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우주 Apr 14. 2023

주말에 어디 가세요?

 바야흐로 놀파리의 계절이 왔다. 쏘다니기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대구를 기점으로 전국팔도를 다닌다. 차로 2-3시간은 쉽고 4시간쯤 되어야 각오 비슷한 걸 한다. 얼마 전엔 경북 봉화 쪽을 알아보다가 태백까지 뒤져봤다. 남편 하는 말이 더 웃겼다. "저번에 나도 알아봤다. 못 갈 건 아닌데 그래도 멀긴 머네."


 강원도를 대하는 이 여유엔 다 이유가 있다. 차에서 잘 있어주는 첫째 덕분이다. 첫째는 잠투정이 심했다. 어떻게 해도 안 자는 애가 우리 첫째였다. 이놈이 유독 차에서는 잘 잤다.(이걸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우리는 첫째를 태우고 달렸다. 그것도 좀 많이.


 애를 재우기 위한 목적이 변질된 건 우리 부부의 기질 덕분이다. 놀기 좋아하는 남자와 놀기 좋아하는 여자가 만나 놀기 좋아하는 부부가 되었다는. 뭐. 애도 재우고 놀기도 놀고. 그렇게 우리는 가족 유랑단이 되었다.


 

몇몇은 가놓고도 아직 검은색 칠을 긁어내지 못했다.

 


 몇 해 전, 남편은 인터넷에서 '여행에 미칠지도'를 주문했다. 새카맣기만 했던 지도였는데 이젠 제법 폼이 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저렇게 많이 쏘다녔다니. 그리고 아직도 우리가 못 가본 도시가 저렇게나 많다니!


 우리의 색칠기준은 제법 엄격하다. 1박이다. 그 도시의 음식을 먹고 유명한 관광지도 둘러보고 잠도 자고 똥도 싸보는 거다. 특산물이며 마스코트들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중소도시들을 많이 가다 보니 몇 가지 흥미로운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외지로 갈수록 체험관들의 퀄리티가 높아진다. 새로 지어진 건물들은 거의 국립급이다. 애들 데리고 제발 좀 오라는 지자체들의 몸부림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또 유명한 관광지는 서로 내 거라고 우긴다. 이쪽 도시에 가도 이 산이 우리 거네, 이쪽 도시에 가도 이 산이 우리 거란다.


 그리고 그 고장에는 무조건 유명한 인물이 태어났거나 자랐거나 살았다. 신화, 설화, 전래동화 속 인물도 빠질 수 없다. 그 인물을 모티브로 한 박물관, 체험관, 축제가 꼭 있다.


 특색 있는 관광지, 스토리에 사로 잡힌 광기랄까.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어떻게든 엮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게 놀랍다.


 어떤 곳은 억지스러웠지만 어떤 곳은 새롭고 몰랐던 사실이나 역사까지 알게 된 곳도 있다. 차이는 단순했다. 덕지덕지 바른 돈이 아니었다. 웃기게도 '진심'이었다. 여기 진짜 ㅇㅇ에 진심이네?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사소한 것에까지 애정을 쏟은 곳은 달라도 달랐다.


 다니면서 느꼈던 건 생각보다 관광싸움이 치열했다는 거다. 다리 하나만 건너가도 특산물이 달라지는 판이다. '이거 먹으러 오세요' 시대는 이미 끝났고, '이거 체험하러 오세요'도 이제 저물어가는 것 같다. 먹는 것은 산지직송 택배에, 체험은 낡아져 가는 시설물 때문에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런 생각도 해봤다. 지자체가 너무 공익적인 것 같다고. 우리가 놀러 가면 숙박이 제일 중요한데. 정작 이런 시골에 숙박시설은 허름하기 짝이 없다. 인스타 속 유명 숙박시설은 비싼 데다 두 달치 예약이 풀이고 뭔 예약도 DM으로 하래. 이름도 모르고 기구도 작동 안 돼서 방치되는 체험관 따위는 접고 헉 소리 나고 멋들어진 숙소 몇 개만 지으면 안 되나.


 인피니티풀에 온수 수영장이 있고, 수영장 앞 전경은 그쪽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지역 고유의 전경이 있고. 숙소 아래에는 커피며 특산물 파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고. 숙소 앞 잔디밭에는 아이들 놀 수 있는 놀이터와 지역 마스코트로 범벅된 에어바운스까지. 아. 생각만 해도 완벽 그 잡채.


 이런 곳에서의 하룻밤은 얼마나 풍요로울까. 그 경험만으로도 그 도시에서의 좋은 인상을 몽땅 가져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숙박업은 뭐 지자체가 해서는 안 되는 사업인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수익이 나지 않을 상황을 걱정한다면, 건물을 미치도록 좋게 지으면 해결될 일 같다. 인스타 속 숙소들이 이미 답을 말해주고 있으니.


 어쨌든 마땅한 숙소 찾기가 어려워 이번주는 어딜 가야 하나 또 고민하는 놀파리다. 4월은 여러모로 좋은 계절이다. 어딜 가나 좋으니. 많이 실컷 야무지게 놀아야지.

작가의 이전글 첫 문장에서 결판 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