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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Jul 26. 2021

주차는 어려워

주차하면서허세 부리기

네이버 지식in에 질문이 올라왔다.

[남자가 멋있어 보일 때는 언제인가요?]

답변은 간결했다

[주차증 빼서 입에 물고 후진할 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주차증 따위를 물고 전진하기 위해 만든 차를 거꾸로 모는 것이 멋지단 말인가. 주차증에는 발암 물질도 있다던데, 암 따위에 신경 쓰지 않고 주차증을 입에 물어버리는 박력에 반하는 걸까. 내가 여자라면 그것보다는 플래티늄 등급의 신용카드를 물고 백화점을 향해 서서히 전진하는 게 더 매력적일 것 같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후진 주차는 남성의 미션이 되어버렸다. 오래전,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육성재도 주차증을 섹시하게 물고 가상 부인인 조이 앞에서 폭풍 후진을 선보였다. 조이는 손뼉을 치며 환하게 웃었다. 물론 시선은 육성재의 얼굴에 향해 있었기 때문에 후진 때문인지 액셀레이터를 밟은 사람이 육성재여서 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한 것은 분명했다. (물론 일일드라마 '하이킥 3'에서는 박하선의 마음을 얻으려 서지석이 주차증을 물고 후진으로 지하 3층까지 내려갔지만 실패했다)

 


 2010년은 기록적인 해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주차가 펼쳐진 해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로켓 기업의 선두 주자인 SPACE-X는 팰컨9 로켓을 우주로 발사한 후 그대로 후진해 지상에 안전하게 주차하는 데 성공했다. 이 주차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까지의 우주 로켓 생태계를 완전히 박살 내버렸다.

 로켓을 우주로 가는 값비싼 차로 생각해보자. 초기의 로켓은 일회용 었다. 한 번 발사한 후 버려졌다. 룰루 랄라 휴가를 보내겠다면서 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바닷가에 밀어 넣는 식이다. 다행히 운전수는 해운대 해수욕장에 안착했지만 말이다. 한 번 더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방법이 없다. 차를 새로 사야 한다. 

 하물며 NASA의 달 탐사 미션인 아폴로 프로젝트에 사용되었던 새턴 V 로켓의 1회 발사 비용은 1조 5000억 원에 달했다. 1조 5천억 원이라... 너무 뜬구름 같은 금액이라 덧붙이자면, 머리숱이 부족한 나의 절친 S가 탈모 극복보다 더 간절히 바라는 로또 복권 1등에 750번 당첨되어야 하는 금액이다. 모든 사람들이 기적처럼 바라는 그 순간(X 750번)을 우주로 튀어 오르는 커다란 모나미 볼펜이 집어삼키는 것이다. 강대국들이라고 해도 블랙홀처럼 예산을 흡수하는 비싼 로켓을 계속 발사할 수는 없었다.

 차비를 좀 아껴보자며 만든 것이 미국의 '우주 왕복선'이다. 우주인이 탑승하는 비행체를 재활용하며 비용 절감을 노렸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막대한 수리비와 시설비가 발목을 잡았다. 작은 부속품에 손상이라도 갔을까 싶어 더 꼼꼼히 수리해야 했고, 재활용을 하다 보니 사고 위험도 더 높았다. 따져보니 우주 왕복선의 발사 비용은 일회용 로켓과 별 차이가 없었다. 결국 우주 왕복선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팰컨9 로켓의 후진 착지 영상, 좌측은 바다 우측은 지상에 착륙한 모습이다. (C)SPACE-X

 

그런 어지러운 로켓 시장에 영웅이 등장한 것이다. SPACE-X의 팰컨9 로켓은 최신 자동차의 주차 옵션처럼 원하는 위치에 자동으로 주차된다. 발사한 모양을 되감듯 그대로 올라갔다 그대로 후진으로 내려온다. 다시 정상적으로 내려왔다는 것은 시스템이 무난하게 작동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연히 손상도 적다. 우주 왕복선과는 다르게 로켓의 엔진까지 재사용하다 보니 가격도 드라마틱하게 싸졌다. 우주 왕복선을 한 번 발사할 비용이면 팰컨9은 30번이나 발사할 수 있다.

 팰컨9의 첫 발사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우주 항공분야의 사업은 많은 혁신적인 발전을 이뤘다. SPACE-X사는 팰컨 9인은 물론 그보다 3배나 더 무거운 짐을 나를 수 있는 팰컨 헤비 로켓까지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물론 후진 주차 옵션도 탑재되어 있다. 블루 오리진(아마존의 창립자 조프 베이조스가 설립한 우주 로켓 기업) 역시 후진 주차 기능을 탑재한 뉴 셰퍼드 로켓을 개발했다. 블루 오리진은 비용이 많이 절감된 뉴 셰퍼드 로켓을 이용해 우주 관광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실제로 지난 7월 20일, 블루 오리진의 대표 조프 베이조스는 뉴 셰퍼드를 타고 직접 우주에 다녀왔다. 우주여행의 포문을 연 것이다. 앞으로 판매될 우주여행 티켓 가격은 아직 미정이지만 전문가들은 1인당 약 2억 5000만 원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다시 한번 1조 5000억 원과 비교해보자면, 2억 5000만 원쯤은 이 세계에선 정말 껌값이다. 이게 다 후진 덕분이다.


블루 오리진의 뉴 셰퍼드 로켓, 좌측은 발사 우측은 착지 영상이다 (C)블루 오리진

 인간에게 후진은 원래 어려운 것이다. 눈은 우리 얼굴 앞쪽에만 있다. 뒤통수는 시커먼 머리카락으로 덥수룩하다. 우리의 생김새는 뒤보단 앞에 더 집중하며 살아온 인류의 진화론적인 결론이다. 인간은 원래 직진하도록 발달해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손바닥 만한 거울을 보며 옆 차와의 간격을 재고,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리면 왼쪽으로 회전하는 자동차를 컨트롤해, 정확하게 후진하며 주차 라인에 안착시키는 기술은 수준 높은 인류의 지능과 끈기를 나타낸다. 

 정글처럼 두서없고 위태로운 주차장에, 차 댈 곳이 한 칸이라도 보이면 보조석 쪽으로 내려야 할지라도 하이에나 같이 달려들어, 차 문에 뱃살을 짓이기며 빠져나와야 하는 좁은 공간에도 완벽하게 주차를 해내는 주차 기술자들. 덕분에 우리는 5000만 명이나 사는 좁은 땅덩이에도 2500만 대의 차들을 세워두며 살고 있다. 송곳 같은 주차 기술이 없다면 주차 공간을 더 마련하느라 아파트의 관리비는 물론 한 시간에 커피 한잔 값을 삼키는 주차장 요금도 모두 오를 것이다. 그러니 자신은 주차를 잘한다며 허세 가득하게 어깨를 으쓱대는 사람도 조금은 기특하게 봐줄 일이다. 주차는 간접적이지만 우리의 지갑을 지켜준다.


 와이프는 내가 한 방에 주차를 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했다. 나는 로켓을 지상에 한 방에 주차시키는 로켓 공학자들이 멋지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니까.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은 근사한 일이니까. 주차는 우리의 지갑은 물론 마음까지 사로잡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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