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난 '뭣' 된 것 같다.

유럽 자전거 여행 2

by 조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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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키 – 비엔나 >


큰일이다. 영화 ‘마션’의 와트니가 했던 첫 대사처럼 아마도 나는 뭣 된 것 같다. 체스키에서 비엔나 까지는 204km 거리. 자전거로는 하루 안에 가기엔 무리가 있는 거리다. 하지만 나는 오늘 비엔나에 도착해야만 한다. 우연히 대학 친구가 유럽 여행을 온다는 소식에, 억지로 일정을 맞추어 비엔나에서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미 숙소까지 예약을 해놓은 상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터져버렸다. 큰일이다. 자전거로는 무리인 거리라 체스키-비엔나 간 셔틀을 이용해 이동하려 했는데, 자전거는 탑승 불가란다. 더불어 이미 매진이라니 비엔나까지 가긴 틀린 것 같다. 약 5만 원쯤 하는 금액에도 불구하고 교통이 불편한 체스키에서 비엔나까지 한 번에 가는 편리한 교통이라 그런지 이용자가 많은가 보다.



그래도 난 가야 한다. 안 가면 돈도 돈이지만, 일정도 친구와의 약속도 모두 꼬인다. 답답한 마음에 일단 침실에서 나와 주방으로 이동했다. 호스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이 번드르르했지만 눈길도 가지 않았다. 그림의 떡처럼 하나도 맛있어 보이지 않았다. 입 맛이 없다는 말을 평생 몇 번 써보지 않았지만 지금이 아마 그 말을 쓸 때이지 않은가 싶다. 식탁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기 시작했다. 이곳저곳 아무리 전화를 해봐도 셔틀은 불가하단다. 아무래도 셔틀은 안 되는 것 같다. 그렇담 셔틀은 포기. 이번엔 방향을 돌려 기차 노선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조금 불편하고 오래 걸리긴 하지만 기차로는 방법이 있을 테니까.

20130614_081717.jpg 체스키-비엔나간을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셔틀'. 스타렉스급이니 자전거는 안될 만 하다...


기차 노선을 검색해보니... 맙소사! 기차 시간까지 약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심지어 이 기차를 놓치면 오후까지 기차가 없다. 그렇게 되면 비엔나엔 정말 밤늦게나 도착하게 된다. 지금 기차를 타면 비엔나 인근 도시인 장크트푈텐까지 간 후 80km 정도 라이딩을 해서 빈까지 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시간과 자전거 여행 여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역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30분 안에 도착해야 한다. 호스텔 프런트에 물으니 숙소에서 체스키 역까지는 자전거로 20분. 죄다 언덕이라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단다. 불안하다. 안된다. 좀 더 빠른 방법이 필요하다. 자전거 보다 빠른 건 아무래도 ‘차’다. 다시 전화기를 꺼내 들고 이번엔 콜택시에게 전화를 건다. 다행히 콜택시는 있다. 5분이면 도착한단다. 그런데 그때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린다



“아 그런데 자전거는 실을 수 없어요.”

“왜요!?”

“택시가 작아서 자전거는 규정상 안됩니다.”

“벤이나 다른 대형 택시는 없나요!? 비용은 지불하겠습니다!!!”

“아쉽게도 대형 택시는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 뚜뚜뚜”



악!!!!!! 택시도 안된다. 순간 자전거를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인다. 입에 침이 마르고 시간은 이제 25분 남았다. 자전거로 달렸으면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거리가, 아이러니하게도 전화 한 통으로 인해 아스러져 갔다, 자전거 때문에. 하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내가 쉰 한숨 때문에 정말 땅이 꺼질지도 모른다. 땅이 꺼져서라도 호스텔과 기차역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 수 있다면 몇 번이고 한숨을 쉬겠다. 어느샌가 입이 바싹 말랐다. 긴장했나 보다. 그때 저 쪽에서 밥을 먹고 있던 현지인 한분이 조용히 말을 건넨다.


04005-Sharon_at_Cesky_Krumlov_train_station_CZ_800x600.jpg 목적지인 제스키 역, 가는 길이 쭉 오르막이라 자전거로 30분안에 가기가 쉽지 않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지하철역까지 20분 안에 가야 하는데, 제가 자전거가 있어서 택시를 탈 수가 없네요”

“얼른 짐 챙겨 나오세요! 제게 작업 차량이 있어서 자전거도 실을 수 있어요!”



이게 웬 갑작스런 ‘메시아’의 종소리인가. 내 한숨 때문에 진정 땅이 꺼질까 두려웠던 걸까. 수염이 가득한 예술가처럼 생긴 아저씨가 선 듯 내게 도움을 주신단다. 추운 아침 생면 부지의 사내에게 도움을 주는 저분은 천사가 아닐까? 소닉 보다 더 빠르게 짐을 챙겨나와 아저씨와 아저씨와 함께 차로 향했다. 뛰는 것과 걷는 것 중간 정도로 한 3분 정도를 달리니 아저씨의 작업 차량이 보였다. 다행히 자전거를 실고도 남을 정도로 크다! 아저씨는 차 안이 더럽다며 조금은 부끄러운 듯 웃었지만, 내게는 세상 그 어떤 차보다 넓고 깨끗해 보였다. 이런 게 바로 ‘콩깍지’가 아닐까. 그렇게 난 아저씨 차에 올랐다. 그제야 한 숨을 돌리며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눈다.



20150219_082357.jpg 도움을 준 아저씨~~원빈보다 잘 생겼다!!

아저씨는 체스키에서 페인트칠을 하는 페인트공이었다. 역사와 유래가 깊은 체스키여서 인지 오래되고 낡은 곳들이 많아 주기적으로 페인트칠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저씨는 나이가 40은 훌쩍 넘으시고, 영어도 잘은 못하시지만 느껴지는 ‘선’함이 하늘 끝까지 닿아있었다. 얼굴을 가득 덮은 수염이 뭔가 꾀죄죄해 보일 법도 하지만, 아저씨의 모습은 영락없는 ‘원빈’이었다. 아저씨를 보면서 느꼈다. 사람의 겉모습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페인트칠을 하시는 탓인지 옷도, 차도 온통 페인트 천지다. 차도 낡고 오래돼 덜컹덜컹 대는 걸 보니 족히 20년은 된 차였다. 검은 기름때가 운전석을 뒤덮고, 고장 난 와이퍼가 언덕을 오르는 내내 삐걱삐걱 댄다. 아저씨에게는 그 어떤 것도 새것이나 비싼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아저씨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으로 보인 건, 아저씨의 마음이 세상 그 어떤 것 보다 값진 명품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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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체스키의 햇살은 눈부셨고

아저씨의 호의는 따뜻했다.

기차에 오르기까지는 10분이나 여유가 있었다.

세상은 우연의 연속이라 말했던 누군 가처럼,

나는 오늘 우연히 ‘천사'를 만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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