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자전거 여행기 2
<체스키 – 비엔나 > 자전거 여행 중, 일정 문제로 비엔나 까지 기차를 이용해 움직였다.
비엔나에 도착했다. 얼마나 우여곡절 끝에 비엔나에 도착했는지 모른다. 친절한 체코 아저씨 덕에 체스키에 자전거와 간신히 비엔나로 향하긴 했지만 꽤나 번잡한 사건들이 많았다.
첫 번째 문제는 자전거를 열차에 싣는데서 시작됐다. 유럽의 기차는 대부분 자전거를 싣을 수 있다. 자전거가 마치 ‘사람’처럼 분류되기 때문에 자전거를 가지고 타는 데는 큰 불편함이 없다. 하지만 꼭 예약을 해야 한다. 스위스나 독일의 경우 짧은 구간에 한해 사전에 비용만 지불하면 자전거를 가지고 탈 수 있으나 대부분의 구간은 꼭 예약을 해야 한다. 예약자가 없어 자전거 칸이 텅텅 비어있어도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전거 탑승 금지’라는 게 한국인에겐 꽤나 황당한 일 일 수 있다. 마치 손님이 없어 파리를 날리는 식당에서 퇴짜를 맞은 기분이랄까?
이러한 문제는 마치 ‘숙제를 안 해 온 날만 숙제 검사를 하는 것’ 같이 급할 때만 내 발목을 잡는다. 비엔나로 향하는 체스키 역에 도착한 뒤 너무 급한 나머지 자전거 좌석에 대한 요금 하고 그만 예약하는걸 깜빡 잊었다. 예약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핸드폰도 필요 없이 매표소에 ‘다음 열차에 자전거 예약해주세요!’라고 말만 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1분 1초가 급해서일까 그 말을 잊고 부리나케 열차로 향했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말았다. 역무원의 얼굴은 어린 시절 아버지께 노트북을 사 달라고 졸랐을 때 보다 더 단호했다. 얼굴에 ‘절대 안됨’이란 글자가 환각처럼 보였다. 부탁이나 애원은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했다.
1분 뒤 출발하는 열 차 앞, 그리고 텅텅 비어있는 자전거 칸, 이 척박하고 가슴 쓰린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1분 안에 매표소에 다시 뛰어가 예약해달라 말하고 오는 것뿐이다. 이 열차를 놓치면 오후까지 맥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저 ‘아임 쏘 오리~!!!!’를 외치며 신나게 달릴 뿐이다. 자전거 핸들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토록 추운 체코의 겨울 온몸이 땀으로 젖을 만큼 뛰었다. 뛰어서 난 땀보다 초초한 식은땀이 더 많이 났음이 분명하다. 다행히 매표소 창구는 비어있었다. 미끄러지듯 ‘세잎’한 창구 앞에서 다급하게 외쳤다.
“자전거 한 자리 예약해주세요! 지금 열차예요!”(발을 동동 구르며)
내 이 다급한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덤덤하게 ok를 외친다. 손은 또 왜 이렇게 느긋한지 타자를 치는 모습이 흡사 내가 처음 키보드를 만졌던 유치원생 때와 비슷한 손놀림이다. 아, 야속한 직원. 평소엔 그들의 여유를 부러워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정말 정말 싫다. 거북이가 목을 내밀 듯 천천히 내민 예약권을 낚아채듯 쥐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저 멀리 아직 기차가 보인다. 마치 곧 출발이라도 할 것처럼 웅웅 댄다.
돌아오는 길은 열차에서 내린 승객과 마주쳐 더욱 난관이다. 투닥투닥 크리스마스이브날 명동 한복판을 눈감고 가는 것과 비슷한 빈도로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친다. 입에선 연신 ‘쏘리 쏘리’뿐이다. 이 순간은 슈퍼주니어보다 내가 더 많은 ‘쏘리’를 했을 거다. 열차가 바퀴를 굴리기 직전, 자전거를 열차에 던지듯 함께 올랐다. 하. 이 순간만큼은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선수보다 내가 더 기쁘다. 나는 이제 비엔나로 가면 되니까.
* 여기서 꿀팁!
열차에 자전거를 싣을 때 ‘너무 비싸서 아끼고 싶다!’ 혹은 ‘예약같이 번거로운 일’을 피하고 싶다면 자전거 캐리어를 이용하자. 시중에서 싸게는 2만 원 안팎으로 살 수 있는 자전거 캐리어(가방)가 있다면 돈을 낼 필요도, 예약할 필요도 없다. 페니어 안에 넣고 다니다가 날씨나, 경로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열차를 타야 할 때 자전거를 잠깐 캐리어에 넣으면 그만이다. 보통 자전거를 열차에 태우는 비용이 사람의 약 반 정도 되니 한 번만 이용해도 캐리어 값을 뽑는다는 사실! 여행 중간중간 요긴 이용하면 정말 좋다. 꼭 참고하시길.
두 번째 문제는 사실 첫 번째 문제 때문에 생겼다고도 할 수 있다. 나비효과랄까. 자전거를 싣는데 너무 힘을 쓴 탓인지 올라타자마자 쓰러지듯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에 따스하게 비추는 햇살이 열차 안을 훈훈하게 데우고 있었다. 이제는 비엔나로 갈 수 있다는 안도감과 따뜻한 공기로 채워진 열차의 합작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 이른 아침 호스텔에서부터 고생한 대가를 낮잠으로 보상받는 듯 한 느낌이다. 세상 무엇도 신경 쓰이는 않는 편안한 휴식! 그런데... 무언가는 신경을 썼어야 했다. 적어도 환승역 만큼은.
“오, 너 표가 이상해! 목적지가 어디야~?”
“빈이요!”
“그런데 왜 이 열차에 있어??”
...??곤히 자는 내가 역무원이 묻는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황급히 표를 살펴본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악!!. 그랬다. 난 환승역을 지나쳤다. 체스키 – 비엔나 구간은 굉장히 복잡하다. 열차를 3번이나 갈아타야 할 정도로 노선이 복잡하다. 워낙 시골이기 때문에 큰 도시를 여러 번 거쳐 비엔나로 향하는데, 잠에 빠져 환승역을 그대로 통과한 것이다. 그것도 내 표를 검사하러 온 검표원 덕에 알게 되었다. 심지어 예매하지 않은 구간에 탔기 때문에 돈까지 더 내야 하는 상황이라니... 이런 정말 재수없는 하루를 봤나. 오늘은 정말 재수가 없다. 너무너무 없다. 게다가 다시 되돌아가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차라리 지금 이동하는 방향의 큰 도시로 간 후 비엔나 행 열차를 타는 게 훨씬 시간이 적게 든다. 아. 멍청하면 몸이 고생인걸까, 몸이 고생이어서 멍청해진걸까. 누가 뭐래도 난 지금 매우 '멍청한 상태'다.
그렇게 나는 오스트리아의 린츠로 향했고, 그곳에서 또다시 비엔나로 가는 열차와 자전거 티켓을 구매했다. 체스키에서 비엔나로 가는데 교통비를 15만 원이나 쓰다니. 스스로가 한심하다. 지난날 비행기를 놓친 친구에게 '야 그걸 놓치냐 어떻게'했던 내가 부끄럽다. 체스키 - 비엔나 구간은 서울과 원주쯤 되는 거리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만원이면 간다. 요즘 15만 원이면 중국, 일본은 물론 운 좋으면 대만도 가는 세상인데 비엔나까지 15만 원을 쓰다니... 하. 고은이(전날 호스텔에서 만난 동생)가 말한 ‘돈지랄’이 생각난다. ;(고은이는 내가 자전거 여행을 하는 것에 ‘돈지랄’이란 표현을 썼다. 악의가 담긴 표현이라기보다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드는 자전거 여행에 대한 우려였다. 기차 타면 금방 갈 수 있는 거리를 식사와 숙소 비등을 합쳐 굉장히 오래도록 이동하는 여행에 대한 표현이다. 사실 좀 거친 표현이지만 오늘 좀 뜨끔했다. 찔려서...). 오늘은 고은이가 옳았을 수도 있다.
만신창이가 되긴 했지만, 결국 비엔나(빈)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 출발해, 해 질 무렵 도착한 아주 지친 일정이었다. ‘와 빈이다!!!!’라기보다 ‘이제 빈이구나...’의 느낌? 하지만 역 앞을 나서 자마 눈이 휘둥그레진다. 무엇을 보았을까!?
여행은 가끔 피곤하고, 힘들지만 상관없다. 힘들게 도착한 도시는 그만한 보상을 주고
나는 지금 ‘휴양’이 아닌 ‘여행’을 하러 왔으니까. 고생과 힘듬은 튼튼한 뿌리처럼 내 바탕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