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리_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글을 쓰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멋진 글을 쓰는 적당한 사람보단 적당한 글을 쓰는 멋진 사람. 글은 뭐 그냥저냥이지만 카페에 앉아 사과 모양이 박힌 랩탑 앞에서 쓸거리를 고뇌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머금은 채로 지는 노을에 영감을 받는 모습이고 싶다.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곧장 깨달았다. 글을 쓰는 멋진 사람이 되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 멋진 사람보다는 글을 쓰는 쪽이 몇 배는 어려웠다. 전자는 어떻게든 지갑을 열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무채색 코트에 머플러를 매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킨 후 카페에 앉으면 얼추 내가 상상한 '멋진 모습'에 근접해있었다.
하지만 글은 달랐다. 뭐가 됐든 완결을 지어야 글이었다. 맞춤법은 혁명 같은 맞춤법 검사기에게 맡긴대도 심혈을 기울여 뽑은 많은 문장들이 거리두기를 하고 있었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쓸 이야기가 없었다. 글을 쓰기에 나의 과거는 너무 평범했다. 작가들에게 널려있는 가정사, 고난, 그 흔한 IMF도 나에겐 없었다. 드라마같은 인생은 무슨, 그저 드라마나 보며 살아온 내 삶이 원망스럽다.
그러고 보면 글을 뚝딱뚝딱 잘 쓰는 사람은 두 가지 부류가 아닐까. 천재적인 소질이 있거나, 사고를 몰고 다니거나. 천재적인 작가들은 머릿속에 글쓰기 회로 같은 것이 있을 거고, '하지만'과 '그러나' 중 뭐가 더 나을까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거다. 길을 가다 만난 고양이의 하품을 보고 삶의 철학과 안빈낙도를 글로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 나는 아니다.
내게 글쓰기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사건이 없었을까 고민하고, 더 재밌게 보이기 위해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게임 폐인과 같은 몰골로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재미있는 문장이 생각나면 히죽 웃고 글 안에 넣지만, 어설픈 결말에 한탄하며 도대체 이따위 글을 누가 썼을까 자책하는 것에 가깝다. 결국 복권처럼 쓰기 좋은 사건이 터질 때까지 기다리고 실망하기를 반복한다. 무엇을 써야 하는지 보다 어려운 문제가 또 있을까?
고수리 작가의 브런치 북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는 그녀가 가진 특유의 음울한 긍정으로 채워진 에세이집이다. 그녀는 그곳에 자신의 이야기를 남겼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을 때도, 책을 읽다가 우연히 마음에 닿는 글귀를 발견했을 때도, 잠에 들지 못한 날이 떠올랐을 때도 글을 남겼다. 특별하다기 보단 솔직한 이야기였다.
글 속의 그녀는 어두웠고, 때론 염치가 없었으며, 이따금 슬프고 안쓰러웠다. 모두 그녀의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힘이 된다. 고수리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바깥세상에 꺼내어 놓으며 자신을, 그리고 주변을 위로한다. 외롭다, 힘들다 그러는 사이에도 우리는 여기까지 흘러왔다.
우리 모두에게는 고유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그녀가 슬로건처럼 쓰는 말이다. 그 말은 응원이고, 격려다.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 하긴, 무언가를 쓰겠다면 가장 먼저 만나야 할 사람은 남보단 나일 것이다. 나는 나를 먼저 들여다봐야 했다.
가치 있게 살고 싶어서 글을 쓴다는 그녀. 쓰면서 살고 싶은 사람에게 고수리 작가의 브런치 북을 추천한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마음에 차오르는 사람은 당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