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강국의 시작은 저작권에서부터.
"이거 봐, 똑같은데?"
"존중 없는 이용"
"이거 봐, 똑같은데?" 동생이 휴대전화를 코앞까지 비춘다. 익숙한 단어, 낯익은 문단이 보인다. 헉 소리를 내며 처음부터 읽었다. 낯선 아이디에는 내 서평이 남아 있었다. 몸이 뻣뻣해졌다. 다른 게시물을 살폈다. 다행이라고 할까? 내 서평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쭉쭉 내려가며 다른 게시물을 보고 있으니, '정말 아이디 주인이 쓴 글이 맞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빼앗긴 글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멈췄다.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고, 신고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바쁜 일상에 다시 빠져들었다. 잊었다. 며칠 지나고, 다시 생각나 아이디를 검색해 봤다. 없어졌다. 나만 당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누군가가 신고해 사라진 건 아닌가 했다. 찾기도 어려운 작은 계정에 쓴 글까지도 베껴 쓰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무서웠다. 박사를 하며 숱한 글을 썼다. 계획서, 보고서, 논문, 특허를 썼다. 이때 늘 주의한 것이 표절이다. 선행 연구를 살피고 반의 반 발짝을 나가는 일이 연구인지라 공개된 논문과 특허를 쓰고 출처 표시에 정성을 다한다. 거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비슷한 문장을 썼는지 안 썼는지 프로그램을 돌려 확인까지 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니, 비슷한 부분은 나오기 마련이다. 출처를 표시하고, 원 저작자에 대한 존중을 표현한다. 노고를 인정하는 일에 힘을 다한다. 큰 의미로는 인류 보편적 성장을 위한 지식 공유이지만,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공부했다. 학계에서 존중받고, 존중하던 때와 다른 상황에 놀랐다. 가벼운 마음으로 작성한 내 글이 무단으로 도용되었고, 출처를 밝히는 존중 따위는 없으며, 마치 자신이 쓴 글처럼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뻣뻣해진 몸은 좀처럼 돌아오지 못했다. 존중 없는 이용은 다음 글을 공개해도 될지. 누군가 가져가진 않을지 무서웠다.
"귀명창을 만드는 저작권"
직장을 다니며, 연구로 했던 활동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을 했다. 논문 읽고, 특허를 쓰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10년 가까이하다 보니 지겨웠다. 새로운 글을 쓰고 싶어 도전했다. 글쓰기 시작은 서평이고, 뒤이어 에세이를 썼다. 꾸준히 쓰며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했다. 책을 출간하기도 했고, 신문사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으며, TV 프로그램에 나오기도 했다. 놀라운 일이다. 새로운 도전에 불씨를 짚히고, 나만의 생각을 정제된 글로 쓰는 일을 즐겁게 해내고 있다. 글을 읽고, 쓰는 일이 잦다 보니, 명작을 보는 눈도 조금씩 길러지고 있다. 쓰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뇌리에 박히는 표현을 쓰는 일이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체험하며 키워졌다. 글을 보다가 책을 읽다가, 귀한 문장을 만나면 손뼉을 치며 반갑게 맞이한다. 줄을 긋고 생각까지 덧붙인다. 잊을까 필사를 해 남기기도 한다.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떠오르는 판소리 격언이 있다. "귀명창 있고 명창 있다." 판소리를 할 줄 몰라도 감상하는 수준이 명창에 이르는 사람이 있어야, 명창이 나온다는 말이다. 뛰어난 작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처럼 평범한 수준 이하의 글을 쓰지만, 좋은 글을 보는 눈을 조금씩 길러내는 이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쓴 글이 전파 낭비(실제로 들었던 말이다) 일 수도 있지고, 나무를 베어내는 환경 파괴(이것도 들었던 말이다)가 될 수 있지만, 명작을 찾아내는 귀명창을 만드는 거름이라고 한다면 의미가 있다. 거친 이용과 표절은 좋은 작가를 보는 눈을 흐리게 했다. 무서웠고, 글을 계속 쓰는 일이 두려웠다. 풀뿌리처럼 작은 성장을 보호하고, 걸출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이 있는데 바로 저작권이다.
"소프트 파워의 기초"
소프트 파워라는 말이 있다. 하버드대학교 조지프 나이 교수가 처음 체계화했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기반으로 하는 물리적이고 강제되는 수단의 반대로 문화적 매력, 이념적 가치, 외교 정책이 가진 힘을 뜻한다.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는 말처럼 K-pop이 우리 입에서 세계인의 입에서 흐르고, 영화는 최고의 작품상을 받기도 하며, 코로나 시국에서는 우리만의 시스템을 만들어 이겨내기도 했다. 경제력이나 군사력보다는 문화로 우린 단박에 선진국 대열에 설 수 있었고, 선진국이 배우로 오는 곳이 되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이야기가 우리나라에서 키워지고 있었다. 기초에는 저작권을 보호하고, 창작자에 대한 수호가 큰 한몫을 했다. 많은 분들이 책, 웹툰, 음악, 영상을 만들고, 다시 재생산할 수 있다. 거기다, 내가 만든 자식인 작품이 언제 어디로 가든 경호받고 있다.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낼 시도가 끊임없이 이루어지니, 우리의 소프트 파워는 퇴적되고 있었다. 만일, 저작권에 대한 방비가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이 문화 선진국으로 나갈 수 있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테다.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다."
백범 김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출처: 재단법인 김구재단) 이 문장을 볼 때마다 울컥한다. 돈이 없었기에 나라를 잃었다. 약했기에 강탈당했다. 그럼 강한 힘과 돈으로 복수를 생각할 법도 한데, 선생은 문화를 이야기했다. 돈도, 힘도 인류 행복을 근원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나라가 성큼 다가왔다. 작은 풀뿌리처럼 창작하는 이들을 보호하고, 작품을 알아보는 이를 키워낸다. 만들어낸 작품은 언제나 보호하고 그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자라난 작품은 또 다른 창작의 원천이 만들어진다. 어떤 크기로 만들어지고, 어떤 영향력이 있든 상관없다. 작든 크든 그들은 보호받아야 한다. 저작권에 대한 보호가 바로 명작을 만드는 시작이 되고, 걸작을 알아보는 이들을 성장시키는 동력이 된다. 내가 원하는 나라는 귀명창이 가득하고, 부드러운 힘이 세상 끝까지 갈 수 있는,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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