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그림책 읽는 시간입니다

by 현수진



나는 책을 좋아하는, 그중에서도 그림책을 아끼는 엄마다. 그림책의 역사를 꿰고 있다거나 다양한 작가를 죄다 섭렵하고 있지는 않다. 그저 도서관을 매일같이 드나들며 그림책을 들여다보고, 좋은 책은 아이와 함께 읽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긴다. 요즘은 관심사에 맞는 책을 삼삼오오 모여 읽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독서모임을 찾기 어렵지 않은 시대다. 나 역시 낯선 도시로 이사 오면서 모임에 들어가 볼 요량으로 커뮤니티에서 검색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막상 가입하려 하니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떤 모임은 예상보다 훨씬 비싼 돈을 필요로 하기도 했다. 결국 나는 늘 그랬듯이 혼자 읽거나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었다.


이렇게 함께 읽어 온 시간이 어느덧 8년이다. 책과 가까운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꼬물거리는 아이의 머리맡에 인생 첫 선물로 책을 주었다. 그림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가 폭풍 검색으로 고른 책은 당시에 유행한(지금도 유행하고 있는) <사과가 쿵!>, <달님 안녕>,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같은 것이었다. 아이와 긴 하루를 보내야 했던 나는 시간을 쓰는 방법을 고민했고, 수시로 눈 맞춤을 하며 말을 걸다 지루해지면 책을 꺼내 들었다. 딸은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동자를 도륵도륵 굴리며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손발을 버둥거리며 옹알이를 하는 아이 옆에서 거의 매일 소리 내어 책을 읽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지만 아이는 분명히 듣고 있고, 나와 함께 이 시간을 즐기고 있다고 믿으며. 그러는 사이에 딸은 뒤집고, 기고, 집고 일어서고, 걷고, 뛰었다. 공룡에서 동물, 식물에서 자연으로 호기심이 이어졌고, 특히 캐릭터가 분명하거나 재미있고 감동적인 책을 좋아했다.


무수히 많은 이야기의 밤을 지나며 우리는 함께 자랐다. 그림책은 무한한 세계였다. 책을 통로 삼아 시공간을 넘나들며 어디든 들어가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입이 짧고 잠이 없고 예민한 아이를 보듬어 줄 수 있는 방법은 책을 읽고 긴 대화를 나누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육아의 팔 할은 책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체력은 달리고, 역할 놀이는 지겨웠지만 책 읽는 시간만큼은 달랐다. 표지를 함께 살펴보고, 작가와 출판사 이름까지 또박또박 읽어주고, 중간중간 나누는 무궁무진한 대화까지 모든 것이 매력적이었다. 가끔 늦은 시간까지 읽느라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목이 아플 때도 많았지만 행복했다. 같은 책이라도 아이가 어릴 때 읽었을 때와 몇 달 뒤, 혹은 몇 년 뒤에 느끼는 감정의 폭은 훨씬 넓고 깊어짐을 느꼈다. 아이는 종종 ‘나 이 작가 아는데. 그때 읽었던 작가 맞지?’ 혹은 ‘어? 나 이 출판사 아는데. 우리 집에도 여기서 만든 책 있잖아.’ 하며 반가워했다. 본인만의 취향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새로운 책과의 조우를 늘 기쁘게 생각했다.


마음에 드는 그림책이 생기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 읽어 보았다. 자신의 용돈으로 직접 서점에서 구매해 책장 한편에 자신만의 컬렉션을 만드는 것이 아이의 큰 기쁨이었다. 작가별로 모으기도 하고, 동물과 자연에 대한 그림책을 모아 둔 칸도 있었다. 마음 편히 늘어지고 싶을 땐 아이는 언제나 동물이나 자연에 과한 그림책을 골라 뒹굴거렸다. <여러 가지 새둥지>, <선인장 호텔>, <숲>, <별이 내리는 밤에>, <사자와 생쥐> 같은 책들이 종종 소파 주변에 아이와 함께 널브러져 있었다. 책을 맛있게 읽고 나서 밖으로 나가 신나게 뛰어놀고 나면, 아이의 하루는 충만한 만족감으로 넘쳐흘렀다. 생기가 돌고 웃음이 가득했다. 보고만 있어도 배부른 얼굴이었다.


그림책에 대한 에피소드는 참 많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그림이 너무나 아름다운 이세 히데코 작가의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라는 그림책에는 주인공 소피가 책을 꼭 껴안는 장면이 있는데, 아이는 그 페이지를 너무나 좋아했다. 행복한 얼굴로 책을 꼭 껴안으며 나도 책을 너무나 사랑해,라고 말하던 모습은 마음이 벅차오를 만큼 소중한 순간이다. 얼마 전, 겨우 내내 부지런히 읽던 안녕달 작가의 <눈아이>를 갑자기 다시 꺼내 들고 나에게 다가와 건넨 말이 있다. 마지막에 눈아이가 숨바꼭질을 하는 장면을 펼쳐 보이며,


‘엄마, 눈아이가 자기가 녹아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숨바꼭질을 하자고 한 것 같아. 눈앞에서 자기가 갑자기 사라지면 친구가 너무 슬퍼할 수도 있잖아. 숫자를 오래 세고 있으면 몰래 스르륵 사라질 수 있으니까.”


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어 마음이 짠했다고 했다. 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그림책은 언제나 새롭고 흥미롭다. 오늘 아침엔 박현민 작가의 <엄청난 눈>이라는 책을 아침을 먹으며 함께 읽다가 한참 웃었다. 학교 가는 길 내내 깔깔 거리며 웃는 얼굴이 얼마나 싱그러웠는지 모른다. 덕분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그림책을 함께 읽는 시간은 행복 그 자체일 수밖에.


노는 방법도 잘 모르고 에너지도 부족한 엄마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 아이에게 통했던 것일까. 딸은 책을 사랑하는 어린이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초등 입학 이후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학습만화까지 입문해 자신만의 세계를 열심히 확장하고 있다. 쉬는 시간을 틈타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골라왔을 모습을 상상하면 깜찍하고 귀엽다. 소파 구석에서, 식탁과 책상에서, 부지런히 무언가를 읽으며 키득거리는 아이를 바라볼 때면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수줍은 아이가 교실 구석에서 조용히 무언가를 읽던 모습, 소파에 세상 편한 자세로 기대앉아 상상에 상상을 거듭하던 여름날 같은 것들. 그 시절의 나와 딸을 잇는 것은 역시 책이다. 어린 시절 내가 읽은 책을 아이와 함께 읽을 때,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때, 같이 웃고 감동하는 모든 순간이 그림책을 통해 얻는 기쁨이자 행복이다.


우리는 오늘도 아침에, 오후의 빈 시간에, 자기 전에 같이 혹은 따로 책을 읽는다. 이 시간이 되도록 길게 이어졌으면 좋겠다. 언젠가 끝은 오겠지만 우리가 같이 나눈 이야기들이 아이의 마음에 깊이 뿌리내려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길 바라며. 오늘도 함께 읽자, 즐거운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