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관에 불이 꺼진다. 스크린에는 어린 아이들이 불꽃을 터뜨리기도 하고, 박스가 이리저리 굴러다니기도 한다. 영화사들마다의 개성이 고스란히 담긴 로고 장면이다. (로고 장면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바로 그 순간, 극장 안 누군가의 스마트폰에서 벨소리가 울린다. 스크린보다 훨씬 작지만, 스크린과 비교가 안되게 밝은 스마트폰 액정이 내 시야를 방해한다. 눈이 부시다. 또 다른 누군가는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팝콘과 콜라를 한아름 안고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온다. 마치 고질라 같다.
요즘은 이런 사람들을 '관크'라고 부른단다. '관객 크리티컬'이라는 뜻이다. 인터넷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관크'를 당한 사람들의 유형도 가지가지다. 팔걸이를 두 쪽 모두 떡하니 차지하고는 팝콘을 우적우적 씹는 사람. 영화와 이미 동화되어 극중 인물과 대화하고, 옆사람과 대화하는 사람 등등. 뭐니뭐니해도 가장 많고 가장 짜증나는 것은 앞 좌석을 발로 차는 사람일 것이다. 중요한 장면에서 그 발질길이 더 심해지는 걸 보면, 집중하라고 날 배려하주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관.크를 시전하는 사람에게 나는 눈을 흘긴다. 그 사람의 행동에서 내 눈흘김까지의 과정을 대강 설명하자면 이렇다. 나는 여자친구와 함께 문화 생활을 영위하고자 정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이 극장에 들어왔다. 하지만 내 의자를 발로 차고, 우걱우걱 쩝쩝 소리를 내며 팝콘을 먹는 저 사람은 분명 오롯이 내가 누려야 할 시간을 방해하는 사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당한 소비를 방해한다는 것은 몰상식하고 무례한 행동이다.
그 때 문득, 영화 <시네마 천국>에 등장하는 극장, <Cinema Paradiso>가 떠올랐다.
아마 요즈음의 사람들이 <Cinema Paradiso>에서 영화를 봤다면, 아마 거대한 싸움이 일어나거나 홧병에 죽어버렸을 것이다. 이 곳의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상영관 내에서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고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심지어 어린 아이들도!),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졸고 있는 어느 아저씨의 입에 벌레를 넣으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이 영화관은 그야말로 '관크' 그 자체다.
하지만 그 곳엔 낭만이 있다. 영화를 보다 죽은 어느 할아버지 관객의 자리에 한 아름의 꽃이 올려 놓으며 그를 추모하고, 영화를 보다가 눈이 맞은 남녀는 사랑의 결실을 맺고 결혼을 하고 아기와 함께 영화관을 찾는다. <Cinema Paradiso>는 영화 감상이라는 기능과 함께, 모두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는 하나의 '광장'처럼 보인다. <Cinema Paradiso>에서 영사를 담당하는 알프레도가 영화관에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영화관 밖 광장 건물에 영사기를 쏘아 영화를 틀어주는 장면 역시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낭만과, 정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아마 <시네마 천국>을 본 사람이라면 요즘 사회에선 느낄 수 없는 낭만과 감성을 느꼈을 것이다.
'자본주의'에 젖어든 우리는 감성과 낭만마저도 '돈'으로 사려고 한다. 분명 우리는 각박한 사회 안에서 친구와 함께, 지인과 함께하는, 일상의 낭만과 행복에 갈증을 느끼며 산다. 그런데 이 갈증을 해소하려고 우리는 초록색 검색창에 '감성 식당', '감성 캠핑' 등등 모든 단어 앞에 '감성'이나 '낭만'을 붙여 검색을 한다. 그리고 감성을 느끼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 카페에선 맥북을 올려놓아야만 감성을 아는 사람 같고, 세련된 사람 같다. (그런 나도 지금 카페에 맥북을 올려놓고 글을 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해시태그 '#감성'을 붙여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고, 천편일률적인 요즘의 '감성 사진'들을 보고 있자면 낭만적이기보단, 오히려 더 삭막함이 느껴진다. 돈을 많이 지불한 감성과 아름다운 사진으로 남길 수 있는, SNS로 자랑할 수 있는 낭만만이 진짜고, 그 외엔 '촌스러움'이나 '궁상'이 되어버린 듯해서. '자본주의'는 뭐든지 한 가지로 정의하고, 규정지으려는 성향이 강한가보다.
신기하다면 신기한 것이, 나중에 어딘가에서 본 영화를 기억할 때 가장 유용한 것은 '관크'의 기억이다.
"우리가 아이캔스피크를 어디서 봤었지?"
"그러게...어디였지?"
"그 때, 옆사람이 의자 엄청 흔들어가지고 우리가 겁나 째려봤었는데."
"맞다 맞다, 신촌이었다 신촌!"
관크는 분명히 불편한 기억이고, 지양되어야 할 행동임엔 분명하다. 하지만 좋았던 나빴던 관크는 우리에게 그저 지나갔을 어느 하루를 더 선명하게 해주는 기능도 있는 것 같다. 천편일률적으로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불편하고 짜증이 났던 기억과 경험들 조차도, 그것이 있기에 우리의 인생엔 남들과 다른 결이 생기고, 또 다른 이야기가 탄생하는 건가보다.
멀티플렉스에서 관.크를 당하고, 거기서 <시네마 천국>을 떠올리며 자본주의까지 나가다니, 좀 과했나 싶기도 하다. 그 순간, 또 뒷 사람이 내 의자를 발로 찬다. 고맙다. 당신 덕분에 그저 흘러가는 내 일상에 또 이야기가 생겼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