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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Mar 02. 2018

행운과 불운, 그 사이의 찌질함

영화 <로건 럭키>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가 제공한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사건들만 보면서 미리 '좋다, 나쁘다' 식의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재수 없다'는 말은 철저히 과거지향적인 말이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과거의 일에만 얽매이면, 모든 것이 나쁘게 보인다. '과거는 후회만 남긴다'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과거의 나쁜 일에 얽매여 스스로를 운이 나쁘다고만, 되는 일이 없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던 지미와 클라이드는, 결국 그들의 불운을 극복했고 '로건 럭키'가 되었다.


어차피 LUCK인 줄 알았던 것이 SHIT이 되기도 하고, SHIT인 줄 알았던 것이 LUCK이 되기도 하는 게 세상이다. 그렇다면 작은 행운과, 작은 불행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결국 미래를 보면서 불행은 행운이 되도록, 행운이 불행으로 닥쳐오지 않도록 힘차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로건 럭키>. 참 오랜만에 보는 '하이스트 무비'(Heist movie)였다. 우연이라면 우연인 것이,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보게 된 하이스트 무비도 <로건 럭키>를 연출한 감독인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오션스 일레븐>이었다.

 


 처음 <오션스 일레븐>을 봤을 때부터 하이스트 무비가 내게는 꽤 잘 맞는다고 느꼈다. 재미있는 하이스트 무비가 가진 몇 가지 공식을 보고 있자면 그저 즐거웠다. 그렇다면 좋은 하이스트 무비가 가진 공식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일단 화려해야 한다. 값비싼 보석, 명품, 돈을 훔치기 위한 장소는 어지간한 거부들만 모여 있는 카지노, 호텔과 같은 곳이다. 그리고 그곳을 털려는 도둑들도 겉모습만큼은 그런 곳에 어울릴 만큼 화려하다. 


 두 번째, 무언가 거대한 것을 털기 위한 큰 계획 아래 모든 캐릭터들이 허투루 쓰이는 법 없이 자기 역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까 말했듯 도둑들이 화려한 모습을 지니려면, 각자가 전문적으로 다루는 특기가 정확히 있고, 그에 대한 자신감으로 스스로를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 그만큼 각 캐릭터의 개성은 더욱 뚜렷하게 부각되어 나타난다. 작전을 짜고 필요한 사람들을 모으는 리더와 그 밑에서 저마다 제각각인 괴짜들을 통솔하는 행동대장, 폭탄 전문가(꼭 한 명쯤은 등장하는 것 같다), 금고 털이 등등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역할이 없다. 그러다 보니 어지간한 역할에는 주연급 배우가 캐스팅되는 경우가 많아 영화 자체가 유명세를 타기 쉽다. 



 세 번째, 절대 인력으로는 뚫을 수 없을 것 같은 난공불락의 금고와, 그것을 뚫는 신묘한 계책이다. 금고는 3중, 4중의 두터운 철문과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붉은 레이저가 사방을 이리저리 휘감고 있어야 한다. 난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성공의 카타르시스는 더 커지는 법이다. 전문 털이범 집단은 강력한 금고에 못지않은 다양한 첨단 기술을 가지고 더 신박하고 교묘한 계획으로 그 금고를 뚫어낸다.


 그리고 마지막, 모든 상황을 꿰뚫는 기막힌 반전. 주인공들은 분명 한 번에서 두 번쯤,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에 문제가 발생한다. 위기 상황이 없다면, 영화가 너무 쉽게 끝나버리지 않겠는가. 아까도 말했지만, 난도가 높아야 성공의 카타르시스도 커진다. 

 그 몇 번의 위기들 속에 마지막 모든 작전이 실패할 수 있는 거대한 위기가 닥치고, 작전이 실패한 듯한 분위기를 여러 군데에서 풍긴다. 하지만 마치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처럼, 어느새 도둑들은 금고에서 모든 돈을 꺼내 유유히 달아나고 있다. 그리고 영화 중간중간 관객들이 놓쳤던 트릭이 담긴 장면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그러다 보면 관객들도 묘하게 통쾌한 감정에 휩싸인다. 


 대부분의 하이스트 무비들이 이런 공식을 따르지만, <로건 럭키>는 뭔가 달랐다. 참 애매하게 비슷한 듯, 달랐다. 먼저, 전혀 화려하지 않다. <오션스 일레븐>이나 <도둑들>에 등장하는 도둑들은 위에서 말한 공식처럼 각자가 화려하고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들은 다르다. 영화의 주인공인 지미(채닝 테이텀)와 클라이드(아담 드라이버) 로건 형제는 말 그대로, '되는 일 없는' 불운의 아이콘들이다. 물론 각자 캐릭터가 가진 개성은 명확하다. 형 지미는 원래 잘 나가는 풋볼 선수였지만 지금은 절름발이가 되어 공사장에서 일하는 신세이고, 그마저도 잘려버린다. 아내와도 이혼해 가끔씩만 사랑하는 딸을 볼 수 있고, 휴대폰 요금도 내지 않아 전화도 쓰지 못하는 신세. 동네 술집의 바텐더인 클라이드는 돈을 벌려고 이라크 전에 참전했다가 팔을 잃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리고 그들 자신도 그들을 'Logan's Curse'라고 비웃을 정도다. 화려하긴 커녕, '찌질'의 결정판이다. 


 그런 그들이 꼬여만 가는 듯한 인생을 역전을 위해 선택한 것이, 금고 털기다. 바로 '코카 콜라 600 NASCAR' 레이싱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을 털기로 한 것. 여기서 보면, 사실 금고가 등장하는 장소는 번쩍번쩍한 호텔도, 카지노도 아니다. 이 곳에 모이는 돈은 그저 레이싱 경기를 보러 온 관중들이 사 먹은 음식이나 음료수 값 정도일 것이다. 미국 전역이 들썩이는 거대한 레이싱 경기이기에 그들에겐 어마어마한 돈일 테지만. 



 금고 자체가 신박한 면은 있다. 마치 송유관처럼 라인을 금고까지 연결해 놓고 돈을 그 라인으로 넣으면 진공청소기처럼 돈을 쭉 빨아들여 금고까지 자동으로 운송되는 것. 영화에서는 그것을 '돈이 다니는 고속도로'라고 표현한다. 레이싱 경기장이라는 장소와 묘하게 어울린다. 로건 형제는 그 송전(?)관 중간을 끊고 금고에 있는 돈을 거꾸로 빨아들이려는 계획을 짠다. 그 과정에서 폭파 전문가인 조 뱅(다니엘 크레이그)과 그의 두 남동생, 그리고 로건 형제의 여동생인 멜리(라일리 코프)가 합류한다. 조 뱅은 감옥에 수감 중이었기에, 그를 작전이 벌어지는 동안 잠깐 탈옥시키기 위해 로건 형제가 짠 작전은 '신묘한 계책'이라는 하이스트 영화의 공식을 잘 따르고 있다. 



 도둑들은 전혀 화려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불운한 이들이고, 돈도 제대로 없는 그들이 가진 건 엉성한 잔기술(?) 뿐이다. 금고 중간을 폭파시키기 위한 폭탄을 만들기 위해 곰돌이 젤리와 펜, 비닐봉지를 이용하는 조 뱅의 모습은 지질함의 극치이다. 그마저도 이해하지 못하는 로건 형제에게 조 뱅은 원소 기호 공식을 써가며 설명한다. 그리고 그들이 돈을 훔쳐 담는 것은 다름 아닌 '쓰레기 봉지'다. 이쯤 되면 찌질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것이 <로건 럭키>의 매력 포인트이며, 이 영화만의 웃음 포인트다. 


 작전을 시작하기 전, 지미 로건이 작전을 이행하기 위해 꼭 지켜야 할 10가지 계명을 자기 집 냉장고에 붙여두는 장면이 있다. 그 10가지 수칙에는, 여러 가지로 불운하기만 한 스스로의 모습을 극복하기 위해 절치부심한 지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1) Decide to rob a bank (은행을 털기로 결정한다)

2) Have a Plan (계획을 세운다)

3) Have a Backup Plan (예비 계획을 세운다)

4) Establish Clear Communication (분명하고 정확한 소통 체계를 만든다)

5) Choose Your Partners Carefully (동료는 신중하게 선택한다)

6) Except the Unexpected (예상할 수 없는 일을 예상한다)

7) SHIT HAPPENS (개 같은 일이 일어난다)

8) Don't Get Greedy (욕심부리지 않는다)

9) Remember, SHIT HAPPENS (기억해라, 개 같은 일이 일어난다)

10) Hang up and know when to WALK AWAY (끊고 달아날 때를 알아라)



  여기서 내가 주목한 건, 역시 'SHIT HAPPENS'였다. 아까 말했던 하이스트 무비 공식의 '작전 중 발생하는 한 두 번의 문제'들처럼. 지미는 자신에게 작전 중 개 같은 일, 즉 예상치 못한 문제가 분명히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불운한 자신이기에, 철저히 계획 안에서 행동해야 함을 지미는 잘 알고 있다. 제 8 계명을 지키기 위해, 두 봉지만 더 털자는 멜리의 말에 지미는 8 계명과 10 계명을 기억하라고 말하며, 빨리 털고 나가자고 말한다. 



 <로건 럭키>가 하이스트 무비의 공식을 제대로 따르는 부분은 바로 '모든 상황을 꿰뚫는 반전'이다. 지미는 어처구니없게도 힘들게 훔쳐 온 돈을 다시 돌려준다. 그리고는 동료들과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탄다. 반전도 너무 어이없는 반전이라 생각할 수 있다. 당신뿐 아니라 지미의 동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황당하여버렸다. 결국 'Logan's Curse'는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인가. 


 그때부터 로건 형제의 불운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영화가 진행되며 하나 둘 행운으로 변모해간다. 지미가 돈을 주최 측에 돌려줬고, 주최 측은 오히려 강도를 당해 보험금까지 탄 상황이었기에 수사해서 범인을 잡으려는 의지가 없었다. 그리고 지미가 휴대폰 요금을 내지 않아 전화기가 없는 탓에, 전화 사용 내역을 추적할 수도 없다. 결국 범인을 잡지 않은 채 사건은 그냥 종결된다.

 그러나 그것이 지미가 노리는 바였다. 사실 주최 측은 자신들이 얼마의 돈을 금고에 가지고 있는지 조차 알고 있지 않았고, 지미는 모든 돈을 주최 측에 돌려준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자 지미는 숨겨뒀던 나머지 돈을 찾아 돌아온다. 결국 영화의 제목인 <로건 럭키>, '운 좋은 로건'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우리가 살면서 많이 하는 말 중에, '재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 영화의 로건 형제도 그랬다. 참 '지지리도 재수 없는'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불운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결국 마지막엔 그들에게 호재로 작용했다.

 과거의 사건들만 보면서 미리 '좋다, 나쁘다' 식의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재수 없다'는 말은 철저히 과거지향적인 말이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과거의 일에만 얽매이면, 모든 것이 나쁘게 보인다. '과거는 후회만 남긴다'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과거의 나쁜 일에 얽매여 스스로를 운이 나쁘다고만, 되는 일이 없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던 지미와 클라이드는, 결국 그들의 불운을 극복했고 '로건 럭키'가 되었다.


 영화의 마지막, 아직도 'Logan's Curse'를 믿느냐고 묻는 멜리에게, 조 뱅은 이렇게 말한다.


"아니, 난 미래지향적인 사람이야."

 그렇다. 어차피 LUCK인 줄 알았던 것이 SHIT이 되기도 하고, SHIT인 줄 알았던 것이 LUCK이 되기도 하는 게 세상이다. 그렇다면 작은 행운과, 작은 불행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결국 미래를 보면서 불행은 행운이 되도록, 행운이 불행으로 닥쳐오지 않도록 힘차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찌질한 느낌의 <오션스 일레븐>이라고 이 영화를 간단히 치부하기엔, 오히려 찌질해서 느낄 점이 많았던 영화였다. 소더버그 감독 특유의 신박하고 유쾌한 느낌의 강도질도 좋았다. 그렇다면 과연 영화 <로건 럭키>는 그냥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날까.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SHIT이 LUCK이 되기도 하지만, LUCK이 SHIT이 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여러분이 눈으로 직접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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