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은 아니지만 불량품은 적습니다.
글공장은 가동 중입니다.
"작가님 회사 다니시는 거 맞아요?" 팟캐스트 녹음을 위해 만난 독립서점 대표님의 농담 섞인 질문이다. 웃으며 주머니를 뒤적여 지갑에 있던 명함을 보여드렸다. "명함은 언제든지 팔 수 있는 거니까..."라는 말로 이어가셨다. '혹시 재직증명서라도....' 아니면 '전화해 보시면 절 찾을 수 있을 겁니다.'라는 말을 할까 하다 녹음을 시작했다. 대표님에게 감사하다. 내가 온갖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신다는 증거다. 매일 쓴다. 양이냐? 질이냐?라는 선택에 난 언제나 양이다. "내가 처음 시를 보여줬을 때, 그는 멍한 표정으로 노트를 앞뒤로 넘기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이게 백상지 100그램짜리인가? 아주 비싼 종이에 시를 썼네. 다음부터는 싸구려 갱지에 시를 써.” 그게 무슨 말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이건 그래도 시처럼 보인다고 말할 때까지 나는 수없이 많은 노트를 버려야만 했으니까." (『청춘의 문장』, 김연수 지음, page 60) 글을 수 없이 쓰고 지우고 발행하는 과정을 해야만 글 다운 글로 나아간다고 믿는다. 우선 시작해야만 한다. 좋은 글이라는 도착지도 그곳에 도달하는 길도 많다고 믿으며 글을 쓴다. 2년이 넘게 글을 쓰지만, 여전히 허우적 거린다. 매일 죽음의 선 앞에서야 겨우 퇴고를 하고 발행 예약을 누른다. 예약을 하루 전에 하면 다행이다. 어떤 날은 점심 먹기 전 잠시 짬을 내 겨우 발행 버튼을 누르기도 한다. 우아하게 글을 쓰는 장면보다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쏟아기는 글감을 일정한 수준으로 글로 만드는 글공장에 근무하는 근로자가 된다. 걸작도 명작도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글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잊고 있던 생각을 끌어올리는 기회를 주는 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만든다. 글공장 근로자로 근무를 하다 보면 좋은 점이 몇 있다.
첫 번째는 글이 아주 미세하지만 좋아진다. 확실하다. 불량품처럼 논리는 어긋나고, 문장은 삐걱거리며, 했던 말을 반복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탁월함이 터져 나오기 위해서는 수많은 헛발질, 수준 낮은 작업, 해당 분야의 지식이 계속 반복되고 쌓여야 한다." (『린치핀』세스 고딘 지음, page 111) 헛발질 수준의 저품질의 작업이지만, 내게는 쌓이는 게 있다. 그렇게 글도, 인스타그램의 릴스와 피드도, 팟캐스트의 에피소드로 반복하며 미세하지만 변화하고 있다. 고민하고 바꾼다. 길을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누구는 알고리즘 신의 선택을 받아한 편의 영상으로, 하나의 피드로, 한 편의 글로 폭발적인 성장을 보곤 한다. 선택받은 콘텐츠를 만들기까지 숱한 노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린 빛나는 순간만 집중하지, 헛발질한 너절한 시도를 보지 못한다.
두 번째는 집중을 할 수 있다. "무언가에 몰두한다는 건 본연의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는 몰입 상태. 그것은 내가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 나는 이것을 ‘라이딩 모드’라고 부르기로 했다." (『라이딩 모드』, 이택민 지음, page 30) 하루에 한 번 글쓰기 모드로 전환하고 완전한 글 공장 근로자가 된다. 내일 해야 할 일에 대한 고민도 벗어던지고, 이미 지나가버린 일들에 대한 후회도 사라진다. 자신과 약속한 시간에 맞춰 불량품이 나지 않을 글쓰기에 온전히 몰입하게 된다. 다른 생각을 잊고 집중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물론, 가끔은 일기에 불과한 글을 쓰지만, 그래도 자주 남이 읽고 싶어 하는 글이 되고, 드물게 많은 이들이 공감을 할 수 있는 글을 쓰기도 한다. 보너스로 시도를 반복하다 보니, 괜찮은 글의 출몰 확률은 비슷하지만, 시도한 글이 많으니 쓸만한 글들의 절대량은 커진다.
세 번째는 기회가 왔을 때 잡는 힘이 강해진다. "한 번에 성공하는 게 아니라 무수히 실패하고, 도전하고, 길을 찾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공해 나가는 게 인생이고, 길을 찾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공해 나가는 게 인생이 듯이, 야구도 숱하게 실패하고 좌절해도 다음 경기를 위해 묵묵히 내 할 일을 하고 있으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 (『인생은 순간이다』, 김성근 지음, page 12) 불량품을 만들어 본 사람만이 괜찮은 물건을 만들 수 있다. 시행착오를 거쳐 왜 문제가 되는지, 이 글과 저 글의 차이를 알아차리고, 좋은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을 구분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 커진 글 근육과 글 공장에서 생산하는 경험치는 기회를 쥐는 힘이 강해진다. 처음 책을 냈을 때도, 신문사와 인터뷰하고, TV 방송에 출현을 할 때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머리에서 후두두둑 떨어지듯 준비가 되었다.
오늘도 글공장으로 출근을 한다. 비록 걸작도 명작도 아니지만, 봐줄 만한 글을 쓰려고 한다. 물론 불량품처럼 보이는 글이 나오더라도, 내일도 글을 써 생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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