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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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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Apr 23. 2024

흙살에 틈을 내어 생명을 심어둡니다.

언제 싹을 틔울까. 흙살을 비집고 나오길 바라며 기다릴 뿐이다.

흙살에 틈을 내어 생명을 심어둡니다. 


  집에는 텃밭이 있다. 공동 주택에 딸려있는 밭을 이리저리 쪼개어 분배해 둔 땅 조각이다. 날이 따스해지면, 어떤 작물을 심어 두고 해를 지낼까 고민한다. 농사라고 하기에는 거창하고, 장난으로 하기에는 큰, 애매한 농사를 하다 보니, 때가 중요함을 새삼 느낀다. 작물을 심을 때를 놓치면 종자를 구하는 것도 어렵고, 피워내는 일도 힘들다. 


  부모님이 한창 바쁘신 탓에 텃밭을 잊고 계신 모양이다. 이번에는 농사의 'ㄴ'자도 모르는 동생과 내가 나서기로 했다. 시장을 들렀다가, 종자 파는 곳을 만났다. 운명이다. 생각 없던 우리는 무엇을 심을지 고민했다. 텃밭에서 수확하는 농작물은 보통 다 먹지 못하고 나누기 바쁘다. 그래도 남는다. 이번에는 오래도록 보관할 수 있고, 다양한 원료가 되는 작물을 선택키로 했다. 


  선정된 녀석은 바로 감자와 대파, 상추 조금이다. 감자 모종은 이미 때를 놓쳤다. 씨감자로 안내받았다. 대파는 우리나라 음식에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으니 활용할 폭이 넓다. 조금 심어둔 상추는 고기를 핑계 삼아 부르기 좋았다.



  작은 텃밭을 보니 멍해졌다. 의욕은 사그라들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동생은 유튜브를 연신 검색했고, 난 고민하다 프로 농업인 두 분께 전화했다. 바로 아버지와 어머니. 기특한 생각을 했냐며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그때는 몰랐다. 난 생각보다 이해하는 힘이 약했다. 말하는 농업인들의 이야기와 행동하는 내가 사맛디 아니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저 깊게, 대략 15 cm 정도의 깊이로 파는 것만 기억했다. 당연하 이랑과 고량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잊었다. 아니, 들었지만 기억하지 못했다. 이야기를 들었다는 덕분에 난 동생에게 신나게 지시했다. 씨감자를 반으로 가르고, 삽으로 적당히 파내려 갔다. 


  파에게도 자리를 척척 내주고, 심고, 꾹꾹 눌러 두었다. 감자에게는 처음 물을 줄 필요가 없다기에 상추와 파에게 물을 주고 잘 자라는 말을 했다. 한 시간 남짓. 텅 빈 땅을 채웠다. 뿌듯했다. 이 맛에 다들 작은 밭에가 땀을 흘리며 하는 모양이다. 사서 먹는 일이 더 쌀 수 있는데 말이다.  


  다하고 정리했다. 집 돌아가는 길. 1층에 농사 전문가인 할아버지께서 우리를 보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밭일했냐고. 무엇을 심었냐고. 우리의 벅찬 감동을 전하니, 잘했다고 엄지 척해주셨다. 그리고 얼마 뒤, 주말 이른 아침 나가시는 어머니를 1층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잡으셨다.



  잘못 심어둔 밭을 다시 해두었다고 하신다. 전말을 이렇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우리가 심어둔 밭을 보셨다. 그런데, 이랑도 고랑도 없는 그곳 어디에 감자가 있는지 이상했다고 한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하셨다고 한다. "아 잘못했구나."


  즉각 다시 하셨다고 한다. 늘 해오신 일인 덕분일까? 30분도 안 걸려 완전하게 만들어 주셨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안 아버지는 빵 터지셨고, 고맙다는 말을 꼭 하라고 하신다. 전문가인 그들에게는 이랑 고랑 만드는 일이 기본 값인 줄 이제 알았다며. 소통이란 어렵다. 누구나 그럴 수 있을 테다. 


  작지만 밭 일이 참 즐겁다. 보드라운 흙살에 틈을 내어 생명을 심어둔다. 물을 뿌리고 시간으로 다지면, 싹이 뚫고 나오리라. 오늘도 괜히 밭에 가본다. 물을 자주 주는 일도 이 친구들에게 좋지 않으니, 그저 바라만 본다. 때를 기다린다. 언제 싹을 틔울까. 흙살을 비집고 나오길 바라며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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