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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Jun 29. 2024

1박에 얼마라고?

맥시멀리스트의 우주보기

"여기가 진짜 우리 숙소라고?"


미국, 휴스턴 숙소에 도착한 나와 동료 8명은 떡 벌어진 궁전 같은 집에 탄성을 질렀다. 체육대회를 해도 될 것 같은 거실과, 10명도 거뜬히 식사를 할 수 있는 주방, 영화관 같은 응접실도 있었다. 수많은 침실과 그 안에 놓여있는 10개의 침대는 에어비엔비 보단 호스텔을 운영해야 할 법했다. 동료던 길이던 하나는 잃어버릴 것 같은 집에서 무려 6박 7일 동안의 여행을 시작했다.


"혹시... 1박에 얼마까지 써도 돼요?"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든솔이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70만 원 정도가 적당하겠네"

"혹시 가격을 조금 더 쎄게 가면 어떨까요?"

"얼만데?"

"100만 원이요"

"후, 그러자"


 9명이서 떠나는 여행엔 적당히 큰 집이 필요했다. 호텔은 1인당 비용이 너무 비쌌고, 단체라서 호스텔은 불편하기에 우리는 보통 에어비엔비를 이용한다. 적합한 숙소를 찾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사람이 많은 만큼 일단 침대가 많아야 한다. 화장실도 많을수록 좋다. 안 그러면 씻을 때도, 마려울 때도 고통스러운 교통 체증과 눈치싸움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9명이 머무는 숙소는 식탁에 의자 하나만 부족해도 쉽사리 왕따 논란에 빠질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수많은 변수를 제거하다 보면 답은 하나다. 크고, 넓고, 비싼 집을 숙소로 얻어야 한다.

 하지만 숙소비란 마치 거짓말 같아서 '조금만 더 꾸며볼까?'싶으면 작은 허풍들이 더해져 태풍이 되어버린다. 화장실이 하나만 더 있었으면 좋겠어, 침대가 7개인줄 알았는데 그중 하나는 소파침대였잖아? 5만 원만 더으면 자쿠지가 있다고? 10만 원 더 쓰면 집 안에 세탁기와 건조기도 있네? 뭐야 이 집은 운동기구가 있어!. 헬스장 1개월을 끊으러 가서 1년권을 끊고 나오는 사람이 어떻게 숙소는 매정하게 끊겠나. 결국 그러다 보면 정해진 예산의 두 배가 되곤 하는 것이다.

 호캉스가 유행인 시대에 1박에 백만 원짜리 호텔도 성행하지만, 그것이 6,7박 정도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호화스러운 만큼 지갑은 얇아진다. 그러면 결국 다른 것을 줄여야 한다. 여행을 계획하며 늘 고민한다. 돈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써야 하지 않을까?



1995년, 우주 탐사의 거대한 무대에서 허블 우주 망원경이라는 최첨단 기기를 쥐고 있던 천문학자 로버트 윌리엄스는 대담한 제안 하나로 과학계를 집중시켰다. 그의 제안은 단순했지만 혁명적이었다.

 "밤하늘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텅 빈 공간을 찍어봅시다."

 당시 허블 망원경은 발사된 지 겨우 5년밖에 되지 않은 최신 기술의 꽃이었다. 매일 수백 명의 과학자가 이 망원경의 시간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하루 사용료가 약 10억 원이나 되는, 지구상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망원경을 사용해 '아무것도 없는 곳'을 찍자는 제안은 마치 최신 아이폰 15 프로를 들고 고양이 사진만 찍자고 제안하는 셈이었다.

"그냥 빈 공간을 찍겠다고? 돈 낭비, 시간 낭비 아냐?" 동료들의 의심과 반대가 쏟아졌지만, 윌리엄스는 꿋꿋하게 자신의 계획을 밀어붙였다. 그는 실패할 경우 모든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고집은 마침내 허블 딥 필드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렸다.


1995년 12월 18일, 큰곰자리 근처의 작은 구석을 향해 허블 망원경의 렌즈가 고정되었다. 팔을 쭉 뻗고 바늘구멍으로 우주를 보았을 때 보이는 영역만큼이나 좁은 영역이었다. 허블 망원경은 지구 주변을 90분마다 한 바퀴 돌며 계속해서 같은 위치를 쳐다보았다. 10일간 342차례에 걸쳐 관측이 이루어졌고, 한 번도 관심받지 못한 우주의 작은 영역은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결과는 과학계를 경악케 했다. 바늘구멍만 한 밤하늘 조각에서 무려 3,000개 이상의 은하가 발견된 것이다. 은하들은 각기 다른 형태와 크기를 지니고 있었고, 저마다 수천억 개의 별들을 지니고 있었다. 우연히 한 알의 모래를 집어 들었는데, 그 모래알 안에서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한 것과 같았다. 그렇다면 넓은 모래사장 전체에는 얼마나 많은 세계가 숨겨져 있을까? 허블 딥필드 프로젝트는 작은 영역에서 수천 개의 은하를 발견 함으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가 얼마나 광활하고 끝없이 펼쳐져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했다.

허블 딥필드/사진 속이 보이는 대부분의 천체가 모두 은하다. (c)NASA
허블 울트라 딥필드/허블 딥필드와 비슷한 방식으로 관측한 우주의 작은 영역 (c)NASA


이번 여행에서 언제가 제일 좋았어?


 이 질문은 우리의 미국 여행 마지막 밤, 거대한 마당이 있는 숙소 거실에서 던져졌다. 이번 여행의 ‘베스트 순간’을 뽑으며 저물어가는 여행을 위로한 것이다. 각자의 대답이 이어지면서 고요히 빛나던 장면들이 재조명되었다.


"거대한 저택에서 커피를 마실 때요."

"다 같이 식탁에 모여서 파스타 해 먹었을 때요."


 함께한 동료들은 최고의 순간으로 숙소에서 보낸 시간을 꼽았다.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온 미국에서, 수십만 원을 주고 먹은 정통 텍사스 바비큐대신 숙소에서 복작복작 요리해먹은 파스타와 드립 커피를 선택한 것이다. 내 베스트 순간도 비슷하다. 이른 아침, 별 약속 없이 자연스레 식탁에 모여 세혁이 해준 베이컨 불닭볶음면을 먹었을 때, 딱 귀신 나올법한 미국의 대저택에서 공포영화를 보다가 함께 잠들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순간들은 우리가 숙소에 중고차 한 대 값을 쓴 덕분에 얻어진 것들이었다.

 ‘가성비’라는 단어가 득세하는 요즘이다. 그 선두에 서서 나는 매 순간 효율성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로봇청소기는 샤오미를, 헤어 드라이기는 차이슨(이른바 짭 다이슨)을 사용한다. 충전기는 베이스어스라는 이 시대의 가성비갑 브랜드다. 그리고는 1박에 백만 원짜리 숙소에 묵으며 여행한다. 영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만약 윌리엄스가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밤하늘의 빈 공간'을 찍자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주의 놀라운 규모와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었을까? 그가 과학적 모험을 위해 우긴 것처럼, 여행에도 가끔은 낭비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물론 계좌를 들여다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나는 내년 여행의 숙소를 찾을 때에도 최저가순으로 검색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차근차근 눈높이가 올라가다 마지막 페이지쯤에서 인생 숙소를 찾을 것이고, 허블 딥필드를 핑계로 비싼 숙소를 선택할 것이다. 나란 인간은 뻔할 뻔자다. 하지만 그렇게 떠난 모험마다 예상치 못한 놀라움과 기쁨을 경험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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