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서기
"선생님 토할 것 같아요. 비유가 아닙니다."
"선생님 토할 것 같아요."
한 시간 남짓 요가가 끝나고 선생님에게 한 첫 마디었다. 선생님은 환한 웃음으로 응답했다.
"처음이라 힘드시죠?"
단전에서 올라오는 구토를 꾹 누르고, 겨우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비유가 아닙니다."
웃음을 거두신 선생님은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을 꺼내 주시며 마시길 권했다. 비유가 아닌 진짜 토를 할 뻔한 요가의 시작은 3시간 전으로, 아니 한 달 전으로 거슬러 가야 한다.
책을 읽는 사람들의 숙명이 있다. 거북목. 커다란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머리를 가는 목이 들고 있으니 아플 만도 하다. 목도 혼자 죽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것처럼 어깨까지 고통은 이어진다. 보통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가끔 큰 고통이 두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는 '운동을 해야지...'라고 하고 만다. 새해에는 운동을 하겠다는 결심을 호기롭게 했다. 클리쉐처럼 없어질 뻔한 결심은 여자친구 덕분에(?) 현실이 되었다.
"어떤 운동할래?"
뜨뜻미지근하게 반응하자 날카로운 눈빛을 맞았다. 내 눈은 허공을 떠돌다 급하게 말을 뱉었다.
"필... 필라테스!"
사람은 늘 말을 조심해야 한다. 한 달을 해보자며 같이 시작한 필라테스는 고통 그 자체였다. 내게 그런 근육이 있는지도 몰랐다. 부드러운 시범과 다르게 나는 부들부들 떨었다. 하고 나면 상쾌함 보다는 근육통에 시달렸다. 운동에 재미는 사라졌다. 모든 운동이 시작은 고통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아팠다. 연장 여부는 묻는 강사님에게 고민해 보겠다는 말과 함께 난 사라졌다. 필라테스가 끝나기 전 '데자뷔' 같은 상황, 같은 눈빛이 내게 날아왔다.
"어떤 운동할래?"
이번에는 바로 답했다.
"요가"
그렇게 시작하려는 운동이 바로 요가다. 요가는 문제가 없었다. 이번에는 3시간 전으로 가야 한다.
"오랜만에 마라탕 먹을까?"
맛과 향이 대체 불가한 마라탕. 한국 음식으로는 대체될 수 없는 맛.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음식. 주기적으로 먹어줘야 하는 음식이 마라탕이다. 여자친구의 말에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운동하기 전에 든든하게 먹어야 된다는 (아주) 잘못된 생각과 요가는 격한 운동이 아니라 마음 수양에 가깝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발단이었다.
배를 두둑하게 채우고는 요가 수련장으로 갔다. 은은한 빛,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인센스 향을 느끼며 문을 열었다. 밝은 모습으로 맞이해 주시는 선생님. 고요하게 각자 자리에서 준비하는 수련생들이 보였다. 탈의실을 안내받은 뒤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를 잡았다. 내가 한 요가는 하타(Hatha)였다. 하타는 태양을 뜻하는 하(ha)와 달을 뜻하는 타(tha)을 결합한 말로 음과 양의 조화를 수련하는 요가다. 하타 요가는 동작 하나하나를 '천천히' '오래 유지'하는 정적인 수업을 의미한다.
시작은 좋았다. 고요하게 명상으로 몸과 마음을 이완한다. '헉...'을 한건 시작한 지 20분 째다. 선생님이 오른손을 어디, 왼손을 어디, 발을 어디라고 하셨는데, 이해를 못 해 고개를 들어보니 내가 할 수 없는 자세를 조용히 눈을 감고 하고 계신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할라아사나(쟁기자세), 어깨서기(사르방가아사나)로 옮겨 갔다(물론 그때는 몰랐다) 이때 멈춰야 했다. 마라탕이 위에서 아래로 이리저리 움직여 속을 거북하게 만들었다.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마지막을 찍은 건 살람바 시르사아사나. 머리서기다. 몸을 뾰족하게 만든다. 꼭짓점에는 엉덩이가 있다. 다음은 용기를 내서 다리를 들고 코어, 머리, 어깨로 지탱하며 선다. 말은 쉽다. 선생님은 "각자 수련과정에 따라 할 수 있는 만큼 하시면 됩니다. 남과 비교하려는 마음보다 시도해 보시는 것이 중요해요."라고 하셨지만, 무리했다. 선생님은 계획된 1시간은 넘어 20분을 더한 뒤에야 사바아사나를 말씀하셨다. 풀린 눈으로 방긋 웃는 선생님에게 토할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물을 겨우 마시고는 수련장을 나섰다.
"처음 볼 때, 결혼할 것 같았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아마 뇌에서 빠르게 무언가를 계산하고 직관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신호를 보낸다. 로맨틱하게 이야기하면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신호를 보낸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은 인과 관계를 찾게 된다. 결정하고 이유를 찾게 된다. 토할 뻔했지만, 알았다. 요가는 오래 할 것 같다는 것. 이제는 이유를 찾게 된다는 것.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이 마음에 맴돈다.
"오늘도 매트 위에 올라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안에 있는 신성이 당신 안에 있는 신성에 경배를 보냅니다. 샨티샨티샨티, 나마스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