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한 작고 소소한 마음들
매년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다.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해 1970년에 시작된 이후 올해로 52주년을 맞이했다고 한다. 하나뿐인 지구의 소중함을 되새겨보는 뜻깊은 날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9년부터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소등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전국에서 동시에 저녁 8시부터 10분간 소등하는 것이다.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겠지만, 이산화탄소 약 52t의 감축 효과(30년생 소나무 7900여 그루가 연간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량)가 있다고 한다. 잠깐의 소등으로 온실효과를 막는데 도움이 된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무엇보다 우리 집에는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는 아이가 자라고 있으니 더욱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벤트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샤워를 마친 우리 세 식구는 떨리는 마음으로 8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집안에 어둠이 내려앉았다가 안개처럼 천천히 걷히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어둠이 내려앉음과 동시에 사방이 조용해졌다. 10분은 생각보다 길었다. 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북극곰과 펭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뻐했다. 불 끄는 일은 하나도 어렵지 않으니 모두들 하고 있겠지 하며 커튼을 열어봤는데 여전히 불이 켜져 있는 집이 많았다. 살짝 실망한 아이가 우리만 불을 끈다고 뭐가 달라질 수 있느냐 볼멘 목소리로 물었다. 남편과 나는 조용히 토닥이며 말했다.
"아주 작은 힘도 모으면 큰 힘이 되지. 모두가 우리와 같은 마음일 수는 없지만 작은 마음들이 쌓이면 결국엔 아주 커다란 힘을 가지게 될 거야. 알면서 행동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이 훨씬 더 멋진 거야. 오늘을 오래오래 기억하자, 알았지? "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나무와 꽃, 개미와 새, 하늘과 산, 바다, 동물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자연과 생명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호기심 많은 딸을 위해 집 밖으로 나와 어디든 발길 닿는 대로 자주 걸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매 순간을 온몸으로 느끼길 바랐다. 놀이터를 시작으로 작은 뒷산, 오솔길이 나 있는 숲, 천변의 산책로를 걷고 또 걸었다. 여행을 떠날 때는 공원이나 숲 놀이터, 계곡과 바다를 꼭 다녀오곤 했다. 생동감 넘치는 자연과 만나는 순간은 늘 감동이었다. 자연은 자신의 존재를 뽐내거나 으스대지 않는다. 그냥 그곳에 있다. 아이와 걷다 보면 세상 곳곳에서 숨 쉬는 많은 생명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또 하나의 생명체임을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여섯 살 무렵의 아이와 함께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전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생생한 사진과 영상으로 만난 멸종위기 동물들의 모습과 현실은 여러모로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넓지도 않은 전시장을 빙빙 돌며 네다섯 번쯤 꼼꼼히 둘러본 아이가 던진 한마디는 지금도 나의 마음을 울린다. 언젠가 어른이 되어 자연과 동물을 돌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이었다. 판에 박힌 직업이 아닌 어떤 '행동'을 하고 싶다는 말이 어찌나 반갑고 고마웠는지.
사진전 이후로 딸이 한 뼘 더 자랐음을 느꼈다. 동네를 걸을 때마다 무분별하게 버려진 쓰레기들을 걱정했다. 이러면 지구가 아파하는데. 동물들이 힘들어지는데. 그렇게 동네 쓰레기 줍기가 시작되었다. 요즘은 플로깅(조깅하며 쓰레기를 줍는 행동)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지구를 위한 운동이 생겨나고 있다. 아이는 플로깅이라는 단어는 모르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주워 분리수거를 제대로 해서 버리는 것.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쓰레기가 너무 많다 싶은 날에는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부끄럽기도 하고 주목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달랐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마음에 집중했다.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에 옮겼다. 어린이들은 망설이지 않는다. 손익을 따지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어린이가 어른보다 몇백 배나 대단한 존재임을 또 한 번 알게 된다. 동그란 웃음을 지으며 쓰레기를 가득 채운 봉지를 내보이는 아이가 싱그럽고 참 예뻤다.
자연을 사랑하는 아이를 지켜보며 나 또한 일회용품 배출을 줄이기 위해 플라스틱 통에 담긴 샴푸와 바디워시, 주방세제 대신 비누를 사용한 지 오래되었다. 쓰레기가 나오지 않으니 그렇게 편할 수 없다. 웬만한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탄다. 마음에 드는 텀블러를 사서 기쁘게 사용하는 것도 지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스티커를 다 떼서 깨끗하게 버릴 수 있는 것도 대충 버리기 일쑤였다. 사진전에서 폐그물에 뒤엉킨 거북이를 보고 난 뒤에는 쓰레기를 그냥 버릴 수 없게 되었다. 플라스틱 병이 산처럼 가득 쌓인 섬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지구가 자정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했다. 환경오염이 심각해진 이 세상에 아이를 태어나게 한 것 자체가 미안해질 때도 많았다. 더 늦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렇게 시작하게 된 작은 행동들. 소소하지만 분명히 지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으며, 아이와 불을 끄며 나누었던 말을 되뇌어본다. 작은 힘이 모이면 결국엔 큰 힘이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