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악을 좋아하시나요?
나는 알엔비에 반쯤 미쳐있다. RnB를 부르며 다소 부담스러운 나의 소울을 내보이는 일은 3년 전쯤부터 그만뒀지만, 지금도 새벽만 되면 기꺼이 RnB 음악을 재생한다.
특히 퇴근 후 위스키를 한 잔을 따라 놓고 노란 불빛 아래 기대어 듣기에는 알엔비만 한 게 없다. 그 분위기에 발라드는 너무 처지고, 아이돌 음악은 너무 경쾌하고, 팝은 하루를 새로 시작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플레이리스트에서 칠(chill)한 분위기에 알엔비를 누를 수밖에 없죠.
말할 것도 없지만 스피커가 고급이면 고급일수록 음악의 맛이 깊고 진하다. 둠칫 둠칫 마음을 흔드는 베이스와 부드럽게 감싸는 음향이 노래에 매끈한 물광 메이컵을 입힌다. 이따금 스피커가 끝내주는 친구 차에서 음악을 들으면 화들짝 놀라곤 한다. '이 노래가 이렇게 힙했나?'
이것은 상급의 위스키를 종이컵에 따라주느냐 명품 크리스털 잔에 따라주느냐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위스키는 잔을 쥔 허세감은 다를지라도 어느 컵이던 맛은 일품이다. 하지만 스피커는 음악을 실제로 바꿔버린다. 좋은 스피커는 음악에 고운 칭찬을 듬뿍 얹고, 싸구려 스피커는 음악에 가혹한 체벌을 가하는 것 같다.
메마른 추위가 이어지는 어느 겨울이었다. 취미로 작곡을 하는 친한 동생 P가 뜬금없이 전자레인지 만한 박스를 내밀었다. 갈색 우드톤이 매력적인 스피커였다. "우연히 괜찮은 스피커를 알게 되어서요". P는 오다 주었다는 듯이 시크하게 선물을 건넸다. "진짜야? 이걸 선물로 준다고? 갑자기?" 깜짝 선물이 의아하기도 했지만 솟아오르는 광대를 기꺼이 내보이며 말했다. "땡큐 브로"
나는 반쯤 날아가듯 집으로 돌아왔다. 방에 뛰어 들어가 쓰고 있던 2만 5천 원짜리 손바닥만 한 스피커를 냅다 침대로 던졌다. 대신 그 자리에 P가 건넨 스피커를 올려두었다. 마음이 급했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과 스피커를 블루투스 모드로 연결했다. 가쁜 숨을 참으며 John Legend의 Overload를 재생했다. 스피커가 두둠칫 울리기 시작했다. 존 전설 형님의 목소리가 들리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완벽하게 균형 잡힌 음향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허름한 자취방이 뉴욕 맨해튼 거리에 있는 고급 bar로 변해있었다. 때묻은 침대와 책이 삐뚤빼뚤 꽂힌 책장, 먼지가 수북한 전자 피아노까지 모두 느낌 있는 인테리어 소품처럼 보였다. 스피커 하나 덕분이었다. 몇 장의 그림보다 한 곡의 음악이 더 훌륭한 인테리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도 제일 먼저 꾸민 건 스피커를 들여놓은 서재였다. 은행을 살찌게 할 만큼 두둑한 이자를 내기로 하고 살게 된 집이다. 빈털터리가 되면서 이사를 온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통장에 난 깊은 상처에 음악 치료가 시급했다.
서재에 가로로 길쭉한 우드톤의 책상을 두었다. 그 위에 P에게 받은 멋진 스피커, 노란 조명, 깔끔한 일체형 컴퓨터를 일렬로 놓았다. 완벽했다. 새로운 공간을 보니 마치 내가 더 세련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늦은 새벽이 돼서야 정리가 끝났지만 이 감성을 즐겨야 했다. 이때 필요한 건 역시 음악이다.
부리나케 재생 버튼을 누르자 지구 상에서 가장 섹시한 알엔비가 흘러나왔다. 두터운 비트가 늦은 새벽 방안 구석구석을 휘감았다.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나는 무척 치명적이라고 생각하는) 표정과 고갯짓으로 음악을 만끽했다. 완벽한 이삿날이었다.
그다음 날 경비아저씨는 이사를 환영하기라도 하듯 아침 일찍 집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새벽까지 도대체 뭘 하시는 거예요?"
"네?"
"아랫집에서 항의가 장난 아니에요, 시끄러워 잠을 못 잤다고요. 새벽에 그러시면 어떡해요"
처음 보는 경비 아저씨에게 격렬한 항의를 듣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가 서있는 곳이 이삿집인지 맨해튼 bar인지 낯선 우주인지 어지러웠다. 내가 누군가의 밤을 정성을 다해 방해한 것이다. 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외딴 별에 살다가 별이 수십만 개쯤 모여있는 성단으로 이사 온 느낌이 들었다. 아무도 내게 아파트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알려주지 않았다. 여러 세대가 다닥다닥 붙어서 사는 아파트라는 공간에서의 금기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밤에 조용히 해야 하는 것 정도는 상식일 테니까.
하필 나는 태어나서 20년 동안 시골의 외딴집에서 살았다. 옆집 소음은커녕 옆집이랄 것도 없는 곳이었다. 서울로 상경하며 살게 된 자취방은 연립주택이었다. 하지만 하필 주인집 할머니의 귀가 어두웠다. 피아노를 좋아하고 노래를 사랑한 한 청년의 지옥 같은 소음을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하필 그 집에서 10년을 살았다. 하필의 연속은 도미노처럼 공동 주거의 상식을 쓰러트리며 나를 아파트 새벽 rnb 민폐남으로 만들었다.
알고 보니 아파트는 규칙 나무들로 빼곡히 들어찬 질서의 숲이었다. 12시가 넘으면 스피커로 빵빵 음악을 틀어대서는 안 된다. 세탁기, 건조기도 새벽에 돌렸다간 드럼통 돌아가는 소리에 맞춰 박자감 넘치는 눈초리를 맞는다. 훤히 보이는 창문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도 조심해야 하고, tv소리를 영화관처럼 높였다간 윗, 옆, 아랫집에게 서라운드 항의를 받을지도 모른다.
함께 사는 것에는 늘 규칙이 있다. 보통의 선한 사람들은 그 선을 지키며 서로의 자유를 지켜주려 노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아파트라고 불리는 고작 100평쯤 되는 땅덩어리에 겹겹이 올라타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견고한 행동 규칙은 반대로 우리의 정보를 품고 있기도 하다. 만약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나 이사했는데 분리수거가 일주일에 한 번이더라고! 주차를 하려면 차량 등록도 해야 하더라. 그래도 아래층이 없어서 막 뛸 수 있는 건 좋아"라고 말한다면 친구는 금세 눈치를 채고 말할 것이다. "아파트로 이사 갔구나? 그것도 일층으로". 우리의 행동은 곧 정보가 된다.
별도 마찬가지다. 별의 움직임은 그 별의 행동이다. 특히 여러 별과 함께 사는 별은 행동이 매우 규칙적이다. 이런 별 집단을 뉴턴 아저씨의 위대한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바라보면 별들과 수억만 리 떨어진 곳에서도 정체를 쉽게 알아낼 수 있다. 별이 얼마나 무거운지, 주변에 함께 사는 별과는 가까운지, 주변에 행성은 없는지 등은 고등학교 수학 정도로도 간단히 파헤칠 수 있다. 그 정보들은 다시 천체의 밝기, 나이, 거리를 알아내는 단서가 되어 천문학자들은 사실상 그 별들의 신상정보를 주르륵 꿰차게 된다. 별의 행동이 별의 지문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우리나 별이나 모두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가끔은 그 사회가 나이 기도하고, 내가 그 사회이기도 하다.
음악이야기를 하다가 사회까지 흘렀다. 아주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든다. 내 스피커도 결국 내 방에서 천문대로 멀찍이 쫓겨났다. 소리를 빵빵 낼 수 있는 천문대가 스피커에게도 행복할 것이다. 모름지기 스피커란 존재가치를 데시벨로 내는 녀석이 아닌가요.
덕분에 집에서는 무선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는다. 꽤 슬프다. 하지만 이곳에 평생의 기를 모아 빚을 지고 이사 오기로 선택한 것은 나니까 할 말은 없다. 씁쓸할 땐 역시 알엔비가 제격이다. 두둠칫, 무선 이어폰으로도 내 방이 맨해튼의 bar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