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고프다.
행복은 오직 생존에 복무한다 - <행복의 기원>
"행복한 일을 찾아라." "일상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돈이 많다고 마냥 행복한 건 아니다.".. 행복에 대한 문장은 차고 넘친다. 지금으로 몇 천년 전, 문자를 막 쓰던 때도 행복이라는 논의는 있었을 테다. 알 수 없지만, 문자가 없던 시절에도 행복에 대한 개념은 있지 않았을까?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고민했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단어가 바로 행복이다. 행복은 사람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다르며, 세대마다 다른 것일까? 현재 행복보고서가 발효되고 있다. UN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에서는 작성한다. 찾아보면 놀랍다. 점수를 계산하고 줄까지 세운다.
가장 앞에는 북유럽 국가가 차지한다. 그들이 말한 행복은 무엇일까? 정말 건조하기 이를 데 없다. 1인당 GDP, 사회적 지원, 기대 건강수명, 인생을 선택할 자유, 관대함, 부패로 측정한다. 정말 보고서에서 이른 요소들이 우리들의 행복을 좌우하는 요소일까? 질문을 붙잡고 연구한 이가 있다. 서은국. 그가 공구한 끝에 찾은 행복은 무엇일까? <행복의 기원>에는 실마리가 있다.
행복의 기원은 9개 부문으로 나눠있다.
1. 행복은 생각인가?
고고한 가치인 행복을 단박에 끌어내린다. 행복은 본질적으로 감정의 경험이다. 우리가 머리에서 만들어내는 일종의 생각 또는 가치라는 건 착각이다. 여기서 바로 비극이 시작된다. 행복하지 못하다는 건 바로 나 자신 탓이기 때문이다. 이성은 만능이 아니다. 인간 또한 그렇게 고결한 목적만으로 움직이는 존재도 아니다.
2. 인간은 100% 동물이다.
문명 시작은 고작 6,000년 전이다. 동물로 산 시간은 6,000만 년이다. 인간이 지구를 정복하고 우주로 가는 일을 한다지만, 시작은 오직 생존이었을 테다. 한 번의 선택이 목숨을 앗아갈 수 있으니, 우리 인류를 살기 위한 변화에 몰두했고, 지금의 뇌를 가지게 되었다. 지고한 가치가 아니라, 생존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3. 다윈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행복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은 도덕책 버전이다. 인간은 이유 없는 우주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기엔 너무나 광대하고 찬란하다. 목적이 필요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정했다. 바로 행복. 이젠 삶 자체가 오직 행복을 위해 달려가야 한다. 인생은 행복의 목적으로만 남게 된다.
다윈의 행복론은 과학책 버전이다. 모든 행위는 생존이다. 우린 동물이다. 생존하고, 내 복제품인 자식을 남기는 쪽으로 변해왔다. 행복 또한 생존에 필요한 도구일 뿐이다. 행복한 건 바로 생존에 유리한 쪽으로 유도하는 지표다. 행복 그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4. 동전 탐지기로 찾는 행복
다윈의 행복론과 인간은 100% 동물임을 기억하자. 그럼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부단이 노력하는 동물일 뿐이다. 쾌와 불쾌 감정은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알려주는 생존 신호등이다. 동전 탐지기가 금속을 찾으면 삑삑 거리는 것처럼.
5. 결국 사람이다.
그럼 행복은 무엇일까? 아니, 질문을 바꿔야 한다. 생존을 위한 행복은 무엇일까? 바로 사람이다. 홀로 있을 때는 생존확률이 떨어진다. 비둘기가 홀로 있을 때는 사냥당할 확률이 올라가지만, 함께 있다면 생존확률이 올라간다. 그러니 외로움. 즉 혼자 있다는 생각은 생존율이 떨어졌다고 믿게 된다. 더불어 생존 다음인 번식도 홀로 할 수 없으니, 위험한 상태로 인지하게 된다.
외로움은 사회적 영양실조이니, 사회적 식욕을 올리는 행복인 함께하기로 가야 한다.
6. 행복은 아이스크림이다.
기억하자. 행복은 동물인 우리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유도장치일 뿐이다. 사람과 함께하며 생존율을 올린다. 행복이든 고통이든 목적은 우리 생존율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지, 그 상태에 머물게 하려는 건 아니다. 따라서, 아무리 큰 행복이라 하더라도, 유통기한은 있기 마련이다. 지나간 행복. 즉 지나간 생존 가능성을 올리는 일은 현재 생존율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행복은 냉장고 없는 아이스크림이다. 지금 당장 먹지 않으면, 사라진다.
7. '사람쟁이' 성격.
행복에 유리한 사람이 있을까? 있다. 외향성을 타고난 이들이 높게 가질 가능성이 높다. 사람을 좋아하니 모여 다니고, 생존율은 높아만 간다. 내향성을 가진 분들은 행복할 수 없는 것일까? 아니다. 내향성을 가진 사람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다만, 내향성을 가진 이들은 자극에 대한 스트레스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 혼자 일 때가 마냥 좋은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 역치가 낮을 뿐이다. 사람 쟁이 성격을 가진 이들이 높은 행복도를 가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만 기억하자.
8. 한국인의 행복
개인주의는 국가의 경제 수준과 행복을 이어준다. 이상하다. 사람과 함께 해야 행복하다고 했는데, 다른 말을 한다. 여기서 개인주의는 자신의 말, 자신의 행동, 자신의 선택을 존중받는 개인을 중시하는 일이다. 초집단사회인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의 선택이 오롯이 자신만이 아니다. 타인의 시선이 더해지니, 나는 지워진다. 행복이 도리어 감소한다. 행복은 세상에 증명하는 자격이 아는데, 우린 자격증을 따려고 한다.
9. 오컴의 날로 행복을 베다.
오컴의 날은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필요한 이상의 가정과 개념을 도려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행복은 별다르지 않다. 원시적인 우리 인간을 떠올리면 된다. 사람과 함께하고 생존을 높이는 방법. 바로 소중한 이들과 밥을 먹는 일이다. 이 이상의 행복은 없다.
요약을 했지만, 길다. 더 짧게 해 보자. 행복은 무엇일까? 생존에 복무하는 요소일 뿐이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 거추장스러운 개념을 지워내면, 사람들과 식사하는 일이다. 행복은 쉬이 사라지니, 자주 해야 한다. 여전히 모르겠다면, 여전히 행복이 궁금하다면, <행복의 기원>을 읽자.
난 소중한 이들과 밥 먹으러 가야겠다. 행복이 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