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해야지.
표현하지 못하면 죽는 병에 걸린 자의 최후.
인스타그램 알람이 울린다. 작가이자 독립출판을 하시는 분이다. 최근 출간을 하시고, 큰 도서전까지 바쁘신 분이라 의아했다. "작가님! 예술에 관한 글 부탁드려요. 200자 내외이고요. 내일까지 가능할까요?" 생각을 하기 전 엄지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승낙. 아차 싶었다. 무엇을 해야 하나, 일을 하며 한쪽 뇌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고뇌하다 피식 웃었다. '프로란 자고로 제한된 시간 내에 글을 써야지.'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프로는 무슨..'이라는 생각을 하며 일에 집중했다. 시간이 흐르고, 끝내지 못한 일을 남기고 퇴근한다. 초안은커녕 단어만 머릿속에서 부유했다. 마감이 영감의 원천이라고 할까?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깜빡이는 커서도 리듬에 맞춰 소리를 낸다. 뚫어지게 본다고 해서 답이 나오지 않는다. 무엇이든 처음이 힘들다. 숱하게 쓰고 발행하고 있는 지금도 여전하다. 끝내주는 첫 문장을 쓰고 싶어 고민이 더 길어졌다. 짧게 쓰고, 강렬하게 쓰고 싶은 마음과 실행에 간극을 매번 확인할 뿐이다. '똑똑' 하는 소리가 들린다. 영감이다. 첫 문장이 썼다.
"표현하지 못하면 죽는 병에 걸렸다."
오랜만에 오신 영감님에게 감사 인사를 여러 차례하고 쓴다. 영감님은 두둥실 떠다니는 단어를 조합하신다. 짧은 초안을 쓰고 나니 익숙하다. 200자 글의 주인공은 나다. 글쓰기가 무척 힘들다. 글이라는 결과물만 보면 고고해 보이고, 책이라는 물건을 쥐고 있으면, 있어 보이지만 글 쓰고 퇴고는 고통스럽다. 그래도 쓴다. 쓸 수밖에 없어서 쓴다. 아차. 난 정말이지 표현하지 못하면 죽는 병에 걸려 글쓰기라는 쓴 약을 먹고, 퇴고라는 주사를 맞으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하고픈 일은 핑계를 치우고, 변명을 정리한다."
힘들지만 쓰게 된다. 시간이 있어 쓰는 게 아니라, 없는 시간을 만들어 쓴다.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며 쓰고,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도 쓴다. 이상한 일이다. 계산 따윈 무시하는 일이다. 글쓰기를 하고 있으면 몰입하게 된다. 토토톡 거리는 키보드 소리, 모음과 자음이 나란하게 의미를 가지며 줄을 서는 모습만 남는다. 지적하는 상사도, 풀리지 않는 일도 순간 사라지고, 글과 나만 남게 된다. 세상과 잠시라도 단절하기 위한 글쓰기는 잠시나마 즐거운 일의 가면을 쓴다. 놀고 싶다는 욕망이 만들어낸 핑계를 치우게 된다. 쉬고 싶다는 욕구가 생산한 변명을 착실하게 정리하고 글을 쓰게 된다. 집중했다. 200 자라는 짧은 글을 쓰고, 퇴고하기를 반복했다. 내일 회사 일정이 빠듯하니 다 적어야만 했다. 늦은 밤. 평소 자는 시간이 거의 다가오지만, 눈은 초롱초롱했다. 글쓰기에는 끝이 없다. 단지 멈출 뿐이라는 말을 기억하며 작가님에게 보냈다.
"표현하지 못하면 죽는 병에 걸렸다. 피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피하지 못했다. 도구를 찾아 헤맸다. 찾았다. 피를 잉크로, 뼈를 촉으로 예술을 그린다. 고고한 예술은 없다. 고통스럽게 도전한다. 피칠갑 한 체 쓴다. 평생 고치지 못할 질환이다. 남은 생 함께 할 환후다. 살기 위해 예술을 끌어안는다. 바짝 마른 핏가루가 후두룩 떨어진다."
어떤 글을 쓰든 무슨 상관인가 싶다. 물론 비난하고 비웃는 사람은 있다. "원래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들이 점잖은 척 뒷짐 지고 서서 비웃는 법이야.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없으니까." (『귤의 맛』, 조남주 지음, 문학동네) 그들은 대부분 아무 생각이 없는 이들일 가능성이 높다. 해본 사람이라면 남의 노력을 쉽게 말하지도 못한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각자 자리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쉽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생각 없는 이들에게 휘둘릴 필요가 없다. 하고픈 일을 하면 된다. 그렇게 하루가 재미있었다면 괜찮지 않을까? 난 표현하지 못하면 죽는 병에 걸렸다. 피하지 못해 여기까지 왔다. 고통스럽지만, 병을 고칠 방법은 쓰는 일뿐이다. 써야만 해서 쓴다. 표현하지 못한 자의 최후는 숱한 이상한 글과 꽤 괜찮은 글 아주 조금, 언젠가 나도 만족할 수 있는, 상상 속의 동물처럼 있을지 없을지 모를 글을 남기는 사람이 될 테다. 최후에 도달할 때까지, 피를 잉크 삼고, 뼈를 촉으로 글을 써낸다. 저와 같은 병에 걸린 분들에게 심심한 응원을 보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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