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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Aug 03. 2021

날씨를 본다.

날씨 예보 보면서 허세부리기

 날씨 예보 어플을 켰다. 나의 아침은 언제나 기상청과 함께한다. 기상청은 오늘 밤에 비가 내릴거라며 서글픈 미소를 날린다. 하지만 그 말이 꼭 싸운 뒤 괜찮다는 연인의 말처럼 들린다. 그 말을 고지 곧대로 믿어도 되는지, 혹시 맑아지지는 않을지 눈치 싸움을 시작하지만 답은 없다. 결국은 그 시간이 되어봐야 날씨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천문대 강사로써 날씨 예보가 맞지 않으면 무척 당황스럽다. 하지만 기상청에게 볼멘소리를 하는 일은 점점 더 조심 스러지고 있다. 지인들이 기상청에 꽤 다니고 있는 데다, 반쯤 넋이 나간 듯 오락가락하는 지구의 날씨를 어쩌겠나 싶어서다. 기상 이변의 주범은 지구 온난화다. 그에 관해서는 나도 할 말이 없다. 배달 음식 주문에도 학위가 있다면 석사 학위는 거뜬히 받았을 나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배달 주문의 위용은 석사를 넘어 박사에 이르렀으니, 내가 쌓아 올린 일회용기들은 지구의 온난화에 채찍질을 했을게 분명하다. 내 먹성으로 보자면 앞으로도 기상청의 근무 난이도는 점차 어려워질 것 같다.

 어쨌든 날씨를 본다. 그것도 밤 날씨만 골라서 본다. 천문대 강사에게 필요한 건 역시 맑은 밤 날씨다. 맑은 낮 날씨는 천문대 강사에게 집 앞의 길고양이와 같은 것이다. 내게 와주면 좋고 아니어도 크게 상관이 없다. 날씨의 신이 있다면 꼭 부탁하고 싶다. 구름 한 점 없이 밝고, 습하지 않으며, 선선한 날씨는 제발 밤에 주세요. 왜냐고요? 별보기에 좋거든요. 사실 다 밤하늘을 보자고 하는 일이니까요.


멋진 클라이네샤이덱의 풍경 (c)스위스 관광청

 내가 가장 충격을 받으며 본 밤하늘은 당연히 스위스 산자락에서 본 밤하늘이다. 두 달간 유럽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났을 때 알프스 산자락에 묵었다. 클라이네 샤이덱이라는 2000m 고지에 있는 마을이었다. 클라이네 샤이덱은 신비로운 색을 가진 동네다. 새파란 하늘과 흰 눈에 덮인 산봉우리, 초록빛 잔디를 한 시야에 만날 수 있었다.

 클라이네 샤이덱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오후였다. 당시 나는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는데, 그 말은 내 꼴이 꾀죄죄한 범죄자 같았다는 뜻이다. 진흙탕에 구른 것 같이 얼룩덜룩 타버린 피부와 먼지를 뒤집어쓴 머리는 당장에 목욕 치료가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내 관심사는 영 다른 데에 있었다. 나는 삐걱대는 자전거를 세워놓고 숙소에 뛰어들어가 물었다.


"기상청 예보를 보니 밤에 날씨가 안 좋다던데, 그럼 오늘 별을 못 보나요?"

"그렇죠. 기상청이 맞다면 말이에요. 하지만, 여긴 산이라고요. 기상청의 예보는 그냥 그들의 생각이에요, 산의 날씨는 산이 정해요."

  정말 그랬다. 산의 날씨는 10분마다 변했다. 산신령이 기운을 모으듯 산안개가 피어오르다가도 갑자기 쨍하니 무지막지한 햇살이 비췄다. 날씨 어플에는 쨍하니 맑다고 표시되어있지만 현실에선 비가 쏟아지고 있는 이상한 동네 었다. 별을 볼 수 있대도 이런 곳에서는 진득한 관측은 어려울 것이었다. 나는 별 대신 몸을 더 잘 살피기로 하고 일찍 잠에 들었다. 그러다 비가 그쳤나 싶어 밤 12시쯤 깨어 밖으로 나와봤다.

 그 밤하늘을 처음 올려다봤을 때의 광경을 아직도 기억한다. 마치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색모래를 하늘에 쏟아놓은 듯이 별들이 많았다. 나는 경악했다. 이건 한국의 천문대에서 보던, 흐릿한 밤하늘 하고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별들이 "스위스에는 힘을 좀 더 내서 빛을 보내자" 하는 것도 아닐 텐데 별들이 훨씬 더 밝았다. 캐나다의 얼음 호수 위에서 오로라를 만났을 때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황홀했는데, 스위스의 밤하늘이 딱 그랬다. 한옥의 아름다움을 보려면 한국에 와야 하듯이 별을 보려면 스위스에 와야 하는구나. 감탄했다.

 


 그 후 몇 년 뒤 다시 스위스에 갔다. 함께 일하는 천문대 동료들과 함께 간 여행이었다. 은하수가 정말 하늘에 강처럼 흐른다니까,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청정국에서 별 안 볼 거야? 동료들은 마치 설득되기로 약속된 사람들처럼 스위스에 가자는 내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하여 자그마치 7명이 함께 스위스에 가게 되었다.

  도착한 곳은 1600m 고지에 위치한 동화 같은 마을 뮈렌이었다. 나는 클라이네 샤이덱에서의 별빛을 떠올리며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해가 지고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그치자마자 밖으로 뛰쳐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은 아름다웠다. 별이 참 많았고 하늘도 깨끗했다. 그러나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본 밤하늘은 아니었다. 은하수는 흐릿했다. 별빛도 덜 밝았다. 나는 스위스에게 속은 것만 같았다. 문자 그대로 감격하여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던 클라이네 샤이덱에서의 밤을 부정당한 것 같았다. 이러면 안 된다. 스위스의 밤하늘이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실망감이 차오른 나는 별빛에 눈을 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봉우리는 눈으로 덮여 희고 잔디는 생글 맞게 푸릇했다. 분명 내가 알고 있는 스위스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다시 7년 전의 스위스를 떠올리며 별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힘차게 빛을 내고 있다. 흐릿했지만 은하수도 여전히 우리나라에선 만날 수 없을 만큼 선명했다. 우두커니 생각했다. 어쩌면 스위스의 밤하늘은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나는 변했다. 천문학과 학생이었던 나는 천문대장이 되었다. 나이도 먹었다. 미국, 몽골, 캐나다, 유럽과 동남아 곳곳을 돌아다니며 빼어나게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았다. 어쩌면 변한 것은 나의 기대치였을지도 모른다.

 기대는 만족을 갉아먹는다.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를 강타한 싸이의 다음 곡을 들었을 때에도, 무더위에 1시간을 기다려 맛있다고 소문난 닭강정을 입에 물었을 때에도, 첫인상이 무척 선했던 분과 일하게 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에도 나는 실망했다. 그것은 아마도 기대하며 세운 수많은 나의 기준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의 기준보다 더 낫길 바라며 현실을 짓누르고 짓눌렀다. 행복은 성큼 다가오다가도 기대에 질려 백텀블링을 해버린다. 어설픈 기대는 실망의 씨앗이 되어 눈부신 스위스의 밤하늘을 앗아갔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보던 기상청 예보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가만히 생각했다. 내가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것은 아닐까.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쉽다면 굳이 '청'까지 만들어 수천 명의 사람들을 뽑고 훈련시키고 기상 인공위성까지 우주에 쏘아 올리며 세금을 쏟아붓지는 않았겠지. 암암, 어려운 일이고 말고. 하지만 이해도 잠시, 불만이 삐쭉 싹을 틔운다. 그래도 기상청이라면 날씨 정도는 맞춰야 하는 것이 아닐까. 머지않아 예보가 틀리는 일은 없어지지 않을까? 기대를 내려놓는 일은 역시 어렵다.

 기상청은 오늘 밤에도 비가 온다고 예보했다. 나는 별을 볼 수 있다는 기대을 내려놓았다. 그렇지만 기상청 예보가 틀린다면, 흐리지만 구름 사이로라도 몇 개의 별빛이 내려온다면, 나와 천문대를 찾은 아이들은 환호하며 지구에 다가온 반짝임을 맞이할 것이다. 채근하지 않을수록 더 간결한 행복이 온다는 걸 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일수록 더 바라지 않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뮈렌에서의 밤하늘과 별똥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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