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Expedition Happiness, 행복 원정대>
한 가지 모습으로 영원하지 않기에,
매 순간 변하기에
우리는 그걸 행복이라고 부른다.
독일 베를린에 사는 펠릭스와 모글리, 두 남녀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서로가 함께였고 함께 살 집도, 친구도, 키우는 개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충동적으로 집 계약을 해지하고 훌쩍 떠날 준비를 한다. 독일인 특유의 치밀한 계획이나 과정, 그런 거 없었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다. 단 한 가지만 확실했다. 그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
영화 <Expedition Happiness, 행복 원정대>는 행복을 찾아 떠난 두 남녀, 그리고 그들의 반려견 루디가 함께 알래스카에서 시작해 멕시코까지 캠핑카를 개조한 스쿨버스를 타고 여행한 몇 주간의 여행기를 담고 있다. 그리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저 특이하다고 한다면, 낡은 스쿨버스를 사서 그들이 직접 캠핑카로 개조했다는 것 정도랄까. 그들은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멕시코로 여행하며 웅장한 자연의 모습을 만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미국 국경에서는 여행을 하는 이들을 정착하려는 불법체류자로 오해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오랜 여행에 반려견 루디가 먼저 지쳐버리고, 원래 파나마까지 가고자 했던 이들의 여행 계획은 결국 멕시코에서 마무리된다.
이 영화를 보고 무슨 느낌이 들었을지는 안 물어도 뻔하다. 부러웠다. 뭐가 부러웠을까? 단순히 그들이 경험한 여행이 부러웠을까? 그것도 맞다. 서울의 답답한 빌딩 숲 속에서 사는 내게 자유롭게 발길 닿는 대로 버스를 타고 여행하는 그들의 모습은 멋져 보였고, 부러웠다. 하지만 겨우 그게 다는 아닌 것 같았다.
계속해서 저들이 부러운 이유를 생각하다 보니, 결국 저들이 저런 여행을 할 수 있는 이유와, 내가 저런 여행을 할 수 없는 이유라는 곳까지 생각이 가닿았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그 차이는 '여유'였다. 저들은 언제든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행복을 찾아 훌훌 털어버리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내겐 그런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난 왜 여유가 없을까. 그건 내가 처한 현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아직 취직도 못하고, 돈도 못 벌고 있는데 여유가 있는 게 더 이상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펠릭스는 영화감독이었고, 모글리는 뮤지션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직업이 있었기에 여유로울 수 있었을까. 하지만 더없이 자유분방한 이 커플의 모습은 그런 직업조차 그들을 구속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사실 세계의 모든 청춘들이 처한 모습은, 디테일만 다를 뿐 크게 다른 모양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과 나의 결정적인 차이는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같이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 영화의 제목인 <행복 원정대>처럼. 하지만 펠릭스와 모글리의 행복은 매 순간 새로운 모양이었다. 언제든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언제든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영화 <행복 원정대>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여행을 하는 과정이 아닌, 그들이 여행을 끝내는 과정이었다. 파나마까지 가고자 했던 그들의 여행 계획은 루디가 계속해서 이동하며 생긴 스트레스 때문에 병에 걸리면서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본다. 그들은 처음엔 새로운 곳을 찾는 것 자체가 즐거웠지만, 지금은 조금 버겁다고 말한다. 생각 끝에 그들은 여정을 여기서 마치기로 하고 스쿨버스를 다른 사람에게 판 뒤 독일로 돌아간다.
나 같았으면 어땠을까. 내가 그들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면,
"행복해지려고 여기 왔잖아. 조금 힘들긴 해도 포기할 수 없어. 끝까지 가보자."
십중팔구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내가 앞에 했던 많은 노력들을 포기해가며 찾으려던 행복인데, 여기에도 그렇게 많은 노력을 했는데,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노오력'을 내가 이만큼이나 들였는데 말이다. 노력을 한 만큼 성취해내지 못하면, 그 앞의 과정도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 같고, 그것은 행복이었던 것도 불행으로 만든다.
'노력'은 분명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노력의 순기능까지 부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노력'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패러다임이었다. 대한민국의 기성세대들이 한 '노력'을 통해 이만큼 먹고살 수 있게 되었고, 이제 그 '노력'의 바통은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전해졌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우리는 행복은 노력 끝에 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한 노력은 강박을 낳고, 그런 강박적인 '노력'은 필연적으로 '여유'를 앗아간다. 노력이 미덕인 사람에게 여유는 사치이고, 게으름이다. 노력에 성취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노력의 부족이고, 나의 패배다. 지금 대한민국의 청년들 모두 그렇게 배우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지금에 와 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노력을 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너무 많다. 내 노력이 부족한 탓도 있었지만, 일부 몰지각한 기성세대들의 특권 의식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소확행'을 찾기 시작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그것은 행복을 찾으려는 우리 청년들의 발버둥이기도 하지만, 노력해도 성취할 수 없는 답답한 사회 속 청년들의 처량한 모습을 상징하는 말이다. 분명 지금이 행복하지 않은 걸 알아도, 시선을 돌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소소한' 행복뿐이다. 우리 스스로 그것을 소소하다고 말한다. 행복을 찾아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탈은 소소한 수준에 그친다. 소확행을 바라면서 우리는 스스로의 인생에 자조섞인 웃음을 날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노력의 강박에서 벗어난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우리는 행복을 찾겠다고 지금까지 해온 노력들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그건 너무 무책임한 일이니까. 새로운 행복을 찾겠다고 지금까지 한 노력을 포기하기엔, 그 노력이 아까우니까. 펠릭스와 모글리처럼 갑자기 스쿨버스를 개조해서 타고 다니며 여행을 떠나겠다고 짐을 쌀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에게 그것은 회피하는 것이고, 도망치는 것이다. 펠릭스와 모글리가 여행을 하다가 도중에 끝내버린 것조차도.
펠릭스와 모글리가 <행복 원정대>의 여정을 마치기로 하며, 영화는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그들이 지금까지 보내온 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처음 집을 정리하던 그들의 모습,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스쿨버스를 개조하는 모습,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루디와 뛰노는 모습 등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내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이런 생각이 들게 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인생이란 스케치북을 한 가지 주제로 채워야 한다고 한 적은 없다는 것. 행복은 언제든 바뀔 수 있으며, 그것을 찾아가며 언제든 다른 주제로 인생이란 스케치북을 채울 수 있다는 것.
물론 어린 시절부터 꿔온 꿈이 있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하는 삶은 그 자체로도 분명 멋진 삶이고, 본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꿈은, 어느새 강박과도 같은 것이 되어 있다. 꿈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꿈 안에서 맴돌며 갇혀 있는 것이다. 우리가 피나는 노력을 통해 성취하려는 그 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지,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힘들게 성취해 낸 꿈이 우리를 불행하게 해도, 행복하다고 스스로를 세뇌할 것이다. 그 피나는 노력이 아까워서. 그리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눈물을 흘릴 테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노력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노력 하자.하지만, 여유를 잃고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꿈을 향해 맹목적인 노력만 하며 살지는 말자.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언제든 다른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면 그것을 주저없이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를 잃지 않은 노력'을 하며 살자. 무책임하게 포기하고 살라는 말이 아니라, 그런 정도의 여유를 갖고 살자는 뜻이고, 행복의 기준을 무조건 노력의 끝에 있는 성취에 두지 말자는 뜻이다. 결국 그런 인생은 평생 나를 괴롭게만 만들 뿐이다. 잡다한 생각은 모두 치우고 행복하지 않을 때,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정신적으로도 더 여유롭고 행복한 삶이지 않을까. 그리고 '성취'도 그런 '여유를 잃지 않은 노력' 속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한 가지 모습으로 영원하지 않기에, 매 순간 변하기에 우리는 그걸 행복이라고 부른다. 사실 행복은, 그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일 것이다. 펠릭스와 모글리, 반려견 루디는 여행 과정에서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그만큼, 혹은 그 이상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들도 많았다. 하지만 여행을 끝나고 그들을 행복하게 할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순간, 그 추억들은 '행복'이라는 모습으로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았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여행의 과정을 '노력'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원하는 대로 살아갔을 뿐이다.
너무 노력이라는 말에 갇혀 있을 필요는 없다. 그것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그 안에서 '소확행'도 찾고, 그 노력이 지금은 힘들어도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점점 추억속에 행복이 되어줄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든, 인생이 끝날 때 쯤 우리의 인생 여정은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각자만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것일 테니까. 그것이 비록 나만의 정신 승리라 할지라도 말이다. 승리는 승리 아닌가. 노력이라는 말에 갇혀 스스로의 인생을 패배자의 인생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펠릭스와 모글리도 지금쯤, 자신들을 행복할 무언가를 향해 또 다른 여정을 준비하거나, 그 여정길에 올라 있을 것이다. 그들의 행복을 향한 여정에 응원을 보내며 나도 내 인생에서 언제든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행복을 위해, 행복하지 않을 때 행복하지 않다 말할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며, 내 인생에 응원을 보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