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유치원도 아닌 어린이집에, 그것도 이제 곧 장애통합반으로 가게 될 2022년생 우리 아들 '우주'에 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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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계획을 세우면 플랜 a부터 d까지 준비하는 공통점을 지닌 우리 부부는 한 번의 유산 끝에 건강한 마음가짐과 준비로 우리 우주를 맞이했다.
나는 아이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소근육 발달에 좋다는 여러 교구와 입소문 좋은 책들, 천만 원 전집으로 유명한 디즈니의 월팸까지 적령기 전에 미리 준비해 두었다.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아이는 책을 좋아했고, 매일 책을 꺼내 읽어달라고 가져왔다. 말이 트이면서 우주는 만 2세 전후에 책을 통으로 달달 외우고, 100까지 수를 영어로도 셀 수 있었고, 글자를 그림처럼 외워서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가.. 만 3세쯤부터 한글의 어려운 받침까지 읽기 시작했다.
아이가 언어에 천재인 줄 알았다. 다들 그렇게 시작한다고 하더라. 언어가 뛰어난 자폐가 있다는 것을... 교육을 전공한 주제에 몰랐다.
얼마나 무지했던가. 자폐가 왜 '증'이 아니고 '스펙트럼'인지. 빛의 스펙트럼은 옹스트롬으로 그러데이션을 나누면서도 말이다....
그만큼 세상의 장애에 무관심했다는 뜻이다.
나는 우주의 가정보육을 오래 하며, 아이가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것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아이의 사회성을 위해 기관에 보낼 때도 한 달 원비가 100만 원이 넘는 놀이학교에 보냈지만... 기관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리고 사회적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들이 생기면서, 숨은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다른 말은 잘하는데... 부탁하는 말, 요구하는 말을 하지 못해 울음이 터지고, 친구들과의 갈등 상황에서 유난히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는 우주였다.
그렇게 '화용 언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첫 아이이고 외동 아이라 잘 몰랐다. 본래 다들 그렇게 커가는 줄 알았다.
선생님께 여쭸다.
"그럼 다른 아이들은 갈등상황에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미안해. 그리고 괜찮아.
이런 말들이면 감정 폭발까지는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벌써 그런 게 가능한 줄은 전혀 몰랐다.
정신과.... 나와는 거리가 먼 곳인 줄 알았다. 아니 너무 멀어 사이비처럼 느껴진 적도 있다. 지금은 마음의 친정이 되었지만 말이다.
우주는 처음부터 소아정신과에 간 것은 아니다.
담임 선생님께서도 우주가 그 정도는(그런 곳에 갈 정도는) 아니라고 하셨다.
하지만 아이의 발달에 조금의 문제가 생긴 것이라 생각했고, 이른 개입이 중요할 것 같아 전국적으로 브랜드가 있는 유명한 발달 센터에 상담을 받으러 갔다.
1회에 10만 원이나 하는 곳이었다.
40분 동안 아이와 놀이를 하고 나온 선생님은 10분간 나와 상담을 했다
"어머니가 무엇을 걱정하고 계시는지 알아요. 자폐를 걱정하시는 거죠?"
"네? 아니에요. 그런 걱정은 안 해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엄마라고 걱정을 덜어주려고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았다.
그런데 당황하는 놀이치료 전공 선생님.
"음. 그게 아니라 어머니. 혹시 아스퍼거라고 들어보셨어요?"
"아뇨. 처음 들어요."
선생님은 이후로도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셨지만 나는 진지하게 듣지 않았던 것 같다. 내 머릿속에 편견처럼 자리 잡은, 자폐라는 용어가 만든 이미지가, 아무리 떠올려도 우주의 모습과 매치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상담은 2회 만에 종료되었다.
내가 10대이던 시절, 우리 집 바로 아래층에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어른이 나이 든 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그 남자는 매일 이상한 소리를 냈고 눈빛은 평범하지 않았다. 나에게 자폐란 그런 모습이었다.
다만 무섭다기 보단 불쌍한 느낌이었다.
내방 바로 아랫 방을 쓰시는지, 방바닥 바로 아래에서 크게 악을 쓰는 소리가 매일 들려도 나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부터 그는 소리도 모습도 감추었다.
시간이 흘러 내 머릿속 자폐의 이미지는, 말을 못 하고 인지가 낮은 모습으로 고착되어 버렸다.
우주는 장난감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떤 종류로든 말이다.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더라도 그에 맞는 용도로 놀지는 않았다. 소리 나는 버튼을 누르는 것은 좋아했는데, 특정 버튼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반복해서 누르곤 했다.
또 생후 몇 개월간은 장소 낯가림이 심해 실내에 들어가기만 하면 울었다. 어린 우주를 데리고 카페에서 휴식을 할 수도 없었고, 외식을 할 수도 없었다. 다행인 건 뻥 뚫린 야외는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마음 한편에는 늘 답답함이 있었다.
책육아를 시작하면서 해결되었다고 착각했지만 말이다.
친가 외가를 통틀어 첫째 딸이었던 나는 많은 사촌 동생들이 있었고, 초등학생 저학년일 때부터 그들과 놀아주는 것을 매우 즐겨했다.
우주는 그때의 기억과 뭔가 달랐다.
아직 어려서 그래. 좀 크면 다른 사촌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형놀이도, 역할놀이도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집에서는 변기 물 내리기, 냉장고 문 열고 닫기, 방문 열고 닫기, 스위치 누르기, 세탁기 보며 놀기를 즐겨했고, 밖에서는 맨홀 뚜껑이나 배수구 찾아다니기,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기, 에스컬레이터 타기, 계단 오르내리기....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졌다.
우주를 위해 아무리 좋은 장소, 멋진 장소를 가도 우주는 그곳에서 같은 것들만 찾아다녔다.
그때까지도 몰랐다.
유명한 육아 카페에 검색하면 그런 아이들이 굉장히 많았고, "그 나이땐 다들 그래요."라는 아무렇지 않은 댓글들만 있었으니까.
거기다 우주는 발달이 늦지 않은 데다 눈 맞춤도 잘 되었고, 포인팅도 잘 되었으며, 소재만 저럴 뿐 그걸로 상호작용이 잘 이뤄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말은 빠른 편이었다.
5개월에 엄마, 아빠를 말한 이후부터 발음이 무척 정교한 데다 단어 습득력이 뛰어났고, 11개월에는 단어 카드를 분류했기 때문이다.
자폐에 대한 의심은 '말을 잘하는 자폐는 없다.'라는 전문의의 글을 본 뒤로 아예 접게 되었다. 말을 '잘'한다는 것에 대한 기준이 다른 지도 모른 채로...
서너 단어를 조합해 문장으로 말하던 시기, 우주는 같은 문장을 100번도 넘게 계속 들으려 했고, 반복해서 말했기에, 역시 '반복 학습'이 최고라고만 느꼈다.
보통이 아니구나. 나 같은 면이 있네? 나도 학창 시절에 그랬으니까. 노트에 한 번 쓸 시간에 머릿속으로 백번 되뇌는 게 더 빠르고 암기에 좋았으니까.
나는 우주가 좋아하는 문장이 들어간 이야기로 우주가 주인공이 되는 그림책도 그려주었다.
어릴 적 꿈이자 커서는 취미가 된 '그림'은, 과거와 현재의 육아에 도움이 되는 면이 꽤 있다.
우주로부터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문장의 이상함을 3살까지는 느끼지 못했다.
'반향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2회로 마친 그 놀이치료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서였다.
우주가 4세, 만 나이로는 3세가 지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아이의 말투를 귀여워했다. 아직까지도 아이의 독특한 억양은 정말 귀여울 때가 많다. 하지만, 또래 친구들의 말투가 너무 자연스러워 놀라는 때가 더 많아졌다. 우주는 또래 아이들이 쓰지 않는 용어를 포함하여 자기만 아는 정보를 주로 이야기했고, 구어체보다는 문어체가 익숙해 보였다.
키즈카페의 주스 냉장고 앞에서 친구가 "넌 머 먹을 거양? 머 됴아해?"라고 물으면 우주는 "보라색 주스는 포도 맛이 나."라고 답했다.
친구가 " 나랑 같이 저거 해! 같이 놀아!"라고 하면 우주는 "저 놀이는 이 기차가 아니잖아. 그럼 이 기차가 움직일 수 없어. 그럼 뿌 소리를 낼 수도 없어."라고 답했다.
우주의 자폐를 결국 인정하게 된 것은 대학 병원에서 검사와 진단을 받기 전, 우주가 처음으로 실제 지하철을 탄 이후였다.
아이는 기차가 들어올 때와 떠날 때 나는 우우웅 소리를 반복해서 따라 했다. 그리고 "스크린도어가 열립니다. 발 빠짐 주의! 발 빠짐 주의! 문이 닫힙니다."이 문장을 계속 계속 반복해 말했다.
그리고 그 문장을 반복해서 말할 때만큼은 내가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었고, 눈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몸을 잡고 어깨를 흔들어도 우주는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마치 나와는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터지지 않는 버블에 둘러싸인 듯 보였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성장한 것인지... 그에 더해 아이의 성장을 위해 눈이 벌게지도록 노력한 효과가 있는 것인지... 이제 버블에 혼자 갇히는 시간이 거의 없거나 짧지만, 그 당시엔 한 시간 동안이나 반복했다.
누군가 나에게 아이가 한 시간이나 그럴 동안 넌 무얼 했느냐 묻는다면, 나는 한 시간 동안 하소연할 수도 있다.
엄마인 나의 세상은 무너지고 있었다.
내 기대도, 내가 꿈꾸던 너의 미래도 조각나고 있었다.
100은커녕 50은 될까. 아니, 마이너스만 아니길, 어쩌면 1000을 노력해야 겨우 0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도 모를 아이의 상태가 두려웠고, 걱정스러웠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