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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an 10. 2024

09 | 원래 먹고사는 일이 제일 힘들다지만

저도 국밥 참 좋아는 하는데요.

저도 국밥 참 좋아합니다.
콩나물국밥, 굴국밥, 순대국밥, 돼지국밥,
선지해장국, 곰탕, 설렁탕, 갈비탕까지.
그런데…
세상에 존재하는 이 수많은 국밥들!
적어도 돌아가면서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가 다니던 회사는 입사하기 두 해 전에 그룹사 빌딩에서 나와 임대빌딩으로 이전했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구내식당은 구경도 해보지 못했다. 입주해 있던 빌딩은 지하에 쇼핑몰이 있고, 푸드코트가 있어서 구내식당이 없었다. 매일 이 식당 저 식당 골라가며 다녀야 했다.

운 좋게 식성이 비슷한데다 식도락을 즐길 줄 아는 선배를 만났을 때는 점심시간만 기다리게 됐다. 이런 분들은 회사 주변 맛집 지도가 머릿속에 훤하다. 팀원들의 식성과 컨디션까지 배려해 숙취 해소를 위한 해장국, 기분 전환을 위한 가벼운 식사 등 메뉴를 귀신같이 척척 제안하신다. 회식 때는 최근 핫한 식당까지 알아서 소개해 주시니 다른 단점은 상쇄하고도 남는다. 일을 조금 못해서 뒷수습에 뼛골이 빠져도 이런 선배와 회사생활을 한다면 견딜 만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행운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메뉴 선정이나 식사 속도, 식사 예절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직장인들의 점심 식사는 괴로울 수 있다. 본인이 먹고 싶은 것만 고집하는 상사, 식사 속도가 너무 빨라서 먹는 내내 눈치 보이게 만드는 선배, 못 먹고 안 먹는 게 너~무 많아서 도무지 뭘 먹어도 불평불만이 쏟아지는 후배까지. 매일 점심시간이 불편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점심시간마다 나를 가장 괴롭게 했던 선배의 유형은 바로 같은 식당, 같은 메뉴를 너무도 사랑하는 선배들이었다. 운이 없게도 나는 그런 선배를 두 번이나 만났다. 그것도 단일메뉴만 파는 식당. 한 주에 두어 번씩 먹다 보면 그 누구라도 질려버릴 것이다. 구내식당도 아니고, 선택권이 널려있는 처지에 그런 식의 식사는 정말 힘들었다. 게다가 나는 개인적으로도 같은 메뉴를 자주 먹는 것은 선호하지 않는다.

그중 한 선배는 특정 돼지국밥집을 아주 좋아했는데, 하다못해 돼지국밥도 다른 가게와 번갈아 가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그 식당에 너무 자주 가는 것 같다고 불평하자, 불편하면 남자와 여자로 나눠서 밥을 먹자고 하셨다. 나는 그저 횟수만 조금 줄이기를 바랐을 뿐이었는데. 배려의 가면을 썼지만, ‘선배가 먹자는데 토를 달아?’라는 약간의 비아냥이 담긴 태도였다.

나는 “팀웍의 팔 할은 밥상머리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냐? 그 식당 두 번 갈 거 한 번으로 줄이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밥을 따로 먹기까지 하냐!”며 들이댔다. 물론 웃으며 가볍게 얘기하는 척하려 애썼지만, 그 선배도 내 말에 매우 단단한 뼈가 있음은 알았을 것이다. 결국은 사이좋게 일주일에 한 번을 넘기지 않기로 합의했더랬다. Z세대가 들으면 ‘먹고 싶은 거 각자 먹으면 되지, 뭘 합의해? 극혐이다.’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옛날 사람이라, 그런 행동도 했다.

또 다른 분은 당시 팀장님이셨다. 그래서인지 팀 내에서 나 말고는 메뉴 선정에 불만을 표하는 사람이 없었다. 테이블에서 끓이며 먹는 고기가 많이 들어가는 김치찌갯집이었는데, 팀장님은 김치찌개 3인분에 라면 사리를 두 개씩 넣으시는 분이었다. 가뜩이나 고깃국물과 라면 때문에 느끼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는데, 거기만 다녀오면 온종일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김치찌개 먹었냐는 인사를 할 정도로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몇 번 그 식당에 가는 횟수를 조금 줄이자고 건의했으나 전혀 효과가 없었다. 덕분에 별로 의지도 없는 다이어트를 핑계 삼아 점심을 따로 먹기에 이르렀다. 자진해서 따로 먹겠다고 하는 날이 오다니. 나는 ‘팀웍 밥상론자’이니 만큼, 그 결심을 하기까지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미봉책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은 팀원들과 함께 식사했는데, 슬픈 것은 그때마다 그 지겨운 식당에 갔다는 것이다. 그나마 내가 있어서 참으셨던 것이다. 내가 빠지자 이틀에 한 번꼴로 가셨다고 한다.



직장에서의 점심시간은 정말 그 의미가 크다. 오후를 위해 재충전하는 짧디짧은 휴식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회식이 많이 줄어드는 요즘, 팀원들과 업무가 아닌 말랑말랑한 대화를 편안하게 나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식사 예절을 잘 지켜서 힘든 하루의 활력소로 만들어야 한다. 좋은 사람들과 식사를 함께하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기쁨은 인생 전체를 보더라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이 먹고 싶거나, 먹지 못하는 메뉴에 대해서 너무 눈치 볼 것 없이 솔직하게 표현해야 할 것 같다. 선배들도 몰라서 그럴 수 있으니까. 그리고 선배들은 후배들이 먹자고 하면 못 먹는 음식이 아니라면 성의껏 따라다녀 주자. 새로운 맛집을 발견할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발견한 식당에서 남편과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수저와 물, 셀프바 등은 선후배 가릴 것 없이 가까운 사람이 일행을 배려해서 맡아주자. 내가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남성 임원은 집에서도 수저 놓는 것은 내 몫이라며, 일부러 수저통 옆에 앉으시는 분이었다. 군대 문화를 경험한 선배들은 처음엔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나이와 직급이 밥상 앞에서 다 무슨 상관인가. 큰형이 동생들 수저 좀 놓아주는 게 이상한 일일까.

그리고 식사 속도를 맞춰 조금 느린 사람도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배려하자. 나는 유독 식사 속도가 빠른 동료를 많이 만나서, 식사를 반만 하는 습관이 생겼었다. 나는 남편과 똑같이 밥 한 공기를 뚝딱하는 평범한 사람이고 식사속도도 더 빠른 편이다. 그런데도 당연한 듯 밥을 남기던 생활이 슬프게도 너무나 길었다. 마지막으로 식판으로 배식하는 곳이나 뷔페식 식당에서 앞사람은 아직 열심히 먹는 중인데 잔반 모으는 행동은 정말 무례하다는 것 알아두시길. 그걸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게 참 이해되지 않는다.


나는 직장을 그만둔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직장 다니면서 알게 된 맛집 리스트를 애용한다. 그럴 때마다 함께 방문했던 동료들이 떠오른다. 특별히 친하지도 않았고,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데도 말이다. ‘모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추억’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소했던 몇몇 기억조차도 추억이 되기도 한다. 떠올리면 기분 좋을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오늘도 서로 배려하는 즐거운 식사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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