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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든 말든 명왕성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깟 말 몇 마디로 쓰러지지 않는다.

by Starry Garden
하든 말든 명왕성은 상관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천체 관측부에서 활동했다. 밤에는 별과 달을 봤고, 낮에는 태양을 관찰했다. 무한한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의 무한한 가능성을 알아보려고 관측부에 한 건 아니다. 불현듯 밤하늘을 보며 궁금해서 시작했던 것도 아니다. 시작은 불순했다. 천체 관측부는 자유라는 이름을 빌려 강제로 하던 자율학습에 가끔 빠질 수 있었다. 이유는 충분했다. 추운 날씨도 상관없었다. 시작은 불경했지만 별을 볼 수록 빠졌다. 의미 없어 보이던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은 몇 만 년 전 출발한 빛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늘을 한 참 올려다보고 있으면 어지러웠다. 1년 동안 착실하게 야간 자율 학습을 빼고 놀았다. 쓰디쓴 고등학교 2학년 중반부터 공부를 피할 수 없었다. 후배들에게 망원경을 넘겨줬고, 천체를 잊고 살았다.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으로 외우던 태양계를 어색하게 뚝 잘려 '수금지화목토천해'로 변했다는 소식. 그것도 명왕성이 빠진 2006년에서 한참이 지난 뒤에 알았다. 명왕성은 시작부터 불안한 규칙 위에서 시작했다.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은 모두 유럽에서 발견했다. 힘은 강하지만 역사가 짧은 미국은 무엇하나 최초로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다 1930년 미국 천문학자 톰보가 명왕성을 발견했다. 태양계에도 아직 남아 있는 행성이 있었고, 머나먼 끝에서 발견했다는 기쁨과 기술에 으쓱했다. 태양계 식구로 받아들이며 규칙들이 무너졌다. 우선 작았다. 지구와 함께 사는 달보다도 작다. 또, 태양계 안쪽에는 암석형 행성인 수성, 금성, 지구, 화성이 있고, 바깥에는 가스 행성인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가장 먼 곳에 암석형 행성이 그것도 무척 작은 명왕성이 나타났다. 규칙을 일그러졌지만, 함께 지냈다. 그러던 2006년 국제천문연맹에서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다. 세 가지인데, 첫 번째 태양 주변을 공전해야 한다. 두 번째 둥근 모양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무거워야 한다. 세 번째 자신의 궤도에서 주도적이어야 한다. 명왕성은 3번 기준에 미치지 못해 빠졌다. 어색한 리듬인 '수금지화목토천해'로 남게 되었다. 많은 분들이 빠진 명왕성을 보고는 애잔해했다. 안타까워하며 생명체 하나 살지 않을 명왕성에 감정까지 이입하더니 슬퍼했다. 고개를 갸웃했다. 부유하던 생각을 응집해 침전한 문장을 만났다. "명왕성을 행성이라 부르든 왜소 행성이라 부르든 134340이라 부르든,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따돌림받고 소외당하며 존재 자체를 위협받는 자의 심정을 명왕성에 이입시키려 하든 말든 명왕성은 상관하지 않는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page 245)

명왕성은 자신이 명왕성이라 불리는 지도 모른다. 당연히 왜소 행성이든, 134340이든 모른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을 테다. 우연히 지구에서 움튼 생명인 인간이, 인류의 꼴을 갖추고 기록한 지는 고작 5,000년 밖에 안된 존재가 떠드는 말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명왕성이 신경을 쓰지 않을 테지만, 감정이 이입되었다. 살다 보면, 온갖 일이 있다. 이유 없이 무례하게 구는 사람, 이유가 있을 때 무자비하게 구는 사람, 아파할 걸 알 면서 아프게 말하는 사람. 인간이라, 사회를 이루며 지구를 정복한 족속이라 혼자 살 수 없지만, 그렇게 아플 때마다 인류애가 실종된다.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찔릴 때마다 알게 된다. "누가 나를 싫어하면 혹시 내게 고칠 만한 단점은 없나 생각해 보고. 그게 아니라면. 그러니까 나의 존재 자체를 누가 싫어하는 거면, 신경 안 써도 될 거 같아.(중략) 어려운 문제지. 하지만 자기 인생에 집중하면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안 쓰이더라."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 이로하, page 180) 아주 잠시 내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고 고칠 게 없다면, 온전히 내 탓만이 아니라면 명왕성에 이입된다. 어떤 말을 하든 명왕성이 명왕성이듯, 어떤 말을 하든 그것도 지나가는 사람, 내 삶을 한치도 모르는 사람, 안다 해도 표면 한 아는 사람, 깊은 생각 없이 툭 하고 던진 말을 고작 5,000년 밖에 살지 않은 인류가 명왕성에다가 해대는 말로 취급해 본다. 말을 아무리 한다고 하더라도, 말을 크게 하더라도 명왕성은 언제나 명왕성이다.

살면서 배운다. 특별히 뭘 가르치려고 들지 않지만 배우기도 한다. 의도 하나 없이 알려주고, 깨닫는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인생에도 ‘문제은행’이 있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태어난 이래 단 한 번도 삶은 뻔한 적이 없었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page 221) 우린 늘 뻔하지 않는 고통을, 내 의도, 내 책임이 한 톨도 없지만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 있다. 때론 이유라도 알면 좋을 각진 문장에 맞아 아프기도 한다. 이유를 찾을 수 없으니 나에게서부터 찾는다. 없는 이유를 찾기 위해 마음 온갖 곳을 파대지만, 없다. 그러다가 만들어낸 이유는 내 존재가 틀려 먹었다에 까지 도달한다. 그러지 말자. 외부에서 들려오는 말들은 내 존재를 파괴할 수 없다. 파괴를 하는 건, 그들의 말에 휘둘려 나를 아프게 하는 건 다름 아닌 나다. 명왕성처럼 그냥 있으면 된다. 무엇이라고 떠들든. 나란 존재는 생각보다 억세다. 쉬이 무너지지 않는다. 그깟 말 몇 마디로, 그깟 실수 몇 번으로 스러질 존재가 아니다. 오랜만에 잊고 있던 밤하늘을 유심히 본다. 오래도록 자기 자리에서 돌고 있는 별들은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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