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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Oct 11. 2021

05 중간보고와 친해지기

토론이 두려운 사람들에게

토론을 피하기만 한다면,
반대 의견뿐만 아니라
동조의 의견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아직도 배우는 중입니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이과생이었던 내가 대학에서 건축 설계를 전공하면서 가장 당황했던 것은 끊임없는 토론이었다. 설계 수업이라는 것이 학기별로 1~2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매주 2회 어떻게 작업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교수님들과 동료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주입식 교육이라고 일컬어지는 학교 수업에만 충실했던 나는 비슷한 방식조차 경험한 적이 없었다. 초중고에서 토론을 하는 경우라고 해봐야 단편적인 주장의 나열일 뿐이다. 다른 견해를 듣지만 솔직히 상대와 나의 의견을 통합해서 결론을 도출해 나가거나, 토론을 통해 나의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은 아니었다.
설계 수업에서의 프로젝트는 아마추어일지언정 한 명의 디자이너로서 프로젝트를 오롯이 혼자 이끌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나의 디자인에 대해 왈가왈부한다. 어디는 참신하고, 어디가 진부한지. 어떤 디자인 의도에 공감이 가는지, 동의를 할 수 없는지. 어떤 요소는 의도와 표현이 일치성이 좋고, 어떤 요소는 전혀 의도가 드러나지 않는지. 어느 부분이 아름다우며, 어느 부분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는지. 그런 정제되지 않은 주관적인 판단, 생각들은 나의 감정을 요동치게 하고, 혼돈에 빠지게 했다. 물론 특히 반대의견을 듣고 나면 엄청난 비난을 받은 것 같은 상처가 남았고, 그 부분이 두려워 더욱 피하고 싶었다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이다. 철없는 행동이지만, 그 때문에 프로젝트 초기에는 수업에 나가지 않은 적도 있을 정도였다.
난관은 또 있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일, 아직 미완성의 생각, 미완성의 디자인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일도 내게는 너무 가혹했다. 디자인이란 것은 정답이 없지 않나. 정답이 없는데 계속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했다. 나는 자기주장이 강한 성격인데,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대게 자기 확신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자기 확신이 없는 사람은 주장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나도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은 생각의 파편을 꺼내놓고 토론을 한다니. 그런 파편들이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면 바로 프로젝트를 완성하지, 이렇게 고민하고 수정해가며 지지부진한 작업을 이어갈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런 대학생활을 5년이나 했어도, 나의 성향은 바뀌지 않았다. 회사의 업무도 마찬가지였다. 절차는 정해져 있지만 정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였고, 회사에서도 중간보고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신입시절부터 나는 상사에게 짜잔 하고 결과물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신입이 다 그렇듯 회사에 대해, 해당 업무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그런데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단번에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그런데 뭘 시켜 놓으면 깜깜무소식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방향으로 나가는 게 맞는지 묻지도 않고 뭘 열심히 해서 가져오니, 혼내긴 해야겠는데 불성실한 것은 아니고. 그렇게 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일도 있고, 일정이 지연된 일도 있었다. 내 첫 팀장님은 얼마나 당황스러우셨을까.
직장생활이 길어지면서, 비로소 나는 토론이 두려워서 피하기만 하면 동조 의견도 들을 수 없다는 것, 인정과 격려를 받기도 어렵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동료와 상사들이 함께 고민하고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야 할 동반자라는 것을 인정하면, 반대의 의견을 들을지라도 그것이 꼭 그렇게 상처 받을 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도. 그리고 상사가 바라는 중간보고라는 것이 꼭 보고서나 어떤 완성된 형태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도 오랜 시간에 걸쳐 깨닫게 됐다. 의견을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방향을 수정하는 데 충분할 수 있고, 데이터만 놓고 난상토론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다. 때에 따라 보고서로 중간보고를 해야 할 때도 있지만, 차 한잔을 나누면서, 통로를 지나가다가 생각난 김에 중간보고를 할 때도 있다. ‘이번 사안은 이렇게 생각해서 이렇게 준비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의견을 듣고, 다시 내 의견을 내기도 하면서. 의외인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회사는 담당자가  하나인 일이라도, ‘나만의 이란 것이 근본적으로 존재할  없다. 내가 하는 일의 영향이 나에게만 미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중간보고를 하지 않고  혼자만의 정답 찾기에 골몰한다면. 전체의 방향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나보다  나은 방법을 알고 있는 다른 누군가의 의견을 들을 수도 없다.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나와 회사가  나은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나는 아직도 평균보다는 중간보고를 적게 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아도 나라는 사람이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두려움과 불쾌한 감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다만, 노력으로 커버할  있는 나만의 적당한 수준을 찾아서 목표처럼 정해두고 최소한  수준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 인정과 격려의 달콤함을 알게   따뜻한 선배님들 덕분에 내가 이렇게 바뀌고 있는 것처럼, 그런 선배가 되려고 노력한다.


지금도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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