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마음에 대하여
10년 전 나는 종로의 어느 작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다양한 이름의 프랜차이즈 카페가 우후죽순 생기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간 많은 아르바이트를 섭렵했지만 커피 만드는 일은 처음이라 긴장이 되었다. 출근 첫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온몸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친절한 매니저 언니로부터 음료 레시피를 배우고 목청껏 ‘메뉴 나왔습니다!’를 외쳤다. 창고 옆 작은 공간에서 재빠르게 밥을 먹고, 마감 청소를 하고 나면 까만 밤이 종로 골목 곳곳에 내려앉아 있었다.
면접을 볼 때까지만 해도 그동안 해 온 아르바이트에 비해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진상 보존의 법칙은 어디에서든 적용 가능한 법이다. 커피가 식었으니 바꿔 달라고 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본인의 실수로 음료를 엎고서 화를 내며 다시 만들어 내라고 하거나 당연하듯 리필을 요구하기도 했다. 계산할 때 카드를 던지거나 언성을 높이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점장을 찾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자리 정리를 하지 않고 그대로 나가는 건 예사였다. 음료를 마시고 난 뒤 나오는 컵과 접시와 포크는 왜 이리 많은지. 설거지를 하다가 팔이 너무 아파 들어 올리기가 힘들었다. 만만하게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카페에는 몇 명의 단골이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그중 한 분이셨다.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도 금세 눈치챌 만큼 늘 비슷한 시간대에 카페에 들어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나 ‘고마워요’라는 다정한 인사와 함께 갓 내린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조심히 받아 들고 테라스로 향했다.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던 모습은 마치 슬로모션 영화를 보는 듯했다. 지금이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카페가 자연스러운 공간이 되었지만, 그 시절엔 어떤 이질감이 분명히 있었다. 서울에는 이렇게 멋있는 할아버지도 존재하는 건가 하는 촌스러운 생각을 종종 했다. 토익 학원을 오가는 학생들과 바쁘게 출근하는 회사원 사이에 어색함 없이 섞여 있는 모습을 카운터에서 지켜볼 때면 언제나 묘한 기분이 들었다.
중절모를 쓰고, 체크무늬 재킷에 어울리는 단색의 셔츠를 차려입은 할아버지는 언제나 치우침 없이 차분했다. 끼이익-끄는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조용히 테이블 안으로 의자를 넣었다. 테이블을 깨끗이 정돈하고 트레이를 직접 가지고 온다. ‘잘 마셨어요.’ 하고 꼭 눈을 맞추며 인사를 건네고 가던 분. 들어왔다 나간 자리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던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처음과 끝이 완전히 똑같은 사람을 만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이후로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단정한 태도의 할아버지는 만난 적이 없다.
카페 일에 제법 익숙해지고 나니 계절 하나가 지나있었다. ‘고마워요’,‘잘 마셨어요’라는 말 외에 우리 사이에 다른 대화는 늘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따듯한 눈인사를 받을 때면, 자꾸 뭉클함이 솟아났다. 꾸역꾸역 눌러 두었던 외로운 마음 하나가 잠시간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애쓴다, 수고가 많다'는 목소리가 눈빛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응원의 말이 실제로 오가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건네는 인사 만으로 위안받을 수 있음을 그때 알았다.
우리는 살며 만나는 모든 이로부터 크고 작은 영향을 받는다. 나도 모르게 뾰족해질 때면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할아버지를 가끔 떠올린다. 단정한 태도로 인사를 건네는 그 마음을 기억해 낸다. 나는 세상 곳곳에 다정한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표정 없이 앉아 있어도, 무뚝뚝하게 스쳐 걸어가도 우리에게는 아직 서로 나누지 못한 온기가 남아있으리라.
하여 나는 만나는 인연의 깊고 얕음이나 알게 된 시간의 길이와 상관없이, 되도록 따듯한 사람이 되고 싶다. 비록 우리가 오래 만나지 못하더라도. 긴 시간 서로의 인생에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날 나를 떠올리며, 아-그렇게 다정한 말을 건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지 생각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