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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Apr 30. 2024

투박한 친절 경계심이 와르르 무너진 까닭

다시 가고픈 대구.

투박한 친절 경계심이 와르르 무너진 까닭


  낯선 이의 친절. 경계하게 된다. 웃음까지 더하면 무서워진다. 세상이 어수선하니, 친절을 받아들여 얻는 이득보다는 친절을 가장한 위협을 피하는 일이 더 안전하다는 믿음 탓이리라. 익숙한 곳이 아니라, 낯선 여행지라면 경계하는 마음은 더 커진다.


  대구 여행. 기차를 타고 갔다. 대구에서는 버스, 지하철, 도보로 다녔다. 차를 타고 갈 때 놓칠 수 있는 골목을 만났다. 걷다 보니, 사람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온다. 놓칠 뻔한 일상들을 채집케 된다. 맛집을 다니는 일, 수성못을 걷던 일 모두 기억에 남고, 즐거웠다. 글을 적으며 남겨둔 메모에 반복해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낯선 이의 친절이다.


  지하철을 연달아 타야 했다. 자리는 없었다. 묵직한 가방 탓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구겨진 모양이다. 한 정거장, 두 정거장. 어깨를 누르는 무게는 같지만, 버티는 내 힘이 부족한 탓인지 무거워진다. 중앙로 역.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눈을 감고 지하철 노선을 바라봤다. 전보다 한산해진 지하철. 문이 닫히더니 출발했다.


  "자네, 저기 앉아."


  툭툭 치는 손을 따라가니, 정장을 입은 어르신이다. 자리를 안내해 주셨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자리로 통통 걸어갔다. 묘했다. 짧은 말, 갑작스러운 건드림에 깜짝 놀랄 만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인사도 반사적으로 했다. 자리에 앉았고, 낯선 이의 친절에 고마웠다.  


  왜일까? 웃음끼를 쫙 빼고 친절을 베풀었기 때문일까? 투박한 친절에 무장해제된 경계의 이유를 더듬거리며 찾았다. 답을 알지 못한 채 역에 도착했고 내렸다. 괜히 내게 친절을 베푼 어르신을 돌아봤다. 부동자세로 근엄한 표정을 짓고 계신다.



  두 번째 친절은 수성못을 놀다 오던 길이다. 무대는 다시 지하철. 몇 정거장 가다, 여자친구가 주머니를 뒤적인다. 없다. 있어야 할 중요한 물건이 없다. 휴대전화다. 전화를 걸었다. 짧게 신호가 가더니, 진한 사투리 남자분이 받으셨다. 수성못 역이라고 한다.


  우린 방향을 거꾸로 잡았다. 마음을 조리며 도착했다. 역무원이신가 보다. 내가 전화를 걸어 번호를 확인하시더니, 전화를 넘겨주신다. 감사 인사를 하려는 찰나. 환한 웃음과는 상반된 단호한 손짓. 가라고 하신다. 별 말도 없다. 두 번째 친절을 받았다. 두 번째 친절. 또다시 친절을 받았다.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다시 고민했다. 낯선 이의 친절에 경계 따위는 없었다. 투박했지만, 마음을 따스하게 했다. 이유는 여전히 몰랐다.


  그날 저녁 맛집 중에 맛집인 "걸리버 막창"에 갔다. 줄은 길었다. 직원은 1시간 남짓은 기다려야 한다. 가게 안에 이름을 적어두고 줄을 섰다.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우리 뒤에서 사람들이 섰다. 가까이 있는 탓에 이야기가 들렸다. 아버지와 딸인 모양이다. 주저했다. 줄을 서기 전에 이름을 적어야 하는 사실을 모르신 모양이다.


  주저하다 고개를 돌려 말했다. "이름 적으셔야 됩니다." 난 고개를 다시 획 돌렸다. 그들도 짧은 감사 인사를 남기고 총총 걸어갔다. 낯선 이에게 친절을 전달했다. 묘했다. 투박했지만 내 말에 온기를 넣은 모양이다. 그때 알았다. 낯선 이의 투박한 친절에 경계심이 와르르 무너진 까닭을.


  투박하다는 건, 목적이 없다는 사실의 방증 아닐까? 받는 이에게 꼭 필요한 정보만 담백하게 전달한다. 말은 직진이 된다. 그러기에 투박해 보일 뿐이다. 거기서 경계는 한 꺼풀 떨어져 나간다. 다음은 친절. 낯선 곳에서, 낯선이 들에게 친절을 베푼다. 아무런 인연이 없는 이들. 별스럽지도 않은 작은 일. 작은 정보 조각을 나눈다. 알리지 않아도 되는 일이지만, 하고 나면 안다. 괜히 뿌듯하다. 그러기에 대구에서 낯선 이의 친절에 난, 별 경계가 없었던 모양이다.


  또 가고 싶다. 친절을 주고, 친절을 자연스럽게 받을 수 있는 그곳. 그때, 그들에게 주고받게 되는 친절이 있다면, 다시 고민해 보리라. 투박한 친절의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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