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삶은 계속 이렇겠습니까?

by 조승현

할아버지의 이름은 김항덕.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예순다섯의 긍정맨이다. 그는 젊은 시절 막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삶은 지독히도 날카로워서 모래와 시멘트로 굳은 그의 피부에도 쉽게 박혔다. 차가운 현실이 그의 목 뒤를 지날 때마다 그는 생각했다. '언제쯤 이 고통이 끝날까?'

그가 찾은 곳은 사주 카페였다. 종로에 천막을 치고 삶에 무게를 재는 곳. 가벼운 입구의 천막을 힘겹게 제치고 들어섰다. 털석, 의자에게 화가 난 사람처럼 앉았다. 역술가에게 물었다. "제 삶은 계속 이렇게 힘들겠습니까?"


"계속 그럴 거야"

"정말입니까"

"응, 복이 안 보여"

"어째 생년월시도 묻지 않고 그렇게 말하십니까"

그제야 관상을 접고 사주로 들어선 역술가는 차갑게 그의 생년을 물었다. 봐봤자라니까,라고 중얼거리며 종이에 뜻 없이 몇 자를 적었다. 잠시후 말했다.

"일흔 초반에 책 쪽으로 뭔가 보이는구먼, 그렇다고 팔자가 피는 건 아니야. 계속 힘들어"


역술가는 단호했다. 돈을 받고 이렇게 안 좋은 이야기만 하는 역술가가 있을까, 의심스러울 만큼 차가운 말만 쏟아냈다. 하지만 김항덕 할아버지는 기뻤다. 힘겹게 제쳤던 천막을 가볍게 날리며 그곳을 나섰다. 생긋 웃으며 생각했다. "적어도 일흔은 넘게 산다는 말이구만, 장수하네"

지독히도 긍정적인 사내였다. 서른에 지치고 지쳐 사주 천막으로 닿았으면서, 오래 산다는 말에 좋아했다. 오래 산다니 더 열심히 버텨야겠다고 다짐했다. 삶은 이어졌다. 공사판을 학교 삼아 목수일도 배웠다가 수도 일도 배웠다. 미장을 했다가 도배로도 이어졌다. 그렇게 삼십 년을 더 일했다. 힘이 다 빠져 공사일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도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40년을 이 바닥에서 굴러먹으니, 집 하나를 다 지을 정도로 기술이 많아졌구먼, 허허"


제집을 지은 적은 없지만, 언젠가 지을 것이라고 말하는 김항덕 할아버지는 글을 쓰고 있다. 일흔 즈음에 책과 관련해 뭔가 있다는 30년 전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글을 쓰고 있다. 더 배우기 위해 글쓰기 모임에까지 스친 것이다. 자기소개를 해달라는 말에 그가 입을 열었다. "글은 손이 쓰지만 결국 마음이 쓰지 않나요. 그러니 이 늙은이가 글쓰기 모임에 나왔다고 타박하지 말아 주세요. 마음은 조금도 늙지 않았습니다."


여느 할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말을 시작하면 교장선생님처럼 조금 길었고, 제한시간인 모래시계가 다 내려앉아도 이해를 구하며 한 번 더 말했다. 그래도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은 맑았다. 마음은 조금도 늙지 않았다는 말이 마음에 닿았기 때문일까. 그 안에 있는 모든 젊은 영혼이 마주했다. 누구나 조금씩은 늙은 몸을 움직여 글을 썼다.

한 두해 나이를 먹어간다. 평생 할아버지는 될 것 같지 않았는데 이미 청년은 넘어선 것 같다. 시간은 밀물처럼 다가올 것이고, 들어찬 물과 나이를 바라보며 나도 계속 글을 쓸 것이다. 그때가 오면 가슴에 곱게 닿았던 말을 내 것처럼 뿌릴 거다. 글은 결국 마음이 쓰지 않나요. 마음은 조금도 늙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