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은 직장인에게 찾아오는 가장 확실한 기쁨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인생에도 굳이 좌우명이랄 것이 없는 사람이지만, 직장생활에서 단 하나의 좌우명을 꼽자면 ‘월급의 고마움을 잊지 말자.’입니다. 여러분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생긴 좌우명이 있나요?
입사 첫 해에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지금의 나와 비슷한 연차의 과장님이 있었다. 같은 부서는 아니었지만 내게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 사수 같은 선배였다. 주변에 일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하고, 스스로 적극적으로 업무를 즐기고 회사에 애정도 있는, 어쨌든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눈에도 일하는 모습이 멋진 선배였다.
언젠가 회사를 그렇게 오래 다니셨는데도 이렇게 열정을 갖고 일하실 수 있는 원동력이 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아마 직장생활이 이렇게 힘든데 얼마나 이 생활을 지속해야 하는 걸까 싶은 마음이 생겼던 때인 것 같다. 과장님은 너무도 간단하게 대답하셨다. “월급 받잖아~”하고. 거창한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허무했다. 마치 ‘이번 달 카드값 막으려면 다녀야지 별수 있냐’ 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뒤이어 들은 설명은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다.
과장님은 월급 받는 게 아직도 감사하다고 했다. 본인보다 위험하거나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도 많고, 심지어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 사람도 너무나 많은데, 그 사람들이 모두 우리 같은 대우를 받고 같은 월급을 받는 건 아니라고. 적어도 내가 받는 월급만큼은 회사에 돈을 벌어다 줘야 하는 거고, 결코 당연한 월급이 아니라고. 돈을 받으면서 많은 걸 배우고, 회사로부터 인정받고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일 할 수 있는 게 감사하지 않냐고 말하시는데, 뭔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 질문을 할 때의 나는 불과 몇 달이나 다녔다고 한 사람 몫을 다 하게 됐다고 착각하고, 월급 받는걸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다. 지금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다. 그런데 회사를 10년은 더 다닌 선배가 ‘내가 내 월급만큼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한다니. 10년을 저 마음을 지키시는 분도 있는데, 첫 월급을 받고 친구와 그 기쁨과 책임에 대해 이야기하던 게 몇 달이나 됐다고 벌써 잊었다니. 갑자기 스스로 한심해졌다.
취업에 성공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임용고시에 합격해 비슷한 시기에 발령이 난 친구와 만나 서로를 축하했다. 중학교 때 만나 서로의 가정 형편도 훤히 아는 친구였다. 친구의 아버지는 세탁소를 운영하셨고, 나의 아버지는 버스 운전을 하셨다. 친구의 부모님도 나의 부모님도 가난하게 자라셨다고 했다. 좋은 교육을 받지도 못하셨고, 돈을 벌고 모으는데 특출한 감각이 있으신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성실하게 일하고, 작으나마 저축을 하는 게 다인 분들.
우리 둘은 한참을 우리가 쾌적하고 안전한 근무환경에서 주말 쉬어가며 일하는데도, 이런 월급을 받는 게 부모님에게 죄송한 마음이 드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친구는 다림질을 하느라 굳은살이 박이고 잦은 화상으로 엉망이 된 아버지의 손을 이야기했다. 나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앉아서 운전을 하시느라 망가진 아버지의 허리와 발목을 이야기했다. 취미나 혼자만의 시간도 없이 가장으로서만 살아오신 부모님의 시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우리는 그렇게 온몸을 바쳐 일하시는 부모님이 버는 돈과 비슷한 돈을 우리가 받을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서도 한참 동안 이야기했다. 우리의 첫 월급이 30년 넘게 일하신 부모님의 수입과 그렇게 큰 차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후에는 역전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다짐을 했다. 나는 회사의 성장에 도움이 되리라, 친구는 아이들을 진심을 다해서 가르치리라, 그런 다짐을 나누었다.
과장님 덕분에 다시 한번 그때 했던 다짐을 떠올렸다. 잊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고, 지금까지는 그 다짐을 지키고 있다. 간혹 지치고, 화가 나서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에도 내가 월급 값 하고 있나 생각하곤 한다. 그러곤 월급의 고마움을 되새긴다. 이 마음은 참 설명하기 힘들다. 아마 나와 얘기를 나눴던 과장님도, 친구도 그 의미를 말로 다 설명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것과 다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단순히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한 돈벌이를 넘어서는 감사함을 갖게 됐고 그걸 지키려고 가끔 한 번씩 그 마음을, 그때를 떠올린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월급 값 이상의 성과는 내고 있다는 자신감도 있다. 어느 때에는 나 정도면 다른 회사에 가서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여전히 월급이 감사하다. 어느새 미운 정 고운 정 쌓여버린,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동료가 있는 이 회사에도 여전히 감사한 마음이다.
첫 월급을 받았을 때 부모님께 작은 선물과 함께 큰 마음을 먹고 백만 원을 드렸다. 사실 나를 키우느라 고생하신 걸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금액이지만, 그때 내 기준에서는 정말 거액이었다. 자취하느라 월세, 공과금, 생활비를 무시할 수 없었고, 사회 초년생이 다들 그렇듯 정장 한 벌 제대로 없었기에 돈 쓸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더 큰돈처럼 느껴졌었다.
그래도 그런 돈을 드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뿌듯했다. 그리고 빠듯하게라도 그런 지출을 다 하고 났는데도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수 있음이 놀라웠다. ‘내가 정말 많은 월급을 받고 있구나. 이 돈은 정말 큰돈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두 번째 월급부터는 아등바등 저축을 했다. 함부로 쓰고 싶지 않았고, 나중에 더 큰돈도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딸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월급으로 종잣돈을 모아 결혼도 하고, 차도 사고, 집도 마련했다. 필요할 때 가족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월급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돈 자체로서 재산의 증식뿐 만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다양해지고, 많아진다. 그리고 이변 없이 다음 달 월급을 기다릴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안정감을 준다. 은퇴를 상상하면서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삶을 계획해 보라.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당장 이번 달 카드값을 막기 위함이라 하더라도, 월급은 직장인에게 가장 확실한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