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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향일기

농약 치며 부모님이 다퉜던 이유.

다투지만 여전히 소중한 이들입니다.

by Starry Garden
농약을 치며 부모님이 다퉜던 이유.


부모님과 밥을 먹다 보면, 가끔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농사.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이 다가오는 요즘 자주 이야기가 식탁에 오르내린다. 작은 밭떼기. 텃밭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작은 밭에 무엇을 심을지 격론이 벌어진다. 언제가 이야기는 그분들의 인생 한 토막으로 흘러간다.


두 분은 부지런하시다. 농사는 부지런함을 먹고살아 자라난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을 듣고 자란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계속 농사를 지었다면 꽤나 번창했으리라 싶다. 하지만, 아버지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농사로를 극복하기 어렵다 생각하신 모양이다. 고향을 떠났다. 고생을 하셨다.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했다. 많은 일을 겪으시고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고향 근처에 자리를 잡으셨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하시던 일을 도우셨다. 일손이 부족했던 차에 젊은 청년이 왔으니, 얼마나 반겼을까? 해가 뜨기 전부터 일하셨고, 겨울에도 쉬지 않고 일하셨다. 연례행사가 있다. "농약 치기"


농약은 한 여름에 살포한다. 뙤약볕 아래 일하는 이들은 유쾌할 수 없다. 땀은 짜증을 올려놓고, 매캐한 농약 냄새는 머리를 아프게 한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종합해 상상하면, 약을 살포하는 일은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친다. 커다란 통을 준비한다.


거기에 물을 담고 농약을 섞어둔다. 긴 호스를 연결하고, 모터를 설치하면 살포가 시작된다. 소방관께서 물을 살포하듯 꼼꼼히 농약을 탄 물을 뿌린다. 그럼 뒤따르는 사람이 줄이 꼬이지 않게 따라간다. 농약 통에서부터 멀어질수록 줄이 꼬이는 일은 잦다.


거리만큼 소리는 작아지고, 모터 소리는 목소리를 치워버린다. 앞서가는 사람도 뒤따르는 사람도 생각이 전달되지 못한다. 앞서가며 농약을 치던 아버지가 소리를 치지만, 어머니 쪽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앞서가던 할아버지와 뒤따르는 할머니는 말이 전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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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가 빠른 어머니는 아버지의 눈빛을 읽고 대처하지만, 거리가 멀어지면 그것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일까? 몇 번의 농약 치는 작업을 하고 난 뒤, 어머니는 이런 명언을 남기셨다.


"아무리 금슬 좋은 부부도 농약 치는 날에는 싸운다."


매번 다투신다고 한다. 물론 상대는 가끔 달라졌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또는 아버지와 어머니. 때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왜? 소통 때문이다. 지금이야, 휴대전화를 쓰든, 무전기를 쓰든 소통에 어려움이 없을까? 기술이 좋아 이제는 드론으로 친다고도 하니. 지금은 없어진 모습일까?


거리가 멀어지고, 우릴 각자 선 자리에서 많은 소음을 듣고 산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서로가 먼 거리에서 이야기하고, 각자의 소음에 시달리니, 소중한 사람과 나누는 대화가 제대로 될 일이 없다. 기술이 만들어둔 도구가 있지만, 소통은 여전히 쉽지 않은 모양이다.


우린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을 하지만, 오해가 쌓이기 일쑤다. 한쪽은 참고 있다 터지고, 파편을 맞은 이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한다. 오해의 말을 한 것 쏟아내고 나면, 한쪽에서는 쉬이 참기 어렵다. 오해라고, 나도 못 들었다고. 그럼 싸움이 시작된다.


해결책이 있을까? 쉽지 않다. 서로가 사는 곳이 멀다면 더욱이. 휴대전화, 줌, 영상통화라는 기술만으로 우리는 소통하는 건 아니다. 진심이 담겨야 하고, 착각이 쌓이더라도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진심. 우리는 가족이라는 사실을 하나 꽉 부여잡고 말이다.


"아무리 사이좋은 관계도 싸우는 날이 있다."


오해. 어쩔 수 없다. 싸우는 일도 있다. 하지만, 소중한 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농약을 치다 싸우던 가족들의 결말은 비슷했다고 한다. 일을 끝내고 저녁을 함께한다. 일정을 고민한다. 장비를 챙겨두며 내일을 준비한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날이 제법 따스해졌다. 겨울 동안 놓아둔 텃밭에 올해는 무엇을 심을지 고민을 한다. 자그마한 밭에서 우리의 마음을 담아 둔다. 부모님이 살아낸 농사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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