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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Apr 18. 2023

빅뱅은 정말 일어났을까?

“우리 손주는 매년 키가 크는구나!”

 할머니는 매 설날마다 키가 커있는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매년 1cm씩 꾸준히 컸고, 덩달아 나 때문에 지출되는 우리 집 식비도 꾸준히 거대해졌다. 유치원생일 때보다 초등학생일 때가, 초등학생일 때보단 중학생 때가 컸다. 만약 자라는 내 모습을 보며 누군가 이런 생각을한다면 어떨까? ‘아, 저 사람은 키가 계속 크고 있구나, 그렇다면 과거엔 키가 작았겠구나. 그러니 저 사람은 갑작스러운 폭발로 탄생했겠구나.’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바로 우주론의 영역에서다. 


“우주가 커지고 있습니다.”

 1929년, 미국의 천문학자 허블은 사실상 하나의 그래프가 주인공인 논문으로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더 먼 은하가 더 빨리 지구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우주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사람들은 우주가 커지고 있다는 허블의 말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당시는 ‘우리 은하’가 우주의 전부라고 생각하던 편견이 깨진 지 10년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강산을 넘어 우주가 커진다는 진실을 받아들이긴 어려웠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기괴한 천재인 아인슈타인도 우주의 팽창을 불편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우주가 커지고 있다는 것은 과거에는 우주가 작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더 먼 과거로 갈수록 우주도 더욱 작았을 것이고 끝끝내는 우주의 크기가 0에 가까워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주가 무한히 작은 한 점에서 갑작스레 폭발해 탄생했다는 ‘빅뱅 이론’의 시작이다. 우주의 팽창은 곧장 빅뱅 이론으로 모습을 바꿔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충격을 선물했다. 우주는 정말 터져서 생겨났을까? 왜 성장하는 인간의 과거는 폭발로 치부하지 않으면서 우주의 폭발은 편하게 받아들이게 된 걸까? 우주가 팽창하기 때문이라기엔 논리가 조금 빈약하다. 더구나 천문학은 물리와 수학에 기반을 둔 과학이다. 과학과 수학은 증명이 돼야 한다. 아무리 그럴듯해도 우리는 증거가 있어야 믿을 수 있다. 우주가 터져서 생겼다는 것에도 증거가 있을까?

전파 망원경 앞에 서있는 윌슨과 펜지어스


 1963년, 미국의 천문학자 윌슨과 펜지어스는 전파 망원경으로 카시오페이아 A라는 초신성 잔해를 관측했다. 이 천체는 당시 하늘에서 가장 강력한 전파원 중 하나였다. 때문에 전파 신호는 강력했지만 신호에 잡음이 너무 많이 섞여있었다. 물론 기술적으로 해당 잡음을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윌슨과 펜지어스는 잡음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은 집채만 한 철덩어리인 전파망원경을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했다. 하지만 잡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달의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달이 뜨는 시각까지 고려해서 망원경을 세팅했다. 그래도 잡음은 여전했다. 심지어는 새들이 남겨놓은 배설물까지 손수 닦으며 망원경을 청소했다. 역시나 잡음은 없어지지 않았다. 우주의 모든 방향에서 날아오는 이 엄청난 잡음은 그들에겐 정말 미스터리한 존재였다. 이쯤 되자 그들은 거의 포기 상태였다.

 만약 아무도 없었던 교실에서 수류탄이 터졌다고 하자. 1시간 뒤에 교실에 들어간 당신은 교실에서 수류탄이 터진 사실을 알아낼 수 있을까? 아마도 눈치챌 것이다.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찌그러지고 부서져 나뒹굴고 있는 책상, 커다랗게 구멍 난 바닥과 벽의 자국,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폭발의 연기와 화약 냄새도 모두 수류탄이 터졌다고 말해주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폭발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건은 현재에 남은 당시의 흔적으로 알아낼 수 있다. 빅뱅은 우주에서 일어난 가장 커다란 폭발이었다. 그렇다면 빅뱅의 흔적도 현재 어딘가에 남아있지 않을까? 물론이다. 놀랍게도 윌슨과 펜지어스가 찾아낸 ‘잡음’이 바로 빅뱅의 흔적이자 증거였다.

 빅뱅이라는 거대한 폭발로 우주가 생겨났지만 우주만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극도로 뜨거운 우주에서 빛과 입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팽창하는 우주와 함께 빛들 역시 우주 공간으로 뻗어갔다. 빛들은 우주가 커짐과 동시에 우주 곳곳으로 퍼지며 에너지가 약해졌고, 이는 곧 전파라는 가장 약한 힘을 가진 빛이 됐다. 이 빛을 ‘우주 배경 복사’라고 부른다. 빅뱅우주론은 우주 배경 복사의 존재와 에너지, 온도까지 정확하게 예측했다. 윌슨과 펜지어스가 발견한 잡음이 바로 우주 배경 복사였던 것이다. 빅뱅으로 인해 생긴 빛들은 오랜 시간 우주를 떠돌다가 그들의 망원경에 포착됐다. 1978년, 윌슨과 펜지어스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 이후로도 더 정확한 우주 배경 복사를 측정하기 위해 여러 번의 프로젝트가 시행됐다. 그중 가장 정교한 플랑크 위성의 관측 결과가 2015년에 발표됐다. 가장 섬세한 우주 배경 복사를 측정함과 동시에 우주의 나이가 138억 살이며, 암흑 에너지와 암흑 물질이 전체 우주에서 95%나 차지한다는 것도 밝혀냈다. 우주에 대한 자세한 지표들이 밝혀져 가는 것은 매우 흥미롭지만 더욱 고마운 것은 빅뱅에도 증거가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제 빅뱅 이론을 마음 편히 믿어도 좋다. 누군가를 사귀며 한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주도 그렇다. 인간이 우주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스무살의 성장 과정을 대략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도 우주의 성장 과정과 탄생을 일부 이해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빅뱅 이론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남아있지만 말이다.

▲ 플랑크 위성의 우주 배경 복사 지도


*본 글은 성신여자대학교 학보사 학술면에 동시 게재중입니다.

(http://hakbo.sungshin.ac.kr/news/articleView.html?idxno=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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