구 상에서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이라는 대답. <버드맨>은 그렇게 쟁취하기 어려운 사랑을 갈망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리건 톰슨은 대중의 사랑을 먹고사는 배우이다. 하지만 슈퍼 히어로 영화 '버드맨'으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던 과거의 리건과는 달리, 현재의 리건은 대중들에게서 잊힌 한물 간 배우일 뿐이다. 리건은 다시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자신의 커리어를 회복하기 위해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을 들고 브로드웨이 무대에 자신의 인생을 건 연극을 올린다.
자신의 커리어, 인생을 걸고 연극판에 발을 디뎠지만, 배우부터 돈, 가족, 비평가까지 어느 것 하나 리건을 도와주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이렇게 진퇴양난에 빠진 리건의 상황들을 풍자적이고 코믹하게 그려낸다. 자신의 연극에 섭외한 배우 '마이크 샤이너'는 연기력은 좋지만 연극을 통해 리건보다 더 주목받고자 하는 생각뿐이고, 하나뿐인 딸은 아빠를 아무것도 아닌 대중에게서 잊힌 사람이라며 아직도 스타의 단꿈에 빠져있는 듯한 리건을 비난한다. 비평가는 리건을 그저 예술이 뭔지도 모르는, 연기력도 없는 배우가 그저 인기를 되찾기 위해 연극판에 들어온 것을 같잖게 생각하며 그의 연극을 '부숴버리겠다'라고 말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면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다. 훌륭한 연극을 만들기 위해, 좋은 연기로 다시 대중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리건의 모습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머리 속에 들려오는 '버드맨'의 목소리. 리건의 무의식 속에서 버드맨은 시궁창 같은 연극은 때려치우고, 다시 헐리웃으로 돌아가 버드맨의 속편, <버드맨 4>를 찍자고 계속해서 리건을 유혹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자는 버드맨의 말들은 달콤하지만, 한편으로 매우 거만하다. 그 목소리는, 대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던 과거의 리건이 현재의 리건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리건은 자신의 처지를 잘 안다. 다시 <버드맨>으로 돌아가기에 자신은 늙고 힘이 없는 한물 간 배우일 뿐이며, 그 방법으로 다시 인기를 얻고, 제2의 커리어를 시작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머릿속 버드맨의 감언이설을 모질게, 힘들게 밀쳐내는 리건의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초능력을 사용하는 슈퍼 히어로처럼 염력으로 대기실 내부의 물건들을 이리저리 휙휙 던져버리는 리건의 모습이다. 나는 아마 그가 초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내면에서 버드맨과 갈등하고, 싸우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고 보는 편이 합당할 것이다.
이냐리투 감독은 이런 리건의 행동과 감정을 카메라로 매우 효과적으로 담아내었다. 이 영화를 보면 시작부터 끝까지 끊김 없이 한 번에 연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극장의 무대와 무대 뒤를 종횡무진 구석구석 다니며 리건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잡아내는 듯한 카메라 워크는 그의 내면까지 다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당신은 배우가 아니라 연예인이라며, 최악의 악평을 해주겠다고 공언한 비평가의 말을 듣고 리건의 감정은 절정에 치닫는다. 술에 절어 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막장까지 치달은 리건에게 버드맨은 계속해서 유혹의 손길을 내밀고, 리건은 과거 버드맨처럼 훨훨 뉴욕의 하늘을 날아다닌다. 하지만 리건은 이게 네가 있어야 할 자리라고 말하는 버드맨과 타협하기로 한 것이 아니다. 하늘을 날아 결국 다시 도착한 곳은 브로드웨이, 자신의 연극이 열리는 극장이기 때문이다.
리건의 모습은 점차 자신의 연극 배역의 모습과 동일시되어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구걸하다, 결국 누군가에게 사랑을 잃고 슬픔에 자살하게 되는 그의 역할에 말이다. 영화는 계속해서 연극과 연극 이면의 리건의 모습을 병치하면서 진행되는데, 이런 장면의 흐름 속에서 점차 배역에 동화되는 리건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첫 프리뷰 전 마이크와 연기를 맞춰볼 때 연기와 대사를 계속해서 지적받았던 리건은 계속해서 실수 연발의 프리뷰 무대들을 거치고 그 과정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거칠수록 배역에 완전히 빠져든 듯한 메서드 연기를 선보인다. 그리고 오프닝 무대에서는 거의 연극에 완전히 동화되어버리고, 관객들은 그런 리건의 연기를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본인의 머리에 진짜로 총을 쏴버린 리건. 그리고 이어지는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는 매우 대조적이다.
죽은 줄만 알았던 리건은 코가 날아가 얼굴에 붕대를 감은 채로 다시 스크린에 나타난다. 얼굴에 붕대를 감은 리건의 모습은, 버드맨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한 번의 연극 무대를 통해 리건은 다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토록 원하던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건은 화장실에서 그 붕대를 벗어던진다. '버드맨의 가면'같은 붕대를 벗어던진 리건의 모습은 흉측하다. 붕대를 벗어던지고 화장실을 나서는 리건에게 던지는 버드맨의 한 마디.
"잘 가. 그리고 엿 먹어."
아마 이 장면을 통해 리건은 본인의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며 살아가기로 결심한 것은 아니었을까.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을 대표하는 버드맨의 목소리를, 리건을 이제는 버리기로 한 듯이. 다시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인기와, 대중들의 사랑에 대한 허무함을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그 후 리건은 다시 한번 병원 창문을 통해 자신의 몸을 공중으로 내던진다. 병실에 들어온 딸이 놀라 창 밖을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바닥과 공중을 번갈아 바라보며 놀라는 그녀의 시선. 과연 리건은 그대로 추락해버린 것일까, 아니면 다시 한번 버드맨처럼 하늘로 훨훨 날아오른 것일까?
'사랑'에 관한 영화 중 이토록 풍자적이고, 아프도록 코믹한 영화가 또 있었을까. 이렇게 더 사랑이라는 주제에 본질적으로 다가선 영화가 있었을까. 버드맨이라는 슈퍼 히어로에 대한 느낌도 그렇다. 배트맨, 슈퍼맨, 아이언맨 등 그동안 많은 슈퍼히어로들이 등장했지만 한 번도, 버드맨이라는 히어로가 등장했던 적은 없다. 사실 '새'라고 하면 단지 하늘을 날 뿐, 그다지 강력한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기 힘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떻게 보면 하늘을 쉽게 날 수 있지만, 다른 특별한 능력 없이 언젠가는 결국 땅에 착륙할 수밖에 없는 새의 모습이 높은 인기를 구가했지만 결국 잊혀 버린 리건의 모습과 묘하게 닮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냐리투 감독은 인터뷰에서 <버드맨>에 대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실을 다룬 영화'라고 말했다. 그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마도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동물이지만, 진정한 나의 발견 없이 맹목적으로 남의 사랑만을 좇는 주체적이지 못한 모습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사랑을 좇기 위해 다시 영화판으로 돌아가자는 <버드맨>의 가면을 벗어던진 리건의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나도 내 내면에 존재할지 모를 그런 존재에 대해 한 마디 하고 싶다.
"잘 가, 그리고 엿 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