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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Oct 04. 2021

04 회사에서 애교를 어디에 쓰나?

애교는 없지 말입니다.

지금 같으면 성희롱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불과 몇 년 전까지도 “넌 여자애가 참 애교가 없어~”라는 말을
당당하게 해 대는 선배들이 많았습니다.
어느새 꼰대 취급받을 김과장이 되었지만,
선배들에게는 저도 되바라진 후배인 편이라,
절대 지지 않고 되받아치곤 했더랬죠.
“부장님, 애교 그거 있으면 어디다 씁니까? 국 끓여 드시게요?”


흔히들 ‘다’나 ‘까’로 끝내는 말투를 군대식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여성으로서 그런 말투에 단연코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특별히 어색하지 않은 선에서는 ‘다’나 ‘까’로 말을 맺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고, 조금 유연해지긴 했지만 이제는 거의 습관이 되었다. 유연해졌다는 의미는 그런 말투가 조금은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것도 사실이라, 업무 대화가 아닌 때엔 친근한 선배님들께는 편하게 ‘요’로 말을 맺는 정도다. 또, ‘~합니까?’ 식으로 끝맺는 것은 정말 이상하게 어색해서 의문문은 거의 ‘~한가?’로 맺는 식으로 융통성을 발휘한다. 지만 상대가 누구든 업무적인 대화를 나눌 때는 예외가 없게 하려고 한다.

내가 이런 말투를 써야겠다 생각한 이유는 사적인 대화와 공적인 대화에서 조금 더 태도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싶다는 생각과 말투만 바꿔도 뉴스처럼 신뢰감을 준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여성들이 대체로 ‘다’나 ‘까’로 맺는 말투에 익숙하지 않은 것을 상하관계에서의 예절에 둔감한 탓으로 생각하는 일부 편견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성별에 따른 고정적인 역할과 태도를 강요하는 데는 강한 반감이 있기 때문에 그런 데서 벗어나고 싶었다. 회사에서 성별로 규정지어지고 싶지 않았다. 직장에서의 내 역할과 앞으로 담당하게 될 업무에 그런 편견이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랐다.


어쨌든 선배들에게 여자 신입사원의 ‘다’나 ‘까’ 말투는 이따금 주목을 받았다. “너는 군대 갔다 왔냐? 여자애가 어떻게 그렇게 애교가 없니~?”, “넌 말투가 너무 딱딱해. 여기 봐라, 선배들 다 남자들인데.. 그런 식이면 직장생활 힘들다~?!” 이런 말들을 꽤나 들었다. 성희롱이고, 성차별이고.. 참 기막힌 말이다.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에 비슷한 에피소드가 나왔었다.

방송 제작사에서 일하는 한주가 PPL 촬영을 기피하는 배우와 감독을 설득하는 장면이었다. 한주는 계약 내용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스텝들 때문에 혼자 애를 태우며, 스텝들을 일일이 찾아가 계약 사항과 위반 시 책임져야 할 내용을 설명한다. 그러자 감독은 다리를 꼬고 앉아 커피를 마시며 말한다. “황 PD, 여기 나, 카메라 감독, 배우, 매니저 다 남자지? 아니 오빠~ 하면서 애교 있게 설득하면 못 이기는 척 다 들어줄 텐데, 왜 이렇게 일을 어렵게 해?!”
한주는 결국 질리도록 오빠를 부르며 애교를 부렸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순순히 애교를 부린 건 아니다. 일부러 과도한 액션과 콧소리로 모든 스텝들이 보는 앞에서 원맨쇼를 하는 방법으로 그들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한주를 멈추게 하기 위해 결국 PPL 촬영을 했다. 한주는 원하는 바를 성취하긴 했지만, 씁쓸한 얼굴로 동료와 술잔을 기울이며 에피소드는 끝난다.

아, 거친 말이 내면에서 마구 터져 나온다. 그리고 한 편 나만 겪었던 문제가 아니구나 싶어서 참 슬펐다. 한주의 애교가 코미디처럼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그려져 보는 동안 웃음이 나왔는데, 웃으면서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런 걸 블랙코미디라고 하는 거겠지.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여성은 애교가 있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강요에 반감이 들었고, 모욕감을 숨기지 못해 일일이 설명했었다. 회사에서 애교를 어디다 쓰겠냐고. ‘이랬어요, 저랬어요’ 하면 어떤 부분에서 직장생활이 편해지냐고.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도 매번 싸우자고 달려드는 게 피곤했다. 매번 혐오와 편견 어린 시선을 마주하는 것은 내게도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저 군대 갔다 왔습니다. 장교 출신인 거 모르셨어요?” 하고 농담으로 넘기게 됐다. 하지만 내게 애교를 강요하던 그 선배들이 결국 내게 뭘 좀 아는 후배라는 식의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더 기분 나쁘다.


이제는 시대가 변화해서 그런 표현이 성희롱이며 성차별일 수 있다는 걸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을까. 본인의 편견과 몰상식을 저렇게 대놓고 말할 용기 있는 꼰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은 아직 변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나는 후배들은 듣기 싫어할지 모를 충고를 한다. “이랬어요, 저랬어요 하지 말아라. 애교 부린다고 착각하고, 예의 없다고 무시한다. 말투 딱딱하다고, 애교 없다고 말투 편하게 하라는 그 사람들이야말로  뒤에서 여자는 애교로 해결하려고 해서 안된다 무시하는 사람들이다.”라고.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고치라고 하지 못하고, 그 편견과 맞서는 후배들에게 충고를 하는 게 썩 달갑진 않다. 하지만 약간의 태도 변화로 편견에 휘둘리는걸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좋은 대책이 아니라고 해도 필요한 대처 방법이 아닐까.



사실 나는 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비슷한 이유로 학교 선배들에게 오빠나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선배”라고 불렀다. 아니, 친오빠 사촌오빠 같은 진짜 오빠도 오빠요, 동네 오빠도 오빠, 학교 선배도, 심지어는 남자친구나 남편도 오빠라니. 왜 이렇게 오빠 천국이 된 건가. 너무 이상하지 않나? 내게는 그 표현이 이성으로서 서로에게 잘 보일 하등의 이유가 없는 관계에서도 마치 애교 있고, 보호를 받아야 할 것 같은 대상으로서의 여성성을 강요하는 표현처럼 느껴졌다.

왜 90년대 드라마처럼 “선배”라는 호칭을 쓰냐고 는 선배들에게 일일이 이유를 설명해가면서 그 호칭을 지켰다. 조금이라도 친해진 남자 선배들은 왜 다른 후배들처럼 “오빠”라고 불러주지 않냐며, “선배”라는 호칭은 너무 거리감이 느껴진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는 굴하지 않았다.

그런데 3학년이 되어서는 결국 스스로 “선배”호칭을 포기했다. 신입생 때와는 달리 어느 정도 친분을 쌓은 선후배들끼리만 교류를 하게 됐고, 나이가 많은 동기나 후배를 부를 호칭은 “오빠”말고는 딱히 없었는데, 그들과 나이가 같은 선배를 “선배”라고 구분 짓는 것의 의미가 점차 흐려졌다. 몰려다니는 그룹 안에서 누구는 오빠, 누구는 선배라고 하는 것이 불편했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는 포기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포기와 타협을 잘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오빠”라는 표현 거부감이 든다. 애교 있는 후배이고 싶지도 않고 말이다.


그러니 회사는 직급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오빠”라고 불러달라는 사람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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