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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이 줄어들어 좋은 점.

확신이 줄어드니, 관용이 넓어집니다.

by Starry Garden
확신이 줄어들어 좋은 점.


최근 교황님께서 선종하셨다. 종교를 넘어서 검소한 삶, 실천하는 모습이 인상에 오래 남았다. 존경하는 분이 세상을 떠나 마음이 헛헛했다. '자연은 진공을 허락하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짧은 애도 기간이 끝나고 다음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시작되었다. 덩달아 <콘클라베> 영화가 주목받았다. 우리에겐 낯선 제도이기도 하고,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선거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니 온갖 상상을 하게 된다. 호기심이 영화 관심으로 치환된 모양이다. 영화에서는 중상모략이 난무한다. 대세가 되는 추기경은 추문 몇 마디로 표가 후드득 떨어진다. 예상이라도 한 것일까? 콘클라베가 시작될 때 선거를 총괄하는 주인공이 투표권자인 추기경을 모아 몇 마디를 한다.


함께 일하고, 함께 성장하기 위해 우리는 관용이 필요합니다. 어떤 개인이나 세력도 다른 이를 지배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 괸 에페소 성도에게 다가갔던 사도 바오로를 보면서, 하느님이 교회에 주신 가장 큰 선물이 '다양성'임을 깨닫습니다. 사람과 관점의 다양성이야말로, 우리의 교회를 강하게 만듭니다. 수년간 교황청에서 봉사하면서, 제가 그 어떤 것보다 두려워하게 된 죄는 확신입니다. 확신은 화합의 가장 큰 적이요, 관용의 가장 치면적인 적입니다. (중략) 우리의 믿음을 의심과 함께 손을 잡고 걷기 때문에 살아 숨 쉬는 존재인 것입니다. 만약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는 없을 것이고, 더 이상 믿음도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이 줄어든다. 경험이 쌓일수록 모르는 나를 알게 된다. 대학원 때 듣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앎의 단계라고 할까?

학사 - "이제 자기 분야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

석사 - "자기는 아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었음을 알게 된다."

박사 - "남들도 다 마찬가지임을 알게 된다."

교수 - "기억나는 것만 가르친다."


배울수록 모른다. 지식의 너비도 너비지만, 깊이에 놀란다. 박사지만, 여전히 공부를 한다. 배움에만 한정 짓을 수도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아직은 어리지만) 아는 게 늘어나거나, 확실해지거나, 명확해지리라 막연히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지없이 깨져가는 현실을 보며, 망연자실했다. 시간이 갈수록 알지 못하는 걸 알게 되고, 확신은 줄어들며, 흐릿한 사실만 늘어난다. 공자께서 하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대부분 모른다는 말만 되뇐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다고 하니, 확신이 줄어든 지금 좋은 점이 있을까? <콘클라베> 영화에서 주인공이 말한 것처럼, 확신이 줄어든 만큼 나에게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이 늘어난 것이 아닐까?

말은 내 의식과 무의식을 표현되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점점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그럴 수 있지.'다. 세상은 복잡계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요인으로, 우리가 고려할 수 없는 요소로 결정되는 일이 많다. 우린 '운'이라는 단어로 바꾸기도 하고, '신의 뜻'이라는 말로 이해하기도 하며, '운명'이라는 말로 납득하기도 한다. 어떤 단어로든 우리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의 생각, 누군가의 행동이 복잡한 이유로 만들어졌는데, 우린 저마다의 기준으로 '이상하다'라고 말하거나 '비정상'이라고 취급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볼까?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지구는 돌고 태양계의 중심에는 태양이 있다고 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당시에는 이단으로 취급받았다. 물론, 당시에는 온전히 증명되지 않은 가설을 퍼트리고, 거기다 세계관을 부정하는 일이라 막는 일이 정상이라고 생각했을 테다. 다양성은 단순히 학계에서만 있는 건 아니다. 생물학에서도 다양성은 무척 중요하다. 어떤 환경이 닥칠지 모른다. 갑자기 추워지거나, 갑자기 더워질 수 있다. 또는 해수면이 급작스럽게 올라간다면 우린 고산지대로 대피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 모두가 같은 생김새, 같은 신체특성을 가진다면, 단박에 인류를 멸종하고 말 테다. 그래서 다양한 모양으로 인류는 DNA를 전달한다. 적지 못할 정도로 많은 사례가 다양성을 지지한다. 이상한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작지만 세상을 경험하다 보면 완전히 맞는 건 없고, 언제든지 틀릴 수도 있는 사례만 있다는 생각만 커진다. 확신은 멋있어 보이지만, 사실 무척 위험하다. 다름을 제거하고, 하나만의 정답으로 달려가기 위해 방해되는 모든 일을 필요하지 않은 일로 취급한다.

세상이 각박 해지는 건 다양성이 줄어든 탓이 아닐까? 확신을 줄여본다. 세상을 다 안다는 듯, 이건 확실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무섭다. 확실한 건 없다. 확신이 줄어들 수록, 다양성을 인정해본다. 관용이라는 거창한 말까지는 아니지만, 그럴 수 있지를 더 자주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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