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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향일기

잔소리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가족이 견딜 힘이 있다는 신호일 테니까요.

by Starry Garden
잔소리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산다. 10년 동안 혼자 살다 3년째 함께 지내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를 갔다. 기숙사에서 지내기도 했고, 작지만 내 방이 생겨 자취를 하기도 했다. 혼자 살면 먹는 게 늘 문제다. 단체 급식에 의지했고, 스스로 겨우겨우 끼니를 해결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집을 두었다. 엉망이 되기 일쑤다. 살기 어렵겠다 싶었다. 나름 청소를 했다. 자취 경력이 쌓이니 나름 깔끔하게 산다 자부했다. 군대를 다녀오고 더 괜찮아졌다. 무엇이든 배우면 쓸모 있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긴장할 때가 있다. 어머니의 상경. 잘 살고 있다는 내 생각은 어긋났다.


문이 열리면 시작된다. "이러고 살아? 돼지우리다, 돼지우리." 내가 어찌 30년이 넘는 내공을 이길 수 있으랴. 냉장고의 묵은 반찬은 나라고, 새 반찬이 가득 채운다. 신경 쓰지 못한 곳을 짚어내시며, 청소하라 일갈하신다. 날카로운 눈으로 작은 방을 훑어가신다. 어머니의 활동이 후다닥 끝나면, 방의 밝기는 언제나 올라간다.


어머니의 방문, 어머니의 속사포 같은 잔소리.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어떤 자식이 어머니의 잔소리를 즐길까? 충분히 시간이 흐른 지금, 잔소리에는 애정이 깔려있다는 마음을 알고 있다. 지금도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는다. 내가 어떤 위치, 나이가 얼마가 되든, 난 자식일 테니. 문득문득 그 장면이 떠오른다. 기억은 시간의 바람을 맞더니, 추억으로 윤색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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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이 너무 변한 걸까?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 늘여 놓는 말,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는 말, 참견하는 말. 그런 잔소리가 있어서 다행이다. 왜? 잔소리를 한다는 건 다른 큰일이 없다는 방증 아닐까? 상상해 보자. 집에 큰 우환이 있다. 누군가 아프거나, 큰 실패를 마주했다. 잔소리할 겨를이 있을까? 큰 일을 대처하기도 급급할 테다. 번다한 마음을 위로하기에 작은 일은 모른 척 넘어간다. 잔소리는 사라지고, 무거운 말만 오갈 테다.


평온해 보이는 가족, 행복해 보이는 가족. 가족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모두 각자의 문제를 지고 있다. 크기는 다르다. 무게 또한 다르다. 다만, 잔소리가 있다면, 가족이 견디기 어려운 큰 일도, 가족이 버텨내기 힘든 큰일이 아닌 증거가 아닐까?


부모님과 함께 산다. 여전히 잔소리는 있다. 신호다. 지금 우리에게 별 일이 없다는 신호. 우리 가족이 가진 힘으로 버틸 수 있는 문제만 있다는 사실. 오늘도 방이 지저분하다 몇 마디 하신다. 다행이다. 기꺼이 청소해야겠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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