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통화 어렵죠? 하지만 꼭 해야만 한다면 전략적으로!
“비밀이야기 하는 거야? 나도 같이 듣자!”
옆자리 선배에게 놀림을 받을 정도로
부끄럼을 타던 신입사원이
통화스킬로 인정을 받게 되기까지…
그 비결이 궁금하신가요?
나는 전화 통화가 두렵다. 생활에서 예약이나 A/S 관련한 통화도 어지간하면 피하고 온라인 예약을 선택한다. 전화만 붙잡으면 묘하게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하고 움츠러들기 때문이다. 상대가 누구든 기죽는 법이 별로 없는 성질머리도 소용이 없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통화를 하는 것은 더욱 난감하다. 다른 사람들이 내 말소리만 들을 것 같고, 작아진 나를 들키는 것 같아 부끄러워진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가장 적응이 되지 않았던 것 중 하나도 전화였다. 어릴 적 집에 있던 전화기는 어느 순간 인터넷전화기로 바뀌었고, 나와 동생까지 고등학생이 되어 휴대전화를 갖게 된 이후엔 그마저도 사라졌다. 회사 책상에 놓인 전화기가 너무나 낯설었던 이유일 것이다.
처음엔 ‘어느 팀 누구입니다.’ 하고 인사하면 사회인이 됐다는 실감이 나서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꼼짝없이 자리에 앉아 통화를 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통화를 하면 그 큰 빌딩의 한 층에 내 목소리만 울리는 것 같아, 벨이 울리기만 해도 식은땀이 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통화하는 목소리가 작아졌다. 상대방이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받으려 노력했다. 자세는 파티션 모서리를 파고들 것처럼 웅크린 채 말이다. 옆자리 선배가 “비밀이야기하는 거야? 나도 같이 듣자~”라며 놀리기 전까지는. 그렇게 통화하니 더 궁금해진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쭉 소곤대며 전화를 받는 사람이 되었을 것 같다.
1년쯤 지나니 식은땀이 나는 정도는 면하게 됐다. 그리고 시간이지날 수록 더 익숙해졌다.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됐어도 다시 걸겠다고 하고 휴대전화를 들고 폰부스로 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어떤 전화는 주변에 들으란 듯이 일부러 자리에서 받기도 했다. 통화의 상대와 내용에 따라, 자리에서 하는 게 유리한 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일단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통화를 하는 것이 회의록 못지않은 업무기록처럼 활용되는 경우가 있다. 이중삼중으로 챙겨도 구멍은 어디선가 뚫리기 마련이다. 결과가 잘못된 것에 대한 면책은 안 되겠지만, 나의 노력은 증명해야 정상참작이라는 것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일정이 중요한 업무라면 꼭 증인을 남기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메일이나 메신저로 여러 번 독촉하는 것보다 담당자와 통화 한 번 하는 것이 실제 더 효과적이고, 중요한 통화를 동료들 앞에서 하면 나의 노력이 증거로 남는다. 다만 내 실수의 증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은 유념하자.
그리고 유독 입버릇이 좋지 않은 사람과의 통화도 동료들 앞에서 하는 편이 유리하다. 폭언이나 욕설까지는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상처가 되는 말들은 많다. 나는 사원 시절 후배들에게만 유독 함부로 하는 것 같은 선배의 전화는 꼭 자리에서만 받았다. ‘과장님, ~라니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저 속상합니다.’하면서 그 선배의 말을 반복하고, 그 일을 동료들이 알게 하는 것이다. 적어도 위로는 받을 수 있고, 나는 운 좋게도 ‘아랫사람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라며 상대에게 쓴소리해주는 정말 좋은 선배를 만난 적도 있었다.
때로는 친근한 대화로 동료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주변에 보여주는 것이 업무 역량이자 평판으로 축적되기도 한다. 나는 공장에 근무하는 선배님들과 통화할 일이 많았는데, 자주 보는 사이가 아니다 보니 통화로 친분을 쌓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통화를 더 하이톤으로, 약간의 주접을 보태서 하는 경향이 생겼다. 살가운 조카가 삼촌과 오래간만에 통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몇 달 전 출장 가서 만나 뵙고 회식한 이야기를 두 번 세 번 우려먹고, 본사와 떨어져 있는 부서만의 고충과 하소연을 한참이나 들어드렸다. 다른 부서, 특히 공장 근무자들과 친해질 수 있던 방법은 따로 한 번은 꼭 이야기하게 될 것 같으니 이 정도로 하겠다.
물론 민망하고 부끄러울 때도 많았다. 평소엔 찬기 풀풀 풍기며 팀 동료들에게도 별로 살가운 구석이 없는데, 전화만 붙잡았다 하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소연을 들을 때는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나도 피곤했다. 하지만 그걸 참으면, 모르는 걸 질문해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공부를 많이 한다고 가상하게 여겨주고, 무리한 요청도 사정이 있겠거니 참작해주었다.
그런데 그게 비슷한 업무를 하는 3~4년 동안 이어지자, 얼굴을 마주한 적은 몇 번 되지 않아도 격의 없는 관계가 늘어갔다. 어느새 주변 동료들은 공장에서 전화만 오면 유달리 높아지는 내 목소리를 당연시하고, 공장에 근무하는 동료들과의 친분을 신기해하기도 했다. 어떤 상황에서는 업무상 갈등을 중재해주기를 바라기도 해서, 나는 또 어쩔 수 없다는 듯 전화를 해서 주접을 떨어댔다.
신기하게도 그저 업무를 조금 더 편하게 하려고 했던 노력은 ‘본사에만 근무했어도 공장과 소통을 잘하고, 공장 돌아가는 사정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친구’라는 평판으로 돌아왔다. 상사의 인사평가 피드백에도 그 칭찬이 빠진 적이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남초현상이 심각한 제조회사에서 여직원에게는 아주 특이한 평가였고, 발탁 진급 심사나 감사부서로 이동 시에도 대표적인 강점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전화 통화가 나의 평판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별일도 아닌 통화로 나쁜 평판을 갖게 된 경우도 보았다. 내가 입사한 기수에는 유독 재무부서 인원이 많았는데, 나는 동료들이 그 친구들에 대해 뒷담화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들었다. 주요 내용은 전화 통화로 경험한 불친절이었다. 그 친구들은 온 사방에서 전화해서 같은 내용을 물어보니 좀 무미건조하게 답변했을 뿐이지만, 물어보는 처지에서는 ‘어떻게 선배에게 그런 태도로?’라며 예의를 운운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이에 고작 통화 몇 번으로 예의 없다는 낙인이 찍히다니, 그 친구들의 면면을 더 많이 아는 나로서는 참 아쉬운 일이다.
전화 통화에 대해 또 생각해 보게 된 일이 있었는데,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고객상담실(내가 다녔던 회사는 특이하게 고객상담실을 사내에서 운영했다.)로 옮기고 나서 나에게 해 준 말 때문이었다. 상담원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가 목을 덜 아프게 하려고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미소 대신이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불만으로 잔뜩 화난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처럼 험한 말 못하게 웃어주는 거라나.
회사를 대신해서 잘못한 것도 없이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상담원들도 성난 사람들에게 웃어 준다고 한다. 게다가 전화 좀 건조하게 받았다고 예의 없다는 낙인이 찍힌단다. 그러니 전화만 받으면 자못 친절해지고 높아지는 나의 목소리는 부끄러워할 게 아니라 자랑스러워할 일이었다. 가뜩이나 웃을 일 없는 직장 생활에 목소리로 동료에게 상냥한 미소를 보내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목소리에도 표정이 있다는 사실을.
조금 더 반갑게, 상냥하게
업무전화를 받아보자.
분명 무엇인가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