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케이크와 어린 엄마

by 현수진



글쓰기 수업을 마치고 근처 카페로 글을 쓰러 왔다. 진공 상태처럼 고요하던 공간이 금세 사람으로 가득하다. 점심식사 후 입가심을 하러 온 회사원, 등산복 차림의 중년 부부, 테이크 아웃을 하려 줄을 선 청년,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 둘 카페를 채우기 시작한다. 여름휴가를 어디로 갈까 의논하는 설렘, 크로플과 케이크, 커피를 모아 사진을 찍으며 나오는 감탄, 이 시간의 커피 한잔이 유일한 낙인 사람들의 한숨이 뒤섞여 순식간에 소음을 만든다. 그들의 엄청난 에너지에 어안이 벙벙해졌다가, 한때는 나 역시 이런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이었지 하며 무심히 이어폰을 낀다. 아득해지는 예전의 기억으로 마음이 어지러워지자, 볼륨을 최대로 높이고 귀를 닫았다.


깜빡이는 커서를 멍하니 바라보며 의미 없는 글자를 나열하고 있었다. 누가 화면을 보는 것도 아닌데 몇 번이나 내 쪽으로 고쳐 틀기 바빴다. 나는 글을 쓰는 쪽이 아니라 부지런히 숨기는 쪽이었다. 아무리 써도 마음에 들지 않아 지우기를 몇 번째, 이제 그만 나갈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내 오른쪽으로, 어린 태가 나는 엄마가 쭈뼛거리며 앉았다.

구석에서 쥐 죽은 듯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나와 커다란 유모차를 끌고 들어와 조용히 자리를 잡은 어린 엄마. 북적이는 이 공간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란 생각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자꾸 눈이 가고, 마음이 쓰였다.


아이스 라테 한 잔을 주문한 그녀는 자리에 앉아 차로 빼곡한 주차장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멋진 풍경을 가진 카페가 아닌데도 열심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무를 보는 걸까, 하늘을 보는 걸까.

쓰던 손을 멈추고 커피를 홀짝이며 그녀에 대해 생각했다. 나 역시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는, 우연히 마주치는 어린 엄마를 보며 애틋해질 때가 있다. 실은 별다른 사연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엄마라는 어렵고 외로운 시간을 힘겹게 통과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테니. 그녀에게 좀 더 따뜻한 눈길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어린 엄마는 노란 체크 원피스에 잘 어울리는 갈색 샌들을 신고, 아이의 볼을 쓰다듬으며 미소 짓고 있다. 이따금 자신의 낯선 손과 발에 관심을 가지며 노는 아이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사랑을 가득 담아 아이를 바라보는 눈. 앳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영락없는 엄마의 눈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나이와 전혀 상관없구나. 저 따스한 눈길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사진으로 찍어 간직하면 얼마나 멋질까 생각했다.

그 순간, 아이가 꺄아 하고 소리를 질렀고, 카페 안의 모두가 눈길을 돌렸다. 나무라는 것도 아닌데, 그녀는 당황하며 허겁지겁 아이 입에 물병을 물렸다. 바로 옆자리인 나는 ‘괜찮아요, 너무 당황하지 마세요.’하는 마음을 담아 모르는 척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것이 그녀를 향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세 번쯤 연이어 소리를 지르자, 안타깝게도 어린 엄마는 더 이상 카페에 머물지 못했다.


출처- 언플래쉬


겨우 이십 분 남짓이었다. 어린 엄마가 눈치를 보며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던 시간은. 아이가 재차 보채자, 그녀는 옅은 한숨과 함께 조각 케이크 하나를 급히 포장하고 문을 연다.

딸랑, 카페의 문이 열리고 다시 닫혔다. 멀어지는 유모차를 바라보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나도 따라서 케이크를 주문했다. 오늘의 케이크는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운 초콜릿 케이크였다. 집으로 돌아간 그녀는 케이크를 먹으며 과연 어떤 맛을 느낄까. 달콤 쌉싸름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단어들 중 이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놀이터 벤치에서 노란 체크 원피스의 어린 엄마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또 어딘가 멍하니 바라보며 유모차를 슬슬 밀고 있었다. 아이는 오동통한 다리 한쪽을 손잡이에 걸친 채 단잠에 빠져 있다. 나는 또 모르는 척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지나쳤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배려라 굳게 믿으며.


하늘은 푸르렀고, 구름 한 점 없었다. 나무는 눈부신 초록을 마구 뿜어대는, 완연한 여름이었다. 너무 아름다운 날이라 뒤돌아 걷는 마음이 뻐근하다. 아이가 부디 오늘 밤은 일찍 잠들었으면. 그래서 어린 엄마가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초콜릿 케이크를 맛있게 먹고, 달콤한 잠에 걱정 없이 빠지고, 또다시 시작되는 아침을 기쁘게 맞이하기를 바라며, 나도 나의 아이를 만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