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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Aug 30. 2021

인생도 과학처럼 합리적이었으면 좋겠다.

  어젯밤에도 기어코 주문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배달 어플로 가장 빠르게 배달되는 닭발 세트를 시켰다. 마요네즈가 듬뿍 뿌려진 주먹밥과 달콤한 요구르트까지 들어있었다. 밤 12시, 늦은 퇴근을 했지만 아직도 일이 산더미처럼 남았을 때, 피곤함이 실컷 두들겨 팅팅 부은 눈을 치켜뜨고 남은 일을 해야 할 때, 야식을 먹어야만 생존하는 비운의 주인공처럼 배달 어플의 주문 버튼을 누른다. 그리곤 조용히 자고 있는 와이프에게 가서 속삭인다.

 "나 오늘 너무 피곤한데, 맥주 한 캔만 해도 돼?"


 결혼을 앞둔 남성들에게 고한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와 사는 대신 각종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다. 맥주 한 캔을 마실 때도, 바지가 해져서 새로 사야 할 때도, 친구를 만나러 갈 때도 내무부장관인 와이프의 결재가 필요하다. 하지만 수직적 시스템이란 게 그렇듯 종종 알 수 없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안돼, 이번 주에 술 너무 많이 마셨어"

"무슨 소리야, 이번 주에 수요일에 한 캔 마신 게 전부인데!"


'자주'라는 단어가 상대적인 것은 맞지만, 일주일의 두 번은 관습적으로 늘 허용되던 빈도였다. 나는 이번이 이번 주에 마시는 두 번째 술이라며 항변했다. 정확한 데이터를 제시했지만 결재자의 목소리는 한껏 더 엄중해졌다. 안된다니까. 나는 풀이 죽이 죽은 채로(사실 삐진 채로) 돌아섰다.

 머리가 아팠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천문학자였고, 이과를 거쳐 대학도 이공계열을 나왔다. 직장도 천문대이니 완벽한 이과인이라고 할 수 있다. x가 들어가면 y로 나오는 논리의 세상에서 살아온 나는 비합리적인 거절에 완전히 맥이 빠져버렸다. 제4차 산업 혁명을 바라보는 이때, 어찌하여 감성적인 이유로 주 2회라는 합리적인 제안이 거부된단 말인가. 나는 과학의 아들로서 비논리적인 결정에 절대 동의할 수가 없다. 우리의 인생도 과학처럼 더 합리적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과학을 사랑하고 현대 과학의 집약체인 우주 탐험은 더 사랑한다. 인간은 1969년 달에 발자국을 찍기 시작한 이래로 총 여섯 번의 달 착륙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그것도 모자라 우주에 국제 우주 정거장이라는 축구장만 한 기지를 띄워 놓고 사람을 거주시키고 있다. 이제 목표는 화성이다.

 하지만 인류의 우주 탐사를 보고 있자면 의문이 하나 생긴다. 꼭 '인간'이 우주로 가야 했을까? 글쎄다. 다른 건 몰라도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인간 대신 로봇을 보내는 게 훨씬 싸게 먹힌다. 보통, 사람이 한 번 우주에 갔다 올 비용이면 로봇을 30번 넘게 우주로 보낼 수 있다. 로봇은 식사나 물을 요구하지 않는다. 복잡한 생명유지 장치나 우주복도 필요 없다. 윤활유만 듬뿍 발라주면 부드러운 몸짓으로 보답한다. 로봇은 더럽다고 불평하지 않으며 괴상한 바이러스를 감염되어 생사를 가를 걱정도 없다.

 가장 좋은 점은 탐사를 마치고 다시 지구로 다시 데려오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월급에 위험수당까지 얹어 줘야 하는 인간과는 사뭇 다르다. 그러니 경제적으로 우주를 탐구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인간 1명 대신 로봇을 30대 보내는 게 낫다.


 안전은 또 어떠한가.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는 발사 직후에 폭발했다. 탑승해있던 우주인 7명은 전원 사망했다. 2003년에는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착륙 도중 폭발해 우주인 7명이 모두 사망했다. 우주왕복선이 135회 운용되는 동안 끔찍한 사고가 두 번이나 난 것이다. 수치로는 임무 수행 중 사망률이 1.5%에 이른다. 당신에게 묻는다. 오늘 문 밖을 나서면 1.5%의 확률로 코로나19에 감염된다. 당신은 오늘 집을 나설 것인가? 아마도 고민 없이 배달앱을 켜며 자가 격리 모드로 돌입할 것이다. 하물며 우주 탐사의 경우엔 사망률이 1.5%다. 유인 우주 탐사는 안전과는 거리가 멀다.

 다시 말하면 인류의 우주 탐사는 가슴 벅찬 일이지만 인간이 직접 우주로 가는 일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 사실 아주 비효율적이다.


(좌) 이륙 이후 폭발한 챌린저호 (우) 착륙 도중 폭발한 컬롬비아호

 그래도 인간은 우주로 향한다. 로봇을 보내 환경을 충분히 파악한 뒤 기어코 그곳에 다다른다. 효율과 경제성, 안전을 깡그리 무시하면서도 로켓에 탑승한다. 탐험 정신으로 일컬어지지만 결국은 감성인 것이다. 인류란 눈 덮인 에베레스트 산을 기어코 두 발로 오르고, 캄캄한 바닷속을 산소통 하나로 헤엄치며, 자동차를 두고 굳이 42.195km를 달려 완주하는 족속이지 않은가. 인류는 결국 화성에 첫발을 내딛게 될 것이다.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주인들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우주 탐사의 지평을 여는 것으로 증명하고 있다. 과학도 효율이나 논리 대신 감성이 우선되기도 한다.



 코로나19와의 지루한 싸움이 계속되던 봄이었다. 나는 벚꽃 구경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 완전히 지치고 말았다. 어쩌면 벚꽃보다 벗이 더 그리웠는지 모르겠다. 친구들과의 만남을 근절되자 나는 로봇청소기처럼 집 바닥을 쓸고 다니며 괴상한 소리를 냈다. 어어어 억. 와이프는 바퀴가 한쪽 고장 난 것처럼 삐걱대는 내 상태를 보더니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곤 AS수리 기사처럼 정확한 수리 지침을 내어놓았다.


 "그러지 말고 용운 오빠네 집에서 하루 자고 와"

"응? 왜?"

"그냥, 가서 술도 한 잔 하고 오래간만에 스트레스 좀 풀어"


 결혼의 좋은 점은 이런 것이다. 가끔은 이유와 설명이 없어도 된다. 논리적이지 않아도 이해받을 수 있다. 어떤 우매한 작가는 우리의 인생도 과학처럼 합리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그 사람은 자기 말이 더 논리적이라며 우기다 매번 와이프에게 차가운 눈초리나 받는 어리석을 삶을 살고 있을게 분명하다. 그런 사람이 과학자를 했다간 인류는 달은커녕 지금도 지구 주위에 드론이나 쏘면서 '역시 드론이 안전해' 하며 자위하고 있을 것이다. 역시, 내가 과학자가 되지 못한 덕분에 인류는 우주로 조금 더 쉽게 진출했다.

 오늘부터라도 재수 없는 이과생에서 감성적인 사람이 되어보고자 한다. 그러면 일주일에 두 번 맥주 한 캔을 허락받은 일도 분명 수월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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