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날 밤에도 가짜를 사냥하고 있었다.
샤를 메시에, 그는 약 300년 전을 주름잡던 프랑스의 혜성 전문가다. 우주에 떠도는 얼음 덩어리인 혜성을 찾아내는 게 그의 직업이었다. 하지만 혜성을 찾는 일은 마치 예능 <히든 싱어>에서 모창 능력자들 가운데 원조 가수를 찾아내는 일과 같다. 밤하늘에는 혜성과 닮은 천체들이 별만큼이나 널려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모사품들 사이에서 진짜 혜성을 골라내는 게 메시에의 일이었다.
혜성 찾는데 도사였던 메시에도 숱한 좌절을 겪었다. 성단(별들의 모임)을 혜성으로 착각해 민망한 쾌재를 부른다거나, 아내의 병간호를 하던 와중에 새로운 혜성을 발견하여 학계에 발표했지만 성운(우주의 가스)으로 밝혀져 망신을 당한 적도 있다. 내가 메시에였다면 망원경을 집어던지며 외쳤을 거다. "꼭 그렇게, 비슷하게 생겼어야, 속이 후련했냐?"
하지만 역사에 남은 사람은 달랐다. 메시에는 망원경을 집어던지는 대신 노트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혜성과 닮은 천체를 모조리 정리하기 시작했다. 진짜 혜성을 가려내기 위해 혜성처럼 보이는 가짜를 미리 찾아놓기로 한 것이다. 진짜를 가려내기 위해 가짜를 먼저 걸러낸다니, 멋지다. 하긴 우리도 <히든 싱어>에서 진짜 가수를 찾기 위해 일단 영 아니다 싶은 가수부터 제외시켜놓지 않는가. 매일 밤 그는 혜성 대신 가짜를 사냥했다. 무려 20년 동안이나.
나도 1년에 한두 번쯤 메시에와 비슷한 일을 한다. 배가 고파 설레는 마음으로 냉장고를 열었는데 정체모를 녀석들이 냉장고를 점령했을 때 그렇다. 멀쩡한 음식을 먹기 위해선 나도 메시에처럼 가짜들 사이에서 진짜 음식을 찾아야 한다. 냉장고는 잠깐 한눈만 팔아도 시공간을 초월한 우주가 된다. 유통기한이 1년쯤 지난 치즈가 나타난다거나, 녹아버린(?) 삼겹살이 튀어나온다.
안다. 문제는 나에게 있다. 나는 닭발을 배달시켜 먹으며 짜릿함을 느끼는 인간이고, 다음날에도 그 쾌락이 계속되길 원한다. 그러한 연유로 닭발님은 냉장고 안에 고이 모셔진다. 하지만 다음날에 따끈한 치느님이 강림하시며 식어버린 닭발은 찬밥 신세가 된다. 다음 날은 삼겹살, 그다음 날은 라면... 이렇게 며칠 신선한(?) 야식을 영접하다 보면, 냉장고는 어느새 다시 부활할 날을 기다리는 음식들의 집단 거주지가 되어있다. 문득 '아차, 닭발이 있었지'하고 냉장고를 도굴하듯 파내면 퀴퀴한 냉장고 냄새를 뿜는 빨간 닭발묵이 튀어나온다. 별로다.
그렇다. 세상에는 냉장고 냄새라는 게 존재한다. 향이라고 부르긴 너무 고급스러운 것 같고, 악취라고 하기엔 미안하다. 하지만 분명 냉장고에서는 오래된 김치 항아리 냄새 같은 게 난다. 특히 달달한 음식에 그런 냄새가 배면 절망스럽다. 달달한 치즈케이크가 묵은지 향 케이크로 변해있으면 냉장고를 통째로 세탁기에 넣어버리고 싶다.
더구나 그 냄새를 머금은 음식들은 십중팔구는 상했거나 망가졌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아내는 일은 지뢰 찾기 게임처럼 스릴 있지만 재미는 하나도 없다. 실패했다간 벌칙으로 장염을 얻는다. 그 말은 즉슨 2주간 맹맹한 흰 죽 하고만 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미 죽과 성향 차이를 느껴 완전 결별을 결심한 나다. 무색무취에다 노매력 덩어리인 흰 죽과의 재결합은 없어야 한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는 방법은 하나다. 냉장고 청소를 해야 한다. 일단 더 이상 음식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들은 다 뺀다. 돌멩이처럼 변한 계란, 자연 발효된 우유, 김치향 나는 케이크와 냉장고 맛 단팥빵까지 전부. 정체모를 붉은 얼룩들도 닦아낸다. '티끌모아 태산'의 자세로 배달 음식이 올 때마다 쌓여 기어코 냉장고를 점령해버린 콜라도 다 뺀다. 집안 청소할 때 콜라를 사용하면 슈퍼맨이 따로 없다지만, 냉장고를 청소할 때는 그놈이 주범이다.
한 껏 걷어내고 났더니 냉장고 안에 남은 거라곤 김치통 3개와 치즈가 전부다. 그래도 만족한다. 이것들은 모두 먹어도 된다. 아프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김치통 중엔 장모님이 주신 파김치도 숨어 있었다. 감동적이다.
짜장 라면을 끓였다. 완성된 짜장라면 위에는 치즈를 얹고, 접시를 하나 꺼내 파김치도 한주먹 담았다. 그 뒤는 말해서 무엇하랴. 나는 천국을 보았다. 낙원은 가까이에 있다. 무수히 많은 가짜들을 걷어내고 나니 진짜가 나타났다. 메시에가 혜성을 발견하며 느낀 감격도 이만했을까?
혜성처럼 보이는 천체를 무려 103개나 찾은 메시에는 그 천체들을 목록으로 정리해 배포했다. 이를 메시에 목록이라고 한다. 2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별 애호가들에게 가장 많이 쓰는 천체 목록이다. 당신이 어딘가에서 들어봤을 천체들의 이름(M1, M31, M45... 등등)에 포함되어있는 M이 메시에를 뜻한다.
혜성과 혼동되는 천체들을 정리한 메시에는 결국 최고의 혜성 헌터가 되었다. 기존의 15개를 포함해 21개의 혜성을 찾아내며 왕실로부터 "혜성 사냥꾼" 칭호를 수여받았다. 가짜를 걷어내자 메시에는 '진짜'가 되었다.
냉장고 청소도 진짜가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단순히 먹성은 좋지만 게으른 과거의 나와 싸우는 과정이 아니다. 널려진 불안을 치우는 일이다. 흐릿한 건강을 닦아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냉장고 깊은 골짜기 안쪽 어디에서 보물 같은 묵은지를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것이 혜성을 발견한 메시에의 희열만큼이나 찐 행복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