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기억하고 싶은

<아버지>

by 정주원


서랍 속에서 아버지의 사진을 발견했다. 무엇인가 불현듯 기억난 것처럼.


무엇인가 불현듯 기억나는 순간. 무엇인가를 애타게 찾아 책상 서랍을 뒤지다 발견한 낡은 사진 한 장처럼. 좋았던 기억도, 슬펐던 기억도. 언제 있었냐는 듯 잊고 지냈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인생 속 어느 순간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평생 뇌 용량의 불과 3~4% 정도만 사용한다고 하던데, 그 3~4%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은 모두 기억 저장소일 것이라고. 러닝 타임 2시간 정도의 영화만 해도 가장 좋지 않은 화질의 파일도 적어도 1~2GB 정도의 용량을 차지한다. 사람의 인생은 짧으려면 한 없이 짧지만 길다면 과장을 조금 보태 100년인데, 그 정도의 동영상을 저장하고 있으려면 실로 어마어마한 저장 공간이 필요할 테다.

그만큼 살아가면서 잊는 것들이 많지 않으냐고 말할 수도 있다. 아니다. 정말 단언할 수 있는 건, 인간은 아무것도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소멸'로서의 망각이 아니다. 우리는 아마 인생의 모든 순간을 단 1초도 잊지 않고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린 그 서랍이 어디 있는지를 잊었거나, 혹은 그 서랍을 여는 열쇠를 찾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내게 무엇인가 불현듯 기억나는 순간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낸 열쇠를 찾고 그 열쇠를 예상치 못한 서랍에 끼워 넣었는데 그것이 철컥하고 열릴 때의 기쁨과 같다. 서랍 속에서 발견한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이 내게 주는 것이 기쁨 일지 슬픔 일지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는 우리 곁에 안 계신다. 돌아가신 지 벌써 5년이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일들이 내게 익숙해져 가는 만큼, 아버지의 죽음 그 자체도 내게 익숙해져 버린 듯하다. 그저 매년 다가오는 하루처럼.

무언가 익숙해진다는 건 편해진다는 것이지만, 편해진다는 건 그만큼 힘들었던 무언가가 잊히고 있다는 뜻이다. 장례 직후엔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던 아버지의 모습들이 점점 희미해져 간다. 완전히 잊기 전에, 그를 다시 한번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사실 아버지와의 기억은 떠올리기 그리 유쾌한 기억들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잊고 싶은 기억도 아니다. 잊고 지내게 되더라도, 불현듯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랄까.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던 그 죽음만큼이나 내게도 갑작스러웠던 일주일 간의 장례식. 23살이었던 나에게 상복과 두 개의 검은 줄이 들어간 완장은 무거웠다. 그저 잠든 듯 평온했던 표정과 달리 차가웠던 아버지의 시신과, 엄마와 동생의 눈물. 그리고 막내 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큰아버지들과 고모들의 눈물(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아버지의 친구들의 울음. 그리고 내 친구들의 눈물. 하지만 난.


아버지의 장례식이 치러졌던 약 일주일 동안, 난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나 스스로가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겨 버리기 힘들 정도로 이상했다. 오죽하면 아버지와 막역해 보였던(그 이후 나타나지 않은 걸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지만) 이름 모를 아저씨가 나를 보며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시신을 보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냐며 내게 쌍욕을 했을 정도였다.


맞다, 내가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유는 아버지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8살의 내가 아버지의 시신을 처음 마주했던 그 날의, 23살의 내게 할 수 있는 말.


'넌 오늘을 평생 후회하게 될 거야.'

아버지는 참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정말 유쾌한 사람이었다. 닮기 싫으면서도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참 착하고 좋은 사람인데, 참 나쁜 사람이었다. 내가 약 28년의 세월 동안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이상한 사람이다.


가장 먼저 내게 각인된 아버지의 모습은 '집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누굴 때린다던가,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는 일은 절대 없었다. 아버지는 즉흥적이고,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었기에 거기서 나오는 '술'에 관한 문제들이었다. 이제 와서 느끼는 거지만, 아마 사회에서 아버지는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에게는 유쾌하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그 행동에 따르는 책임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지고 있었다. 어린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어린 시절 내가 가장 무서워 한 건, 어머니의 한숨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한숨의 원인 제공은 대부분 '아버지'였으니까. 모든 어린아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부모님이 무너지는 것, 가족이 무너지는 것이니까.


하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어머니 앞에서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잘못해 놓고도 큰 소리를 내는 고지식한 '꼰대'들도 많은데, 우리 아버지는 절대 가부장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버지는 절대 누구에게 해를 입힐 수 없는 유쾌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항상 아버지는 조용히 어머니께 용서를 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옆에서 잘못했다 애교(?)를 보여주는 아버지께 결국 웃어주셨다. 우리 가족의 역사는 아마 그런 일들의 반복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일으키는 사고와, 이를 수습하는 엄마, 그리고 결국 책임은 엄마가 진 채 유야무야 마무리. 그렇게 본질은 사라진 채 문제가 흐지부지 해결되는 것이 난 너무 싫었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데도 언제나 웃고, 유쾌함이 넘치는 아버지가 철없어 보였다.


22살 무렵, 한 동안 아버지가 직업 없이 집에만 있을 때가 있었다. 집안 여기저기서, 특히 컴퓨터가 있는 내 방에서 인터넷 게임을 하며 담배를 뿜 뿜 피워댔다. 가계 사정 때문에 엄마는 그 당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고, 한숨을 입에 달고 살 정도였는데 아버지는 어떻게 저렇게 태평할 수 있는지...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이 극에 달했다. 유쾌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기 싫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내게서, 우리 가족에게서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5년이 지난 28살의 '나'. 예능 PD의 꿈을 품고 노력하고 있다지만 아직도 취직은 요원해 보이기만 한다. 그리고 난 집에 있다. 5년 전의 우리 아버지처럼.


아버지가 일 없이 계속 집에 계시던 예전의 어느 날, 언젠가 우연히 컴퓨터로 인터넷 사용 기록을 확인해 본 적이 있다. 아마 무언가 마음속에 아버지를 미워할 꼬투리를 잡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인터넷 사용 기록이 넷마블이나 한게임으로 가득할 거라 생각하며.


하지만 내 어리석은 예상과는 달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사람인' 사이트였다. 아버지가 답답한 마음으로 담배를 피우며 하나씩 열어 보았을 수많은 구인 공고들을 보았다. 하지만 그때는 아버지가 싫은 마음에 그냥 어물쩍 넘어갔다. 하지만 요원해 보이는 취직 등용문을 두드리고 있는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정말 유난히 작아 보였던 아버지의 등 에다 대고 힘내시라고 말해드릴 순 없었던 것일까. 그렇게 툴툴대기만 해야 했던 것일까.


그렇게 매주 주말마다 빠지지 않고 목욕탕에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보셨는데, 한 번을 따라나서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와 함께 목욕탕에 가는 걸 정말 좋아하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3일장을 치르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도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간 것이었다. 목욕탕은 당신이 아들과 남자들만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우정의 장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싫어서, 한 번을 따라나서지 않았다. 그 몇 번의 지나친 기회들이 거대한 후회의 파도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때라도 한번 밀어드릴걸. 목욕탕에서 남자끼리의 진한 우정이라도 쌓을걸. 그렇게 힘들었을 아빠에게 살갑고 정다운 말 한마디라도 해 드릴걸.


아마 그 힘든 상황에도 내게 웃으며 목욕탕에 가자고 말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엄청난 용기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식들이 있기에, 가족이 있기에 힘들어도 웃을 수 있었을 테니까. 그들의 응원이 필요했을 테니까. 그 깊은 생각을 몰랐던, 그 웃음을 그저 철없음이라 여겼던 철없는 아들은 이제야 그 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불현듯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다. 꺼내 보면 마음이 아프기에 계속 기억하고 있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따금씩 내가 힘들 때, 당신의 그 유쾌했던 웃음을 불현듯 떠올리고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아버지께 너무 이기적이었다. 그때의 이기적이었던 내가 싫어서, 그 아들의 철없는 행동을 속으로만 감내한 아버지가 불쌍해서, 아버지와의 기억은 정말 불현듯, 이렇게 가끔 떠올리고만 싶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면 나를 따로 불러내 갈매기살과 염통을 사주셨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시간이다. 술이 정말 궁금했던 내가 아버지와 가볍게 소주 한잔을 나누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얼른 어른 돼서 제대로 술 한잔 기울이자고 자주 말씀하셨다. 이렇게 난 어느덧 20대 후반이 되었는데.... 이렇게 추운 겨울, 소주 한 잔 마시고 싶을 때면 아버지의 그 말이 이따금씩 생각난다.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었을, 그 소주 한잔이 그립다.









매거진의 이전글관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