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엔 요정들이 산다

승리와 패배를 관장하는 잠실의 정령들, 그들을 들여다보다.

by 정주원

야구 시즌이 시작되면, 모든 야구장은 '요정들의 둥지'가 된다. 각 팀들의 '팬'이라는 알에서 부화하는 요정들은 야구장 안에서만 그 존재를 드러낸다.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은 SNS다. 인스타그램이 가장 대표적 인데 '#승요', 혹은 '#패요'라는 해시태그로 요정들은 자기 존재를 세상에 드러낸다. 어느 날은 승요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패요가 되기도 하는 요정들은 페넌트레이스가 계속되며 각 팀들의 경기 전적이 쌓일 때이며, 직접 야구장을 찾아가서 본 경기들로 이른바 '직관 승률'을 계산하고 그 비율에 따라 요정들은 '승리 요정' 혹은 '패배 요정'으로 한 시즌 전체 동안 자신이 어떤 요정이었는지를 스스로를 분류한다.


그렇다면 한 번 계산해보고 싶다. 엘지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를 가정하고, 이번 시즌 14번의 엘두전이 열릴 동안 잠실야구장을 찾은 총 관중 수는 266,906명이다.(중복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각각 다른 사람일 거라고 가정하자.) 편의를 위해 경기마다 각각 절반의 엘지와 두산 팬이 경기장을 찾았다고 가정해 보면 이번 시즌 엘두전을 찾은 엘지팬과 두산 팬의 수는 각각 133,453명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엘지 트윈스의 두산 상대 전적이 5승 9패이니, 엘지의 두산전 상대 승률은 반올림하여 36%이며, 결과적으로 엘두전의 승리를 직관한 엘지 트윈스 팬의 숫자는 48,043.08명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엘두전 패배를 직관한 관중은 약 85,050명이 된다. 어차피 같은 숫자의 팬이 방문했음을 상정했으므로, 엘지 트윈스는 두산과의 경기에서 8만 5천명의 패배 요정을 생산한 반면, 두산은 엘지와의 경기에서 8만 5천명의 승리 요정을 생산한 것이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 난 '문송'한 문과생 출신이기 때문에, 계산이 틀릴 수도 있다. 오류를 발견하셨다면 양해를 구한다.) (p.s 매 경기마다 방문객의 수가 각각 다르므로 경기마다 다른 가중치를 부여해야 더 정확했으리란 아쉬움이 있다)

그 중에서도 5월 어린이날 시리즈의 스윕패로 가정의 달을 맞아 부모님과 함께 야구장을 찾았을 수많은 엘린이(...)들을 패배 요정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엘지 트윈스 팀에게 크게 반성해야 할 대목이 아닐까 싶다. (주말 2경기 매진에, 금요일 경기도 24,133명으로 매진에 가까웠다.)


나만 해도 올해 네 번의 엘두전을 직관했기에, 분명 어느 정도는 부풀려진 숫자일 수 있다. 난 4만 8천명의 승리 요정에 딱 한 번 속했고, 8만 5천명에는 3명분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숫자의 차이일 뿐, 어쨌든 5승 9패라는 엘지의 대 두산전 승률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비율은 변하지 않는다. 두산을 상대로 1승 15패라는 기록적인 승률을 기록한 작년 2018년 시즌을 기준으로 계산해...보고 싶지가 않지만 한 번 해보면, 엘지 팬 승요는 단 8,340명 뿐. 나머지 12만명이 넘는 이들을 패배 요정으로 만든 엘지는....더 곱씹을수록 분노가 끓는 것 같아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한 경기 한 경기 끝이 날 때마다 스스로를 '요정'이라 칭하는 팬들의 마음은, 조금이나마 응원하는 팀의 승리에 기여하고 싶은 팬들의 작은 바램이리라. '승리 요정'이야 어떻게 생각해도 좋은 의미이니 차치하고, '패배 요정' 정말로 가슴 아픈 말이다. 그 날 패한 팀의 팬은 자신을 '패배 요정'이라 칭하며, 팀의 패배 요인을 자신의 경기장 방문으로 몰아가곤 한다. (무기력하게 패배한 경기일 수록 이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팀이 진 이유가 내가 경기를 보러 왔기 때문이라니, 이처럼 가슴 아픈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패배 요정'은 길게 보면 팀의 경기장 티켓 수익에도 영향을 미친다.


물론 모든 경기에서 승리할 수는 없으며, 팬들도 그걸 바라지는 않는다. 페넌트레이스를 치르다보면 한 번쯤 쉬어가야 할 타이밍도 분명 존재한다. (모든 팬들의 궁극적인 이상향이 144승 0패이기는 하겠지만.) 하지만 경기장을 찾은 팬의 입장에서 지불한 티켓값만큼의 효용을 얻고 싶은 것은 경제학적으로 아주 합리적인 논리다. 물론 그 중간 지점을 잡는 건 144경기를 치뤄야하는 야구팀 모두의 고민일 테지만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팬들에게 효용을 안기는 것이 무조건 '승리'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는 경기라도 근성있는 플레이를 보여준다면 팬들은 그런 경기에서 '패배 요정'이 되더라도 어느 정도의 만족을 얻는다.


위에서도 말했듯 144게임 중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경기가 없겠지만, 두산과의 경기는 엘지팬들에게 의미가 남다르다는 사실은 선수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유독 두산이 엘지와 경기할 때 더 자주 폭죽을 터뜨리는 것 같다는 느낌은 내 뇌피셜이리라 믿는다.) 올해 엘지와 두산의 경기는 딱 두 경기 남아있다. 가깝게는 이번주 일요일에 있고, 남은 한 경기는 아직 일정이 잡혀 있지 않다. 다행히도 엘지의 흐름은 나쁘지 않다. '내야 실책의 교본'을 만들려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다양한 실책을 만들었지만 그리 시끄럽지 않았던 포항 구장이 마치 절간이 된 듯 청아한 목탁음과 같은 3방의 홈런을 날려준 타선 덕에 연승 가도를 이어갈 수 있었다.

모쪼록 못해도 엘지가 7승 9패 정도의 승률로 페넌트레이스를 마무리 했으면 좋겠다. 2015년 4월 12일, 윤명준을 상대로 이진영이 끝내기 투런포를 쏘아올렸던 그 경기의 짜릿함과 희열을 잊지 못하는 한 명의 엘지팬으로서. (말도 안되는 계산까지 들먹이며 개소리를 해댄 글이지만, 결국 이번 주말 엘두전에서 꼭 이겼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무적 엘지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