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 한 톨 정도는 괜찮잖아.

<창백한 푸른 점>

by 조승현

부모님의 증언에 따르면 나는 네 살 때부터 하고 싶은걸 못하게 하면 길바닥에 앉아 1시간씩 목에 피가 나도록 우는 애였다. 특히 갖고 싶은걸 안 사주면 몇 시간 동안 뿔이나 생떼를 부렸다고 한다. 내 기억엔 없으니 난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고 박박 우기고 싶지만, 고속도로에서 휴게소를 지나갈 때마다 내 눈치를 보던 아버지의 얼굴은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나의 어릴 적 행패에 복수라도 하듯 명절만 되면 온 가족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조승현 고집 유명했지- 어휴"

"네?"

"인마 너 어렸을 때, 길 가다가 슈퍼 한 번 안 들리면 도로에 누워서 1시간을 굴러다녔어"

"과일 먹다 말고 갑자기 왜 그러세요"

"그니까 잔말 말고 사과 좀 까라고"

"???"


누나에게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해줘'라고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누나는 분명 그 정도였다며 가만히 사과만 먹었다. 그래 놓고는 괜히 한마디 던졌다. "성공하려면 어느 정도 고집은 있어야지." 이건 사과를 깎아줘서 고맙다고 던진 덕담일까, 결국은 성격을 좀 고치라는 걸까?


하긴, 패러다임을 깬 천재 과학자들은 대게 괴짜 거나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1+1=2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1+1=귀요미라며 온 힘을 다해 사고의 틀을 부정하는 일은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고 가정한 아인슈타인이나, 화형이 빈번한 시대에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주장한 갈릴레이만 보아도 모두 조금씩은 미쳐있던 게 아닐까?

그러니까 뉴턴처럼 사과에 머리를 쥐어박히고도 하늘에 매달린 달은 왜 떨어지지 않냐고 의심하는 일은 대단하지만 정신 건강학적으로는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보다는 벽에 매달린 TV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믿고 소파에 누워 리모컨을 드는 것이 이 훨씬 더 쉽고, 훨씬 더 건강한 일인 것이다.

게다가 천재들은 이른바 '똥고집'도 만만찮다. 만약 그들의 생각을 쉽게 포기해왔더라면 그들이 품은 지겨울 정도의 의심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것에 불만과 물음을 쏟아냈기 때문에, 그로 인해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원하는 바를 고집스럽게 관철했기 때문에, 현대 과학은 그들의 집념을 먹고 무럭무럭 자랄 수 있었다.


1990년, <코스모스>의 저자로 유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도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당시 태양계를 떠나고 있던 탐사선 '보이저 1호'의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 지구 사진을 찍자는 것이었다. 그러면 광활한 우주에 떠있는 지구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을 것이라고 칼 세이건은 생각했다.

하지만 NASA의 많은 과학자들이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자칫 태양빛이 민감한 카메라로 들어가면 보이저 1호의 카메라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보이저 1호에게 괜한 위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NASA의 기술 고문이었던 칼 세이건은 '이 미션이 그럼에도 가치 있을 것'이라며 주변을 설득했다. 결국 새로 취임한 NASA의 신임 국장이 결정을 내렸다.


"그래, 그럼 한 번 찍어 보자고!"


1990년 2월 14일, 태양계 밖을 향하던 보이저 1호는 지구 쪽으로 카메라를 돌렸다. 지구에서 약 60억 km나 떨어진 곳에서의 새로운 미션이었다. 찰칵. 지구-태양 거리보다 40배나 먼 곳에서 바라본 지구는 그저 먼지 한 톨에 가까웠다. 보이저 1호는 사진을 지구로 전송했다. 이 사진이 인간이 찍은 천체사진 중 가장 철학적인 천체사진으로 꼽히는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다.

<창백한 푸른 점>, 가운데 보이는 푸른 점이 '지구'다. 2020년, 촬영 30주년을 맞아 NASA가 최신 보정 기술을 활용해 리마스터링 한 버전이다. (c) NASA
(좌)우주를 항해하고 있는 보이저 1호 상상도, <창백한 푸른 점 > 원본 버전 (우)

티끌만 한 지구 사진을 보며 칼 세이건은 그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에서 소감을 밝혔다.


“다시 저 점을 보라. 저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것이 우리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아는 모든 이들, 예전에 삶을 영위했던 모든 인류들이 바로 저기에서 살았다"


장엄한 우주와 좁쌀만 한 지구 사진 속에서 인류는 겸손을 떠올렸다. 너와 나의 다툼이 의미 없음을, 우리의 증오와 오해가 보잘것없음을, 이 모든 것이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만 한 곳에서 이루어졌음을 알게 된 것이다.

사진 속에는 칼 세이건의 고집도 담겨있다. 수억만 리 떨어진 곳에서 지구의 참모습을 찍겠다는 오기 말이다. 고집은 나쁘게 보면 아집이지만 좋게 보면 열정이다. 덕분에 우주에서 인간의 삶을 가늠하는 사진이 탄생했다.

나는 역사에 발자국을 깊게 찍은 과학자처럼 천재도 아니고 세상을 바꾸고 싶지도 않다. 돈을 많이 벌거나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다. 그저 고집을 열정으로 삼아 하고싶은 일을 하며 창백하게 빛나는 행성에서의 소박한 행복을 즐기고 싶다. 고집 좀 줄이라고 욕을 한다면, 적당히 잘 익은 사과를 깎아줄까 한다. 누구를 해치지 않는 아집이라면, 좀 부려도 괜찮다고 믿는다. 어차피 우주에 떠있는 먼지만 한 푸른 행성에서 부리는 고집 한 톨은 그다지 대단한 것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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