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게임인가 다큐인가!

휴식은 비효율적일 때 가장 효과적이다.

by 조승현

잠이 정말 안 올 땐 넷플릭스에서 <당신과 자연의 대결>을 본다. <Man vs Wild>의 후속 편 격인 야생 탈출 다큐멘터리다. 언젠가 당신이 인터넷에서 짤로 봤을 멀끔한 영국 아저씨의 극한 생존기다.

주인공이자 탈출 전문가인 베어 그릴스는 특수부대를 전역했다. 그런 사람이 어째서 전투보다 먹방에 더 큰 재능이 있는지는 미스터리지만 보는 재미가 있다. 내장이 가득한 애벌레를 씹어 먹는 베어, 꿀을 따다 벌에 쏘여 얼굴이 쟁반만 해진 베어, 야생 스컹크를 구워 먹다가 썩은 내에 찡그린 베어, 수분을 섭취하겠다며 코끼리 똥을 짜 먹다가 토하는 베어. 그는 감히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할 것들을 삼키며 말한다. "덕분에 탈출할 에너지를 얻었네요"

게다가 이 프로그램은 어쩌다 오지에 떨어지게 되었는지, 왜 탈출을 하게 되는지 설명도 없다. 그저 헬기에서 베어가 뛰어내리며 방송이 시작된다. 산꼭대기에, 사막에, 어느 날엔 정글에 떨어진다. 그리곤 천연덕스럽게 거미를 산채로 삼키며 "지금은 제 점심일 뿐이죠" 하고 말한다. 그저 생존이다. 사연도 과거도 없다. 매 편마다 낙하산을 짊어 멘 베어가 다른 오지에 떨어질 뿐이다.


우연히 친구와 <당신과 자연의 대결>에 대해 얘기를 하게 됐다. 친구가 정글에 떨어지면 거미를 먹으며 버티겠냐고 물었다. 나는 극구 사양했다. "거미를 먹느니 불곰과 싸우다 죽겠어 ". 친구는 동의했다. 우리는 문명인이니까. 옷과 음식과 집을 삼위일체처럼 떠받들며, 대출을 받아서라도 기어코 소유하는 유물론자니까. 그런 사람들이 거미를 먹으면서 연명할 수는 없으니까. 괜히 섬뜩한 가정에 상상으로 벌레를 입에 넣었다. 에퉤퉤.

8개의 다리로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거미를 삼킬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별로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몇 없을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베어는 왜 저러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아무도 따라 할 수 없는 생존 방법을 진지하게 알려주는 걸까. '야생 탈출'이라는 방송 취지에 비추어본다면 <당신과 자연의 대결>은 지극히 비효율적이다. 일반인은 야생에 고립될 확률을 고사하고 그곳에 가는 것조차 힘들다. 그래도 베어는 낙하산을 짊어 멘다. 또 효율 없는 교육 방송을 시작한다.

<당신과 자연의 대결>을 보며 효율을 떠올린다. 효율적인 면에서 본다면 가장 먼저 사라져야 할 것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천문학이다. 나의 직업이 천문학 강사지만 그것보다 더 나은 답을 찾지 못했다. 아무렴 블랙홀을 만개쯤 발견한다고 해도 닭다리 하나 생기지 않는다. 화성의 산소 비율보다 오늘 시킨 떡볶이의 어묵 비율이 더 중요하고, 빅뱅의 증거보다 지겹도록 우는 윗집 아기의 장난감 취향을 아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 그러니 나는 사랑해마지않는 베어를 비난할 수 없다. 비효율의 세상에 나도 함께 있다.



<당신과 자연의 대결>은 게임 같다. 그의 전작 <Mans vs wild>와 다르게 베어 그릴스를 조종할 수 있다. 중요한 상황마다 화면에서 탈출 방법을 선택한다. 그러면 베어는 순순히 우리의 선택대로 준비물을 가방에 넣거나, 걷는 대신 기어서 얼음 호수를 통과한다. 물론 잘못된 선택을 하면 실컷 고생만 시키고 조난을 당할 수도 있다.

베어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남의 고행을 따뜻한 거실 바닥에 누워 허벅지를 긁적 대며 볼 수 있는 것은 의외로 행복하다. '베어에게 애벌레를 먹여볼까?' 고민하는 것도 흥미롭다. 천역 덕스럽게 고생하는 베어를 보면 힐링이 된다. 불면증에 헤매다가도 스르르 잠에 든다.

가장 비효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내 휴식엔 가장 효율적인 영향을 주었다. 비효율적이라 여겨지는 천문학도 내 삶의 큰 방향이 되었다.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것들도 누군가에게는 매우 중요한 가치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믿는다.

자, 비효율적인 탐험을 가장 열정적으로 떠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