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 드세요
나는 물욕이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무언가를 가지지 못해 안타까워한 적이 없다. 다가오는 생일에 뭘 갖고 싶냐는 동료들의 물음에 말했다. "글쎄, 갖고 싶은 없는데...". 어떻게 그러냐고요? 비밀은 간단합니다. 원하는 게 있으면 곧장 사기 때문이죠. 하하.
물욕이 없다기 보단 잠깐 있다. 물욕 따위를 오랫동안 두질 못한다. 지갑과 마음 중 하나를 파괴해야 한다면 당연히 지갑이니까. 하나라도 버리려는 미니멀 라이프의 흐름에서도 굳건히 쇼핑을 하고 있다.
어디서든 글을 쓰겠다며 아이패드를 샀다. 프로형으로. 최신형 펜슬과 전용 키보드까지 샀다. 글은 30만 원짜리 구형 아이패드로도 영원 불멸 쓸 수 있다. 그러나 가슴을 트이게 하는 신형 아이패드의 액정과 그 위를 스케이트처럼 미끄러지는 펜슬에 넋을 놓은 뒤였다.
게다가 아메리카노 향이 힙하게 퍼지는 카페에 신형 아이패드를 꺼내 놓을 때의 자존감은 카페 지붕을 쉽게 뚫지 않나요? 쓰고 보니 태블릿은 신형인데 마음은 완전 구닥다리다. 이런 욕심으로 산 전자기기가 수도 없이 계좌를 스쳤다. 역시 나는 맥시멀 라이프가 더 좋다.
아이패드를 들고 간 첫 여행은 몽골이었다. 푸른 초원 위에 덩그러니 놓인 게르에 묵었다. 게르 안엔 사람이 살 최소한의 것들만 간소하게 늘어져 있었다. 누워 잘 수 있는 싸구려 침대와 추위를 막는 나무 보일러가 편의시설의 최전선이었다. 그나마도 나무가 떨어지면 원주민에게 가서 몸짓으로 말해야 했다. 양팔을 감싸 쥐고 오들오들 떠는 시늉을 하면 그제야 나무를 넣어 줬다.
그러니까.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 가까웠다. 맥시멀 라이프를 전공한 사람이 미니멀 라이프에 웅덩이에 던져진 것이다. 그쪽 세계에서 물장구도 칠 줄 몰랐던 나는 허우적 대며 가라앉고 있었다.
"데이터가 안 터져서, 글을 써도 업로드가 안돼잖아!"
하루에 11,000원씩 내는 데이터 무제한 로밍을 신청했다. 자동차 대신 말을 타고 다니는 곳에서도 데이터가 된다니, 새삼 지구인의 기술에 감사했다. 하지만 감사는 무슨. 드넓은 초원에서는 약정도 무용 지물이었다. 100원어치도 연결되지 못하고 데이터 무제한을 취소했다. 아이패드와 가장 안 어울리는 곳은 바로 몽골이었다.
데이터가 끊긴 곳에서 아이패드와 초원은 어색하게 만났다. 기술의 최전선과 자연의 최전선의 궁합이었다. 비를 막을 천막과 덩그러니 바닥에 놓인 아이패드. 나는 그 가운데 강제로 떨어진 낱알 같은 사람이 되었다.
"비가 그친 것 같은데?"
"진짜? 혹시 그럼...!?"
3일 내내 오던 비가 그쳤다. 몽골의 여름은 한 달에 이틀쯤 비가 온다던데, 이틀 내내 비를 맞은 터였다. 밤 열두 시가 되어서야 천막을 때리던 빗소리가 멈췄다. 신발도 구겨 신으며 친구와 함께 뛰쳐나갔다. 아이패드를 던지듯 내팽개쳤다. 은하수였다. 은하수는 살랑거리는 스카프처럼 밤하늘에 걸려있었다.
나는 은하수가 좋다. 밤하늘에는 오로라도 있고, 멋지게 별이 모여있는 성단도 있고, 소원을 안고 떨어지는 별똥별도 있지만 은하수가 제일 좋다. 왜 좋냐고 물으면 글쎄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할 겁니다. 이쁘잖아요.
은하수에 뿌옇게 구름처럼 보이는 것들은 모두 별들이다. 수천억 개의 작은 별들이 촘촘하게 모여서 구름처럼 보인 것이다. 은하수는 모래 공예 같다. 하나하나는 작은 알갱이지만 흩뿌려 놓으면 어떤 모양을 갖는 샌드 아트. 은하수도 낱개의 별들이 모여 찬란한 모임을 이룬 것이다.
게다가 은하수는 항상 있다. 서울의 밤하늘에도, 뉴욕의 밤하늘에도, 몽골에 밤하늘에도 늘 존재한다. 구름이 막고 불빛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서글픈 운명이지만 존재한다. 빛과 어둠처럼 한쪽이 사라져야 비로소 다른 한쪽이 드러난다. 나는 그래도 은하수가 좋다. 보이지 않아도 머리 위에 꽉 차게 빛을 감추고 있어서 벅차다.
그러니 찬란한 별들의 모임을 보기 위해서는 챙기는 대신 내려놔야 한다. 도시의 편의점, 길목의 가로등, 아이패드의 불빛 따위와는 멀어져야 볼 수 있다. 망원경도 필요 없다. 아무것도 없어야 볼 수 있는 것이 은하수다. 이 얼마나 편한가요. 없어야 만날 수 있습니다. 몸뚱이만 있으면 된다니까요.
몽골의 시간은 정직하다. 더 빠르거나 느림 없이 내가 걷는 만큼 정직하게 다 달았다. 숨을 헐떡이는 만큼 언덕의 중간에 올랐다. 숨이 차 멈춰 서면 시간도 함께 멈췄다. 그곳에서 올려다본 하늘을 기억한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무섭다. 가로등이 없으면 두렵다. 화장실이 없는 것은 끔찍하다. 무엇이든 넘치는 시대에 모자람은 낯설다. 맥시멀 라이프에게 미니멀 라이프는 아쉽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는 그 결핍에서 은하수를 만날 것이다. 또 다른 소중함을 마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