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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든솔 Jul 01. 2024

누구나 할 수 있다!

전파 공학자 칼 잰스키

 웨이트 트레이닝 초보자들은 늘 온몸이 쑤시다.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을 쓰기 때문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원하는 부위를 정확히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초보자들이 등 운동을 한 다음 날에는 이상하리만큼 등에 근육통이 없는 대신 가벼운 물건하나 들 수 없을 정도의 근육통이 이두근에만 가득하다. 가슴 운동을 한 다음 날도 상황은 비슷하다. 웅장한 가슴 근육을 꿈꾸며 벤치 프레스를 열심히 해도, 다음 날 찾아오는 건 문 하나 제대로 밀지 못할 정도로 쑤시는 삼두근이다. 등 운동을 할 땐 등을! 가슴 운동을 할 땐 가슴을 써야지!라는 유명 보디빌더의 말은 초보자에겐 마치 다른 나라의 말처럼 공감이 되질 않는다. 


 가슴 운동을 했는데 왜 팔이 아픈 걸까. 운동을 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보통 여러 근육들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이다. 등 운동은 기본적으로 당기는 운동이기 때문에 이두근을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하고, 가슴 운동은 미는 동작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삼두근의 도움이 필요하다. 초보자의 경우엔 근육을 사용하는 법에 익숙지 않고 그저 동작을 수행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엉뚱한 곳에 근육통이 오는 것이다. 


 예전의 나도 그랬다. '난 멋진 등판을 가진 사람이 될 거야!'를 외치며 턱걸이를 시작하면, 5분 만에 팔에 모든 힘이 빠져 더 이상은 손잡이를 잡을 힘조차 나질 않았다. 분한 마음에 곧바로 벤치프레스에 누워 바벨을 열심히 들어보아도 10분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헬스장의 입장 버튼을 누른 뒤 15분 만에 등과 가슴 운동을 모두 끝내버리는 기적의 가성비를 보여주는 초보자가 바로 나였다. 하지만 항아리 같은 옆구리 살을 보며 헬스인이 되기로 마음먹은 내가 어떻게 초보자로 남을 수 있으랴. 수개월 간 팔에 근육통을 달고 살았지만 그럼에도 매일 나가서 머신을 당기고 밀었다. 어떻게 하면 올바른 자세로 근육을 사용할까 고민했고, 만족스러운 운동이 되지 않은 날에는 그날의 운동 방법에 의문을 품었다.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되었지만, 가끔은 독이 될 때도 있었다. 영상마다 추천하는 자세가 조금씩 달라서 결국 내가 나에게 맞는 자세를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내 몸은 운동에 쓰이기보단 인체 실험을 당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 운동을 한 다음 날에는 가슴이 아픈, 올바른 운동법을 깨우쳐갔다. 


 덕분에 요즘은 어느 정도 근육의 사용법을 알게 되어 등 운동만 한 시간 이상씩 하고도 팔에 힘이 남아 팔 운동도 할 수 있는, 제법 티가 나는 운동인이 되었다. '등 운동은 등으로, 가슴 운동은 가슴으로 해야지'라는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줄 아는 어엿한 헬스인이 된 것이다. 


전파망원경 ⓒNASA


 뉴턴(N)이라는 단위는 과학을 배운 사람에겐 굉장히 친근한 단위다. 힘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 뉴턴(N)은 고전 역학의 기반을 마련한 천재 과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이렇게 과학계는 종종 그 분야의 기틀을 닦은 과학자를 위해 그의 이름을 따와 만들어지기도 한다. 조금은 생소하지만 천문학에서도 그러한 영광을 누린 이가 한 명 있다. 전파 공학자 칼 구스 잰스키(Karl Guthe Jansky). 그의 이름에서 온 잰스키(Jy)라는 단위는 천체에서 나오는 전파를 측정하는 단위로, 칼 잰스키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단위다. 


 칼 잰스키는 무선 전화가 보급될 시기에 한 전파 연구소에서 공학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에겐 막중한 임무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자연에서 오는 전파를 찾아내 정체를 파악하는 것. 정확하고 깨끗한 무선 통신을 위해서는 통화 전파를 방해하는 자연 전파를 최대한 확인하고 제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자연에서 오는 전파를 찾기 위해 안테나를 들고 사방을 겨눴다. 커다란 안테나를 휘저으며 자연으로부터 오는 전파를 하나씩 파악하던 잰스키는 수상한 전파를 포착했다. 그 수상한 전파는 약 24시간 간격으로 '규칙적'으로 감지되었다. 과학자에게 규칙적인 무언가는 지나칠 수 없는 호기심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곧 반가움으로 다가오게 된다. 공학자였던 잰스키에게도 과학자로서의 면모가 있었던 걸까. 그는 규칙적인 간격으로 전파를 내뿜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했고 꽤나 친근한 곳에서 해답을 찾았다. 바로 태양이었다. 24시간, 하루를 주기로 우리에게 모습을 비추는 태양이 바로 규칙적인 전파의 근원지라 믿었다.


 하지만 태양이라 확신하기에는 자꾸만 의심이 들었다. 규칙적으로 감지되는 전파의 주기가 24시간보다 4분 짧은 23시간 56분이었기 때문이다. 4분이라는 시간 차는 대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걸까. 천문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단 번에 알아챌 수 있었겠지만, 공학자였던 그는 아쉽게도 알아채지 못했다. 다만 그와 함께 일하던 천문학과 출신의 동료는 잰스키의 고민이 너무나도 당연한 문제였다. 23시간 56분은 천문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1항성일이었기 때문이다. 1항성일은 지구가 정확히 한 바퀴 돌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우리는 지구가 한 번 자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하루, 24시간이라고 당연시 여기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하루는 지구가 한 바퀴 돌아 다시 태양을 바라볼 때까지의 시간을 뜻한다. 지구는 자전과 동시에 공전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태양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조금의 자전, 곧 4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23시간 56분을 주기로 오는 수상한 신호는 곧 24시간을 주기로 오는 태양이 아닌, 우주 어딘가에서 오는 신호라는 것을 뜻했다.


항성일과 1일(하루)


 잰스키는 이제 태양에서 눈을 떼고 밤하늘에서 전파의 근원을 찾았다. 결국 찾아낸 근원지는 수많은 별들이 모여있는 궁수자리 은하수 부근이었다. 그리고 그는 1933년, 우주에서도 전파가 나온다는 사실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리게 된다. 별에서도 전파가 나온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전파라는 에너지가 머나먼 우주를 넘어 지구까지 도달하는 것이었다. 천문학자들은 또 다른 가능성에 마주했다. 망원경으로만 별을 보았던 천문학자들이 이젠 안테나를 들고 온 밤하늘을 뒤지기 시작한 것이다.


칼 잰스키 ⓒNational Radio Astronomy Observatory


 잰스키로 인해 생겨난 새로운 분야인 전파 천문학은 현대 천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다. 무선 통신의 보급을 위해 일했던 한 전파 공학자가 새로운 천문학의 시대를 열었다. 게다가 천체에서 오는 전파의 세기를 잴 때는 잰스키(Jy)라는 단위를 사용하고, 매년 전파천문학 분야에 큰 공헌을 한 천문학자들을 잰스키 강연회라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초대하기도 할 만큼 잰스키는 전파 천문학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천문학과는 거리가 먼 칼 잰스키가 지금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일까. 무선 통신의 보급을 위해 투입된 전파 공학자였기 때문에? 안테나를 휘젓다가 발견한 신호가 규칙적인 신호였기 때문에? 그가 문제를 해결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나 운 때문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천문학에서는 초보자였던 잰스키가 본인의 역량과 주어진 임무를 넘어선 무언의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천문학 초보 전파 공학자는 결국 해냈다. 여러분이 만약 운동을 막 시작한 운동 초보자라면, 잰스키를 떠올려보길 바란다. 운동 초보자라도 포기하지 않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노력하면 결국 원하는 몸을 얻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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