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싶어하는 것을 칭찬해주세요
PC방 전등이 흔들거렸다. 우정은 PC방에서 쌓는 것이라며 열심히 출근 도장을 찍던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건너편에 앉은 친구가 소리쳤다.
"조승현 또 죽었어?"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한 번에 집을 수도 없는 수십 개의 캐릭터를 클릭하고 컨트롤하도록 게임을 만든 개발자들의 잘못이다. 일어나면 또 죽고, 회색 화면으로 변해 또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게임 탓이다. 모니터 앞에 앉은 나는 신나게 뛰는 제주도의 고등어 보단 돌하르방에 가까웠다. 빈 틈이 많은 회색의 딱딱한 돌덩어리가 되어 모니터만 바라보았다.
나는 게임을 잘하고 싶었지만, 게임 센스라고는 국밥집의 와이파이 같은 존재다. 찾으래야 찾을 수가 없다. 게임 하나만 잘해도 임금이 되는 남자들의 세계에서 나는 언제나 양반집 마당을 쓸었다.
학생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었을 때 나는 안도했다. 더 이상 컴퓨터 게임으로 사람들과 만날 일은 없을 테니까. 민망한 회색 화면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데 웬걸 세대가 변해도 단단히 변했다. 보물 찾기나 피구쯤으로 끝났어야 하는 워크숍에 게임이 등장했다. 그것도 새내기 직원들에 요청에 의해서였다.
"같이 한 게임하면 또 화목해지고 그러잖아요!"
천문대 직원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단합이 되지 않겠냐면서. 부질없는 짓이다. 게임을 한다고 화목해질 리가. 상대편을 압살 할 때는 보너스를 받을 때처럼 덩실덩실 춤을 춰대겠지만, 결국 나 때문에 패배하고 돌아서면 눈치란 눈치는 다 끌어 모아서 내 앞에 쌓아 놓을 게 뻔하다. 그리곤 속삭이겠지. '대장님이랑 게임하지 말자니까.'
피시방에서 나오자 게임을 몇 번 해본 적 없는 여사원이 말했다. "저한테도 안되시네요." 그 비웃음 섞인 말투를 뱉을 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게임 못해도 별 보는데 아무 지장 없거든?"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이왕이면 좀 잘하고 싶었다.
사람의 마음을 사려면 잘하는 것보다 잘하고 싶어 하는 것을 칭찬해야 한다. 농구의 황제 마이클 조던도 "야구 참 잘하시네요"라는 칭찬을 좋아했다. 달리기의 전설 우사인 볼트 역시 변두리 리그까지 가서 축구 선수가 되었다. 사람은 잘하고 싶어 하는 것에 더 욕심이 난다.
물론 그렇다고 나에게 "게임 참 잘하시네요" 하고 칭찬해봤자 나는 하나도 즐겁지 않다. 잘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칭찬은 과도하면 역효과를 부르기 마련이다. 그러니 사람에게 칭찬할 때는 두 가지면 된다. 잘하고 싶어 하는 것을, 적당한 정도로 칭찬하기.
그러니 혹시라도 제가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본다면 저에겐 이런 정도의 칭찬을 부탁합니다. "기대보다 훨씬 잘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