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지 세 달 남짓한 새집은 '북쪽' 뷰가 예술이다. 고속도로를 끼고 있어 시야를 가리는 것 없이 탁 트여 있고 매일매일 아름다운 노을도 볼 수 있다. 거실창이 북쪽으로 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중얼거림에 남편은 "그럼 시끄럽고 춥고 단점도 분명히 있었을 거야"라고 일침 했지만, 나는 그래도 여전히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아파트로 빼곡해 하늘도 잘 보이지 않는 거실창을 보고 있노라면 그냥 좀 답답해졌다.
우리 집에서 북쪽을 볼 수 있는 창은 두 개다. 주방 싱크대 앞과 드레스룸 끝. 오늘은 드레스룸으로 갔다. 다려야 할 옷가지를 몇 개 들고 갔다. 거실에선 남편과 아이들이 잘 놀고 있었다. 창문을 여니 시원하고 차가운 겨울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들어왔다. 다리미의 스팀이 더 뿌옇게 피어났다. 따뜻한 스팀과 찬바람이 묘하게 뒤섞여서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다림질을 정리하고 늘 그렇듯 북쪽 창을 한참을 바라봤다. 거실에서 작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만 나가보지 않았다. 반짝거리는 자동차 불빛들, 공단의 연기, 어슴프레 보이는 산자락, 아직 빛이 남아있는 하늘.
이걸 보고 있자니 사치를 부리는 것 같았다. 아이가 울어도 창 밖을 내다보는 여유의 시간. 찰나의 그 짧은 사치.
둘째가 부쩍 커서 글을 쓸 마음의 여유도 없는 나날들이 이어진다. 이 글도 서랍에 두고 두 달 만에 다시 꺼냈다.
오늘은 싱크대 앞 북쪽창으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사치를 좀 부려보자. 조건은 둘째가 깨지 않으면 충족된다. 유튭뮤직에서 재즈를 튼다, 커피를 내린다, 마신다, 책도 서너 장 본다. 아, 오늘 좀 과한 날이네! 글도 쓰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