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비가 금값이긴 합니다만

택시 타서 허세 부리기

by 조승현

대학생 때, 고깃집을 가기 위해 택시를 잡던 중이었다. 친구는 흔들던 손을 멈추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택시비를 아껴서 고기를 더 먹는 게 어때?"


친구는 걸어가서 고기를 더 먹는 게 지갑과 건강을 지키는 길이라고 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건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밥은 한 공기만 먹는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나 같은 사람은 걸으면서 생긴 허기 때문에 택시비보다 더 많은 고기를 시킬게 분명하다. 그러니 택시를 타며 허기짐의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 지갑과 건강에게 유리하다.(라고 핑계 댄 후 택시를 타고 가서 고기도 많이 먹었다.)

택시는 정말 최고였다. 지금껏 먼 길을 돌아다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속도였다. 나에겐 보이지 않는 투명의 길들이 기사님들에게만 보이는 걸까. '급해요, 제발!'라는 한마디만 뱉으면 기사님은 적토마를 모는 관우처럼 도로를 누볐다. 물론 "차가 막히는 걸 어떡해유"하고 속 편히 옆 차선의 차를 끼워주며 주행하는 기사님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요청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 나는 '신속, 정확'을 택시의 사명감처럼 여기며 운행하시는 분들을 존경한다. 덩달아 내 삶도 신속, 정확해진다.

덕분에 기사님이 조금 돌아가는 같아도 목적지에 빨리 도착할 거라는 믿음으로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택시에게 중요한 가치는 요금이 아닌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약속 장소까지 빨리 가기 위해 택시를 탄 거지 싼값에 가려고 피 같은 월급을 지불하지 않았다. 아끼려고 했다면 버스를 탔어야 한다. 나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대명사지만 시간에 있어서는 다르다. 택시비를 아끼려다 약속 장소에 늦어 화난 친구에게 등짝을 얻어맞고 밥값까지 내는 불상사는 피해야 한다.



2019년 4월, 전 세계가 사진 한 장 때문에 들썩였다. 모든 뉴스에 같은 사진이 도배되었다. 사진 속 주인공이 무겁고 잘 안 보이는 데다 아주 멀리 살기 때문이었다. 주인공의 이름은 블랙홀이었다. 게다가 널리고 널린 조그만 블랙홀이 아니라, 태양 질량보다 65억 배나 무겁고 지구로부터 5500만 광년이나 멀리 떨어진 초거대질량 블랙홀이었다.

20190410-78m-800x466.png?m=1554877319&itok=1zSyFN1q EHT 연구진이 찍은 블랙홀 M87의 모습 (c) EHT(Event Horizon Telesc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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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87 촬영에 사용된 망원경 중 하나인 The South Pole Telescope 과 관측소 직원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블랙홀 사진 촬영에 성공한 EHT(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연구팀은 세계 6개 대륙에 흩어져 있는 전파 망원경 8대를 가상으로 연결했다. 덕분에 각기 다른 곳에서 별을 보아도 지구 크기만 한 거대 망원경으로 관측하는 효과를 낼 수 있었다. 망원경의 성능(분해능)은 무려 파리의 카페에서 뉴욕에 있는 신문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정도였다.

문제는 데이터의 양이었다. 좋은 카메라로 찍을수록 사진의 용량을 커진다. 스마트폰의 카메라는 나날이 좋아지지만 남아있는 저장공간은 턱없이 부족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EHT 팀은 단 열흘간 블랙홀을 촬영했지만 데이터는 무려 5PB(페타 바이트)에 달했다. 5PB는 약 5,000,000GB(기가바이트)로 고화질 영화 70만 편에 해당하는 용량이다. 4만여 명이 평생 셀카를 찍는 양과도 같다.

전파 관측소에서 찍은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독일의 연구소로 데이터를 전송해야 했다. 하지만 촬영 데이터가 너무 컸다. 5G 인터넷의 실속도인 1초에 100MB(메가바이트)씩 데이터를 보내도 네 달 가까이 걸린다. 수백 명이 모여서 일하는 EHT 연구진에게 시간은 생명과도 같았다.

고심 끝에 연구진은 결정했다. 데이터가 저장된 500KG의 하드디스크를 몽땅 비행기에 싣고 연구소로 나르기로 한 것이다. 통신을 통해 전송하는 것보다 물리적으로 전달하는 게 빨랐다. 항공료가 수 천만 원 발생했지만, 연구진에게 중요한 건 시간이었다. 덕분에 블랙홀 사진이 더 빨리 우리 곁에 왔다.



시간이 금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 연구던, 택시던 마찬가지다. 전용 도로를 타고 돌아가면 비쌀 것 같아서 국도로 가다가 차가 막히는 바람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돈도 더 많이 낸 적이 있지 않은가. 무조건적인 절약이 주는 큰 손해중 하나는 우습게도 지출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택시 아저씨가 "전용 도로로 갈까요?" 하고 묻는다면 허세를 잔뜩 담아 말해보자.

"뭐든 괜찮으니 빠른 길로 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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