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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Jul 13. 2022

12조 짜리 전자기기_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

"역시 조승현 집 답구만"


나의 집을 처음 방문한 H는 집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놀라움과 한심함이 반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집안 가득한 전자기기 덕분이다. 나는 자칭 얼리어답터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얼리어답터가 아닌 '자칭'이다. 나 스스로 평가했다는 점에 주목해보면 영 쓸모없는 얼리어답터인 것이다.

 우리 집은 하자 있는 전자기기로 가득하다. 일단 화장실에는 자동 수도꼭지가 있다. 손을 대면 물이 자동으로나오는 백화점에서 본 그것이다. 팬데믹 세대를 거치며 수도꼭지에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묻히지 않겠다는 기막힌 위생 정신으로 직접 센서를 설치했다. 하지만 손을 인식 못하는 센서 탓에 손을 씻을 때마다 바이러스 대신 스트레스에 감염되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정수기 위에 설치된 인공지능 스피커는 가는 귀가 먹었는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스마트 TV에 연결된 백만 원짜리 개인 서버는 고작 예능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해 보는데 쓰이고, 디지털 노마드를 표방하며 산 맥북과 아이패드는 늘 인터넷 창만 켜고 있다. 


 하지만 나는 재벌이 아니고 전자기기를 살 때마다 피 같은 돈을 지불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시간 절약'이다. 

 시간은 줄일수록 좋다. 시간은 돈이고, 돈은 늘 문제이니 삼단 논법에 따라 항상 시간이 문제이기 때문이다(라고 우겨본다). 거리에 나가 하염없이 손을 흔들며 택시를 잡는 것보다 어플을 켜서 택시를 부르는 게 훨씬 빠르다. 충전기에 꽂아둔 핸드폰을 집어 들어 날씨 어플을 키는 것 보다 인공 지능 스피커에게 "오늘 날씨 어때?"하고 묻는 것이 더 신속하고, 코딩을 배우러 학원에 가는 대신 컴퓨터를 켜서 인강을 들으면 시간을 훨씬 절약할 수 있다. 전자기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편리하고 멋도 있지만, 역시 시간을 아끼게 해 준다는 점이다. 

 

  지난 12월 25일, NASA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망원경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을 우주에 띄웠다. 총 예산만 100억불, 한화 약 12조 5000억 원에 달하니 인류 역사상 가장 비싼 전자기기이기도 하다. 어째서 망원경이 전자기기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온도를 체크해서 화면에 띄워주는 적외선 온도계도 전자기기 아닌가. 우주에서 적외선 파장대를 찍어 지구와 통신으로 보내는 제임스 웹 망원경도 전자기기라 할 수 있겠다. 

 제임스 웹은 우주 망원경은 30년 동안 천문인들을 설레게 했던 허블 우주망원경의 기를 죽일 정도로 대단하다. 제임스 웹의 망원경 지름은 6.5m로 허블보다 2배 이상 크며 빛을 모을 수 있는 능력도 7배가 넘는다. 빛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망원경의 거울을 금으로 코팅했으며, 우주 태초의 빛을 관측하기 위해 적외선 파장대를 관측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런 특징들을 종합하면 제임스 웹 망원경의 관측 능력은 허블 망원경보다 100배는 뛰어날 것으로 평가된다. 허블이 선풍기라면 제임스 웹은 에어컨인 것이다!


 그리고 지난 7월 11일, NASA는 백악관을 통해 제임스 웹이 포착한 첫 번째 풀컬러 우주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이 공개되자마자 나는 이마를 치며 감탄했다. 그야말로 세계 최고 전자기기의 재림이었다!




 두 사진은 동일한 곳으로, 지구로부터 46억 광년이나 떨어진 은하단이다. 사진 속에 빛나는 대부분의 천체들은 은하다. 별을 수천억 개씩 가진 수많은 은하들이 고작 바늘구멍 정도의 아주 작은 공간에 모여있는 것이다. 

 언뜻 비교해도 제임스 웹으로 찍은 사진이 더욱 선명하고 뭔가 더 많이 보인다. 마치 밤에 야간모드로 찍은 사진과 5년 전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비교한 것 같달까. 게다가 지구에 도달하는 천체들의 빛은 아주 소량이기 때문에 천체 사진 촬영을 위해서는 오랫동안 빛을 모아야 한다. 이를 사진의 '노출'이라 한다. 허블은 위 은하단의 사진을 찍기 위해  몇 주 동안 노출을 해야 했지만 제임스 웹은 고작 12시간 30분 정도를 촬영했다. 더 적은 시간을 투자해 더 나은 관측을 해낸 것이다!

 애석하게도 12조 원을 쏟아 부운 세계 최고의 망원경 '제임스 웹'은 단 한대뿐이고, 천문학자들은 그 망원경을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길 원했다. 그 어려운 일을 결국 진보한 기술해냈다. 역시 더 나은 성능은 시간 절약으로 보답한다. 제임스 웹은 능력과 더불어 시간 절약에 대한 전자기 기적 능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한바탕 제임스 웹 망원경을 칭송하고 나니 왠지 허블 망원경이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허블 망원경이 찍은 사진을 보고자라며 우주의 광활함과 신비로움에 감탄해왔고, 그 영향으로 아이들에게 천문학을 가르치는 천문학 강사가 되었다. 나를 우주적 어른으로 키운 것은 팔할이 허블 덕인 것이다. 그러니 더 좋은 전자기기가 나타났다 하여 허블을 소외시킬 생각은 없다. 어쨌거나 허블 망원경 역시 그 전 세대의 망원경의 촬영 시간을 줄여준 최고의 망원경이었을 테니까.


아래는 NASA가 공개한 제임스 웹의 첫 작품들 입니다.

쪽고리성운. 왼쪽은 근적외선, 오른쪽은 중적외선 파장으로 관측한 영상 (c)NASA
용골자리 대성운_우주의 가스 (c)NASA
스테판 5중주 은하군 (c)N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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