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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주 Apr 09. 2023

에세이 소재를 찾고 계신가요?(2)

 기자 시절, 굵직한 사건이 터지면 좋았다. 사회면 톱은 챙겼구나. 후속보도로 3일 정도는 '때꺼리' 고민 안 해도 되겠구먼. 때꺼리는 끼닛거리의 사투리로 내가 일했던 곳에선 기삿거리를 비하하는 말로 썼다. 물론 하루 때꺼리를 때워서 좋은 것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사건이 터지면 심장이 좀 뛰었다.


 무슨 문제일까. 어떻게. 왜 그렇게 됐을까. 물어보고 싶은 말은 넘쳐났고, 팩트를 모으면 모을수록 기사는 쫀쫀해진 크림 같아졌다. (사건 기사를 읽는데 찰지다고 느껴지신다면, 100프로 팩트의 힘입니다.)


 하지만 사회면 톱에 가는 사건은 자주 터지진 않았다. 오히려 내가 때꺼리를 찾아야 하는 날이 열에 아홉이었다. 출입처는 관공서라 보도자료가 제공되는데 그걸 그대로 받아쓰는 날엔 얼굴이 벌게졌다. 그때부터였다. 소재를 찾기 위한 촉수가 발달된 건.


 현장을 다니고 발품을 팔고 제보자를 찾아가는 건 기본이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는 이 방법을 썼다. 행정사무감사 찬스는 농담이고, 심호흡을 하고 달력을 들춰봤다. 4월에만 14개의 일정이 있다. 내가 고른 건 5일 식목일, 7일 보건의 날, 12일 도서관의 날, 20일 장애인의 날, 21일 과학의 날이다. 이 정도면 날의 달 아닌가...5월은 뭐 대풍년이다.




 매일매일이 그저 똑같은 나날. 사건사고가 없는 잔잔한 나의 일상. 지금의 나도 가끔 달력에서 소재를 찾는다. 기자때와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지만.


 4월에는 아이의 봄소풍 일정이 있다. 집김밥 마니아인 나는 벌써부터 속재료를 고민하고 있다. 퍼뜩 소재가 떠오른다. '김밥 속에 오이, 넣으실 건가요?'


 또 4월에는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무슨 무슨 날에 진심인 나는 일찌감치 오마카세 예약을 해두었다. 또 소재가 펄떡인다. '우리는 왜 특별한 날에 오마카세를 먹게 됐을까.'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칼질하는 게 정석 아니었나요?


 마지막으로 우리 남편의 골프 라운딩 일정이 있다. 이건 설명을 생략해도 소재가 넘쳐날...






 기념일이나 일정에 근거한 에세이는 친근해진다. 독자들이 다가가기 쉽다. 가독성이 높아진다. 물론 내가 다루기에도 수월하다. 내 일정을 글로 풀 생각을 미리 하게 되면, 기억력 또한 좋아지는 건 덤.


 또 위에서 잠시 팩트를 언급했었는데. 에세이야말로 기사만큼이나 팩트의 역할이 큰 것 같다. 하나하나의 사실적인 묘사가 차곡차곡 쌓아 올려진 에세이는 정말 멋지고 단단하고 근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


 기자시절, 팩트 하나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처럼. 소재가 아니라 소재 안에 담길 나의 팩트를 위해. 순간순간, 찰나의 시간에 늘 촉수를 곤두세우고 살아야 할 것 같다. 일상의 다양함을 소재로 삼아 글을 쓴다는 건 여러모로 기쁘고 행복한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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